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찧기고 뜯기고 망가져도 고마운 피아노에 대한 예찬

by 남배추

어렸을 때 우리집은 대단히도 가난해서 단순히 '가난했다'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적절했다. 세 가구가 함께 공동화장실을 쓰던 우리집은 겨울이면 지하실에서 연탄을 실어 날라 불을 때었다. 공동지하실 한편에 연탄을 채워놓는 것으로 겨울의 서두를 알렸던 그 집의 구조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하루 일하고 하루 먹고살았던 우리집은 노동과 잡음으로 바빴기 때문에,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가난했으니까 사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겠냐고 추측한다면, 그건 아니었다. 여섯 살 정도가 되면서 각 종 학원을 기웃거리며 후불로 지불하겠다며 학원을 한 군데씩 내 마음대로 다니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동네장사라서 가능했던 것인지, 아니면 꼬마애가 강단 있게 후불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보아왔던 것인지, 학원에서는 나를 받아주었다. 물론 한 달 후에 학원비를 수거하러 올 때에는 우리집으로부터 핀잔을 들어야만 했지만.


"다시는 학원비 줄 수 없으니 얘가 뭐라 해도 받아들이지 마세요!"


으름장을 놓으며 후불학원비를 건네는 우리집. 그렇게 한 달씩만 다니는 학원이었지만, 피아노학원은 조금 더 오래 다녔었다. 기억으로는 몇 달은 다닌 것 같은데, 이 또한 어렸을 적 기억이고 내 기억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각색되기 일쑤여서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극내향인임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는 외향적 성향이 강했던 건지 나는 언제나 피아노학원에 있었다. 가정집에서 하는 피아노학원이라 편안했다. 죽순이처럼 피아노집에서 지낸 덕분에 피아노실력이 상당히 늘어서 금세 체르니 100번을 치게 되었고, 원장선생님 또한 나에게 재능이 있다며 추켜세워줬다. 행여나 학생 수가 줄어들까 염려한 까닭에 그리 말씀하셨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때 난 키도 컸고 손도 컸기 때문에 피아노꿈나무로 분류되기에는 합당했으리라.


그러나 피아니스트가 될 수가 없다는 건 우리집의 사정만 봐도 알 수 있었고, 피아노에 대한 애정도 점차 시들어갔다. 그때 피아노교재사이에 껴둔 피아노학원비가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집에서는 학원비도 잃어버린 마당에 무슨 피아노냐며 당장에 학원을 끊어버렸다. 그때 나는 이미 피아노에 시들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우는 소리하나 없이 받아들이긴 했지만, 사실 그 피아노학원비가 없어진 건 우리집에서 꾸며낸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아직도 걷어낼 수가 없다.


그렇게 무심하게 피아노에 멀어진 상태로 지내다가 고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내던 아이가 쇼팽의 곡을 구슬 흘러가듯이 치더랬다. 그 모습을 보며 ‘만약 내가 계속 피아노를 쳤더라면 저 정도는 보여줄 수 있었을까?’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고등학생이었고, 여전히 우리집은 가난했으며 배우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하지만 피아노에 대한 열망만큼은 대학생이 지나 사회생활을 하면서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다시 피아노학원을 다녀보기도 했지만, 집에 피아노가 없는 상태에서 연습은 쉽지 않았다. 어렸을 때처럼 매일 피아노학원에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다고 정해진 시간에만 가서 피아노연습을 해서는 좀처럼 늘지 않더랬다. 학원을 다녀도 뾰족한 수가 없기에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는 찰나, 후배의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는데 피아노소리가 들렸다.


그 후배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언제나 피아노를 치곤 했는데, 그날 딱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피아노 위에서 부드럽게 흘러가는 손가락에 맞추어 흐르는 음들은 나를 매혹시켰고, 피아노브랜드까지 메모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떤 사람이 뭔가를 원하면 우주가 그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나? 친한 선배가 피아노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상당한 금액을 할인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결제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사정상 카드로 결제하였는데 그 선배가 조금 멋쩍어했더랬다. 어찌어찌 피아노를 사고, 뻘쭘해하는 선배에게 고마워서 밥이라도 사려고 했는데 주스를 마시겠다고 해서 뭔가 스무디 같은 것을 먹었던 것 같다. 조금 더 팬시하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마셨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80년대에나 나올 법한 그저 그런 카페에서 그저 그런 맛의 스무디를 마셨다. 그 피아노는 세월이 지나 다른 가구에 찧이기도 하고, 어떤 키는 잘 눌러지지도 않았지만, 소중한 기억들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피아노였기에 소중했다.


그날 피아노를 사는데 도움을 주었던 선배는 우리집에서 탐낼 정도로 반듯하고 부잣집 청년이었는데, 동료들과 술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운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당시에 방사선치료를 받고 있던 때라 사람들이 말해주지 않아 한참 뒤에서나 그 소식을 듣고 마음 아파했었다.


지금도 피아노를 바라볼 때, 가끔 그 선배가 생각난다.

‘그때 스무디가 아니라 좀 더 우겨서 근사한 밥을 사줬더라면 더 좋았을걸.’

‘현금으로 결제할걸.’

그래서 오래되었지만 이 피아노를 쉽게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피아노를 볼 때마다 그를 기억해 내는 것이야말로 내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물건에는 그 사람의 추억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추억도 놓아줄 수밖에 없었는데 그 피아노를 떠나보내면서도 한참을 쓰다듬고 고맙다고 얼마나 말했는지 모른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와중에도 그 피아노가 생각나는 거보니 어쩌면 난 미니멀리즘을 실천할 팔자는 아닌 듯하다.

고마웠어 피아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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