이란성쌍둥이 같은 나의 눈썹
외출을 할 때마다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눈썹이다. 눈썹은 나의 오른손이 가진 그림솜씨를 그대로 드러내기에 충분한 장소였기 때문에 눈썹펜슬을 눈썹에 댈 때마다 긴장되곤 했다. 특히나 나의 눈썹은 오른쪽과 왼쪽이 약간 다르게 생겼다. 조금 더 제멋대로 난 왼쪽눈썹은 한 곳으로 나란히 자라는 게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자라서 금세 다듬어주지 않으면 지저분해지곤 했고, 그에 비해 오른쪽눈썹은 눈썹이 잘 자라나지 않는 느낌인데 반해 부드러워서 눈썹빗으로 살짝 쓰다듬기만 해도 어느 정도 모양새가 나왔다. 이렇게 같은 신체 안에 자리 잡은 눈썹마저 오른쪽과 왼쪽이 다르니, 유전자가 같은 쌍둥이가 다른 건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회초년생이 이르기까지 쌍둥이를 실제로 알고 지내본 적은 없다. 교과서에서만 존재하던 쌍둥이를 처음 본 것은 나보다 네 살 많은 같은 조의 오빠였다. 같은 조에서 조별활동하면서 그 오빠에게 쌍둥이, 그것도 여자쌍둥이가 있다는 사실에 놀래고 말았다. 그 오빠는 키도 컸고, 덩치도 좀 있는 스타일이라 왠지 쌍둥이가 어울리지 않아서 놀랜 건지 아니면 같은 사람이 다른 성별로 있는 모습을 내 마음대로 상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 두 번째 쌍둥이는 남편의 학업으로 미국에서 잠시 살았을 때였다. 한인학생들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처음 본 그 여자아이는 나름 동안으로 불리는 나와 동갑이었고, 나보다도 더 동안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밀조밀하게 생긴 얼굴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크고 동그란 눈망울이 딱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고, 볼은 살이 있지만 턱으로 갈수록 뾰족해지는 귀염성 있는 달걀형의 얼굴이었다. 웃을 때 드러나는 이빨은 어찌나 가지런하고 하얀지 라미네이트를 한 게 아닐까 했는데, 정말로 라미네이트를 한 것이어서 또 한 번 놀랬다. 그런데 더욱 놀랜 건 그녀가 일란성쌍둥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번에는 이렇게 예쁘게 생긴 사람이 두 명이나 된다는 게 신기해서 놀랬다.
사실 나에게도 쌍둥이가 있었으면 하는 열망이 있었다. 쌍둥이가 있다면, 뭔가 모르게 평생의 친구를 가진 듯 든든할 것만 같았고, 내 아픔과 기쁨을 고스란히 전달하며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세상에서 고립된 느낌 없이 그렇게 너와 나라는 둘의 이야기에 우정 어린 가족애를 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썹과 이야기를 안 해봐서 그렇지 혹시 모를 일이지 않는가. 왼쪽눈썹이 오른쪽눈썹에게, 오른쪽 눈썹이 왼쪽 눈썹에게 위안을 얻고 있을지.
그래서인지 나는 눈썹을 그릴 때마다 양쪽 눈썹을 똑같이 그리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양쪽이 데칼코마니처럼 정확히 들어맞기를 희망하며 심혈을 기울이며 그려본다. 어떤 때는 손이 엇나가서 서로 다르게 그리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둘이 너무 다르게 생겨서 어느 정도의 다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양쪽이 똑같아 졌으면 하는 열망은 눈썹문신 때도 마찬가지여서 원장선생님이 어떤 눈썹을 원하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한숨도 거르지 않고 "양쪽 똑같게 해 주세요."라고 대답했다. 아치형을 원하는지, 조금은 산이 있는 눈썹을 원하는지 물어본 것일 텐데 그렇게 양쪽 똑같게라는 말만 남기고 눈을 감은 나에게 원장선생님이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양쪽얼굴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이 그려요.
얼굴에 맞게 그려야지
그래서 지금은 양쪽이 살짝 다르더라도 그의 특성에 맞게 그려주려고 노력한다. 나의 눈썹을 존중하면서. 양쪽 똑같은 모양을 통한 조화가 아니라, 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로 전체적으로 아우를 수 있도록 쓱싹쓱싹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