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통해 햇볕을 느낄 수 있는 럭셔리함
고등학생 때까지 살았던 집은 방만 두 개가 있는 이상한 구조였다. 1층과 2층 사이 그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애매한 위치였던 그 집은 원래는 화장실이 없었다. 그런데 주인의 아이디어였는지 아니면 그 당시는 다 그래왔던 건지, 샷시를 이어 붙여 화장실이 집 안에 있는 듯 만들어 놓았더랬다.
주택의 뒷마당에 좁게 나 있는 쪽문을 통과하여 샷시로 된 문을 열면, 안과 밖의 공기가 전혀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빨래는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의문스러운 구조다.
제목이 창문인데, 집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뭘까 싶지만 그 이유는 지금부터 나온다. 고등학생 때, 나는 그 집에서 내 인생 처음 내 방이라는 걸 가지게 되었다. 처음으로 방이 생겼기 때문에 우리집에서는 질 좋은 솜을 사 와서 이불을 만들어 주었다. 포근했다. 사각사각 소리가 좋아 볼을 연 씬 비벼댔다. 그 이불 안에 폭 들어가 ‘유희열의 음악도시’를 듣다 보면,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비좁은 방에는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창문을 열면 바로 옆 집의 빨간 벽돌이 보였다. 빨간끼가 도는 벽돌색. 나름 마음에 들었다. 벽만 보이는 게 무슨 창문이냐고 그럴지 모르지만, 나름 장점이 많다. 창을 열어두면 바람도 들어오고, 이웃집 사람들과 눈 마주 칠도 없고, 가끔은 고양이가 담을 타고 지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창문을 열어도 다른 사람은 내가 창문을 열었는 걸 알 수 없었던 마법의 창문. 나름 방충망까지 오밀조밀 설치되어 있어 모기로부터 안전했던 마법의 창문에 대한 사랑은 계속 이어져서 지금도 볕이 들어오는 창문이 좋다. 더불어 이웃의 시선이 느껴지는 창문은 여전히 사양한다.
미국에서도 운 좋게 탁 트인 창문을 즐길 수 있었는데, 강이 보이는 위치라서 다른 사람이랑 마주칠 염려도 없고, 계절의 변화도 쉽게 느껴졌으며, 일조량의 차이마저 느낄 수 있었다.
여담으로, 코로나시절, 마치 바이러스는 내 집 앞마당에는 무서워서 못 오는 것처럼 집 밖을 나가지 않던 그 시절, 저녁 7시만 되면 ‘뉴욕뉴욕’ 노래가 들려왔다. 그러면 사람들은 서둘러 냄비든 나팔이든 챙겨서 베란다나 창문으로 나와 다 같이 열렬히 노래하고 응원했다. 창문이 없었다면 코로나시절을 어떻게 견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요즘 내가 독서하는 소파 옆에도 길고 커다란 창문이 있는데 비가 오면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듣고, 눈이 오면 눈이 내리는 모습을 하염없이 보게 된다.
역시 난 볕이 들고 마는 창문을 포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