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초록이 나의 식물 초록이

화원에 가끔 쇼핑하러 갑니다.

by 남배추

예전에 서점에서 식물시리얼킬러에 대한 책을 본 적이 있다. 나 또한 식물을 사는 족족 저세상으로 보냈기 때문에 마음 한켠이 괜스레 찔렸던 기억이 난다.


사실 식물을 굉장히 좋아한다. 일단 눈이 편안한 색이라고 하니깐 팔랑귀가 더 팔랑팔랑거리면서 눈이 더 편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카페에 가더라도 나무색과 초록색이 어우러진 곳을 일부로 찾아다니는 건 물론이다. 이런 내가 내 방에 초록이 하나 제대로 못 지킨다는 사실이 멋쩍었다. 게다가 저세상 터치를 하고 만 식물들을 치우는 건 또 어찌나 귀찮은지.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키우기 쉽다던 다육이나 물을 안 줘도 된다는 선인장도 사봤다. 걔네들도 쪼글쪼글해지는 걸 보고, 내 포켓만이 쪼그라드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어 잠시 멈추고 말았다. 그야말로 지독한 짝사랑.


생각해 보면 게을렀던 것 같기도 하다. 추억이란 뿌예지고 색채를 더하기 때문에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규칙적인 물 주기는 느낌대로 행동하고 마는 내 성정과 너무나 안맞는 걸 난들 어쩌랴. 그래도 물을 줄 때는 또 손 큰 아줌마처럼 듬뿍듬뿍 퍼주어 식물들은 불안에 떨고 말았던 것이다. 불쌍한 나의 과거 식물들이여.


그런데, 그 판도가 바뀌는 시점이 온 게다. 바로 미국에 갔을 때였다. 방이 없는 원룸형태의 집에서 살다가 코로나로 인하여 집값이 쑥 내려갔던 때, 처음으로 방이 하나 있는 집에서 살게 되었다. 이제 혼자 있고 싶을 때 굳이 화장실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게다가 학군이 좋은 동네라 비쌌는데, 거기서 방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될 줄이야. 나 스스로 출세했다며 껄껄 웃었다.


욕심이 나더랬다. 정해진 예산이라고 하지만, 식물시리얼킬러이력이 있지만, 조금 더 생기 있는 집안을 만들고 싶었다. 모든 게 비싼 맨하탄에서 예산을 쪼개어 30cm자에도 키가 못 미치는 조그마한 화분을 샀다. 신문지에 곱게 포장되어 온 머니트리는 누가 버린 잡초 같았다. 그래도 그 생명력만큼은 어디 빠지지 않아서 미국의 강렬한 햇볕을 받으며 무럭무럭 컸다. 그냥 냅둬도 크는 아이가 있다더니 식물세계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가끔 물을 주지 않아서 뭔가 바삭거리는 느낌마저 들 때가 있었긴 하지만, 물을 듬뿍 주면 금세 생기가 돌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키워보겠어.’


다시 욕심이 났다. 그래서 화분을 바꿨다. 물 주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기도 했지만, 화분받침을 이용하는 물받이방식이 너무 힘들었기에 self-watering화분을 샀다. 그런데 금색이 왔다. 랜덤이지만 금색은 너무 하지 않은가. 금색화분이 쏙 들어가는 하얀색 화분을 하나 더 샀다. 그리고 머니트리는 옷을 두 개나 입고는 쑥쑥 자랐다.


화분만 사고 끝낸 건 아니었다. 어느 순간 조금 힘이 없어 보이면 새로운 영양흙으로도 갈아주기도 했다. 집에 있을 때는 ‘너 쫌 잘 큰다.’라며 칭찬도 해주고 영양제도 놓아주었다. 미국유전자는 식물도 큰지,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머니트리는 내 가슴밑까지 키가 자랐더랬다. 데려오고 싶었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식물을 다른 나라에서 데리고 들어오는 건 정말 입양과정보다 더 힘든 과정이라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었다.


머니트리만 독사진으로 사진도 많이 찍고, 나와 함께 투샷도 찍어가며 나의 식물에 대한 애정은 고양이집사 못지 않았다. 그래서 꼭 좋은 주인을 찾아주어야겠다 생각했다. 행복한 가정에서 따뜻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면서 머니트리와 투샷을

찍던 내가 다짐했다.


‘너는 내가 지킨다.’


다행히 친했던 일본인친구 중에 아주 성실하고 온화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이다 싶었다.


“혹시 머니트리 키울 생각 있어? 내가 엄청 키운 건데 얘가 행운을 불러일으킨대. 근데 진짜야. 너한테도 운을 불러일으킬 거야.”


그녀는 고맙기도 흔쾌히 오케이 해주었다. 내 가슴 밑까지 오던 머니트리를 이고 지고 그녀의 아파트까지 갔다. 사람들이 괜찮냐고 계속 물어보았다. 괜찮았다. 사실 안 괜찮았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나의 머니트리는 지금은 더 싱싱하게 자랐다고 한다. 나의 머니트리 보호자인 그녀는 가끔 사진을 보내준다. 그럼 나는 멀리 보낸 그리운 이라도 만난 것처럼 가슴이 저리다.


처음으로 식물을 위해 화분도 여러 번 바꾸고 영양제까지 먹였던 그때. 작은 사치를 부려서 시작된 나의 식물양육기는 이렇게 작별로 끝났지만, 그 감정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지금도 자꾸만 식물을 사고 싶어 진다.

새로운 집에서 무럭 자라고 있는 머니트리




이전 0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