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화수업

나를 다시 그려봅니다.

by 남배추

중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미술선생님께서 나를 따로 부르셨는데 알고 보니 '예고'를 추천하고 싶어서였단다. 어려 집안사정을 고해성사하고 싶지 않아 짧게 대답했다.


“상의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어쩌면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샷시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파카를 입고 요리 중인 모습이 보였다.


“나 예고 가도 좋겠대.”


아무런 대답이 없는 부모님. 못 들었나 싶어 세 차례 정도 연이어 같은 말을 반복하자, "얼어 죽을"이라는 말로 되돌려 받았다.


사실 내 재능의 한계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의의가 없었지만, 섭섭했다. 반항심이 생겨서,


“몰라. 난 꼭 예고 갈 거야!”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녀의 어깨가 너무 무거워 보였다. 열심히 살았다.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고 몸이 아퍼서인지 내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회사의 복지혜택 덕분에 당분간은 짧게 근무가 가능하게 되면서 글쓰기와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


나만을 위해 숨을 쉬는 시간


미국에 있을 때도 현지인들과 교류하겠다며 무작정 미술수업을 듣기도 했었다. 물감의 향기가 감도는 교실에서 조용히 그림을 그리며 서로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이 소중했다.

물론 지금의 그림실력은 형편없다. 싱싱했던 식물들도 물을 주지 않고 가꿔주지 않으면 시들시들해지는 것처럼 그림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나의 손가락은 그림이란 걸 도무지 기억해내지 못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하다. 열정은 노력보다 저만치 앞서서 도무지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연필인물화 준비물

스케치북

연필 H, HB, 2B, 4B

지우개(일반지우개/떡지우개-명암을 찍어내기 위한 용도/샤프지우개-필요한 부분만 지우기 위한 용도)

칼, 자, 뺵붓(2호-대부분 지우개가루를 털기 위한 용도)


인물화수업을 듣는데 준비만으로 화가가 된 기분이 들어 입꼬리가 올라간다. 선생님에 의하면, 자연에는 수많은 빛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하나의 빛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입체를 표현하는 작업이므로, 명암을 표현함으로써 깊이감, 즉 밀도가 나온다고. 그 깊이감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선을 항상 연습해야 한다고 하셔서, 진한 면에서 밝은 면으로 연필을 채워나가는 연습부터 하였다.


명암은 선으로 표현했을 때 세련되게 그려지기 때문에 선을 일정한 굵기로 진한 선에서 밝은 선으로 그리는 법을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지루한 작업이었지만, 내 손의 힘에 따라 연필의 굵기가 달라지고 색의 진함이 달라지면서 이 작업이 결국 그림으로 이어질 생각을 하니 허투루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연습 중이다.

너무 졸려서 혀를 깨물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