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8말고 내 팔
팔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길다.
‘그럼에도 왜 사느냐 묻는다면’에 나온 것처럼, 주지스님께서 한 남자의 어릴 적 사연을 듣다 보니 새벽이 지나가고 아침이 오는 ‘그런 류의 기나김’이다.
내 팔은 유난히 많은 일을 겪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의 신체부위인데, 길지는 않으면서 얇디얇은 팔이 운동을 한번 배워보고자 하면 백 퍼센트의 확률로 다치기 일쑤였다.
친한 동생을 따라나선 스쿼시에서는 손목과 안녕을 고해야 했고, 테니스를 치다가 어깨마저 나갔다가 돌아왔다. 림프절제거 이후에는 팔이 어깨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아 ‘횡단보도를 다시 손들고 걷는 일이 생길까?’라며 고뇌하기도 했다.
미국에 사는 동안, 한 번은 팔이 빠진 일이 있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5일을 버텼더랬다. 사실 팔이 진짜로 빠졌었는가는 미궁으로 빠지긴 했는데, 그 당시를 돌이켜보면, 굉장한 양의 진통제로도 팔의 고통은 어마했다. 마치 팔로 아이를 낳으면 이런 고통일까?
코로나여서 원격치료만 요청하며 병원을 기피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한인이 하는 병원을 가게 되었다. 알고 보니 병원이 아니었다는 게 함정. 뉴욕은 병원과 도수치료가 완전히 분리되어 운영되므로, 영어명칭으로 정형외과인지 아니면 물리치료인지 확인하고 가는 게 좋다.
하여간 거기에서는 나의 팔이 빠졌다며 지금 당장 응급실에 가길 권했는데, 어느 세월에 또 가냐고 흐느끼자 그 자리에서 팔을 대충 끼워주셨다. 영화 속에서 술 진탕 마시고 팔을 끼운 뒤, 기절하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도 한참 팔이 안 좋아서 정형외과에 가보니 회전근개문제와 돌이 어쩌고 저쩌고라고 말했는데,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팔이 빠졌던 것일까?
한인도수치료사분은 팔이 빠졌다고 말했다. 정형외과에서 왜 그걸 모르는지 의아해했고, 정형외과에서는 처음부터 온 게 아니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병명을 알게 된 시점에서 팔이 빠져서 생긴 통증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원래 이건 출산의 고통처럼 아프다며.
‘이거 라이어 게임인가?’
그렇게 의문을 가지고 시작한 재활치료는 내 인생의 냉혈한 재활치료사 Sunny를 만나며 회복의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금씩 나아지니 살만 했던지 나는 겨울이 되자 아이와 함께 눈썰매장에 놀러 갔다. 그리고 내가 탄 눈썰매장레일에 문제가 있었던 건지 굉장한 속도로 내려갔고, 살짝 솟아있던 레일을 타고 그대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날아오른다’
그리고 잠시 하늘의 새가 되었던 나는 바닥에 고꾸라지면서 오른쪽 어깨로 내리찍었다. 다행히 머리는 괜찮았지만, 팔로써는 엎친데 덮친 격. 팔이 내 멱살을 잡고 싶었겠지만, 어깨를 다쳐서 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생각보다 꽤 크게 날아올라 떨어졌기 때문에 주변에 있던 미국인들은 순식간에 나에게 몰려들었고, 눈썰매장 보안요원들도 무전기를 치고 다 같이 와서는 괜찮냐고 물어댔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머리를 다치지 않았던 나는 중학생 때 배웠던 영어실력으로 “I’m fine.”을 외쳤다. 사실은 I’m not fine. 정신이 깨이자 아파오는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나는 다시금 냉혈한 재활치료사와 더 호된 재활치료를 1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는 내가 아파하든지 말든지 눈하나 깜짝 안 하며 운동을 가르쳐주는데, 아프다고 말해도 무생물을 쳐다보듯 쳐다보며 좀 더 내게 맞는 운동법을 계속 고쳐 주었다. 그리고 그의 혹독한 훈련아래에서 이제는 팔도 육군하사의 짬밥을 가지게 되었다나 어쨌다나.
고생 많았던 내 팔. 특히나 림프부종이 생기면 고통스럽다는데 이렇게 잘 버텨주는 이 팔이 여간 기특한 게 아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팔에 이어진 등이 조금 더 기운을 내서 폴댄스를 할 때에도 나의 육중한 무게를 뒷받침해 주면 좋겠다.
팔은 약하지만 팔만 쓰는 운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류의 운동을 또 포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도 어깨와 팔을 주물러 가며 비위를 맞추며 속삭여본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내 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