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합격] 레인 오버 미 ‘앨런 존슨’

위로의 기술 : 입은 닫고 의자는 당겨 앉는 법

by 도시남자 수식씨

살다 보면 주변에서 들려오는 비보에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누군가는 부모를 떠나보내고, 누군가는 공들여 준비한 시험에서 고배를 마신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복잡해진다. 뭐라고 한마디 건네긴 해야겠는데,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머릿속 사전만 뒤적거린다. 고심 끝에 내뱉는 말은 대개 "힘내라", "시간이 약이다", "다 잘 될 거다" 같은 것들이다. 말해놓고도 참 멋쩍다. '나는 힘이 안 나서 죽겠는데 옆에서 자꾸 힘내라고 하면 그게 힘이 나나?' 싶어서다. 사실 위로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면, 우리 나이쯤 되면 그 화려한 미사여구보다는 침묵의 무게를 먼저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최근에 본 영화 ‘레인 오버 미(Reign Over Me)’는 위로의 본질이 무엇인지 묵직하게 묻는다. 주인공 찰리 파인먼은 9.11 테러로 아내와 세 딸, 심지어 강아지까지 한순간에 잃었다. 그는 슬픔을 극복하는 대신 세상을 차단하는 쪽을 택한다.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게임에 몰두하며 과거를 잊으려 발버둥 친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정상'으로 돌려놓으려 애쓴다. "이제는 추모해야 해", "현실을 직시해"라며 그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려 하지만, 그럴수록 찰리는 더 깊은 동굴로 숨어든다. 그때 대학 동창 앨런 존슨이 나타난다. 치과의사로서 겉보기엔 번듯하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에 숨이 막혀가던 앨런은, 찰리에게 "힘내"라고 말하는 대신 그냥 옆에서 같이 고전 게임을 하고, 전동 스쿠터를 타며 밤거리를 배회한다. 앨런 역시 자기 삶이 팍팍해서 도망치듯 찰리 곁에 머문 면도 없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목적 없는 동행'이 찰리의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린다.


내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20대 시절, 방송국 PD가 되겠다고 언론고시라는 높은 벽에 도전했을 때다. 몇 년을 매달렸지만 돌아오는 건 매번 불합격 통보였다. 나중에는 친구들 만나기도 민망해 집 안에만 틀어박혔다.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 방명록에는 친구들의 응원이 줄을 이었다. "너는 꼭 될 거야", "하늘이 무심하시다, 힘내!" 고마운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사실 속으로는 '힘낼 기운이 있으면 벌써 냈겠지' 하는 삐딱한 마음이 올라왔다. 그때 나를 찾아온 한 수녀님이 계셨다. 그분은 "기도할게"라거나 "잘 될 거야"라는 흔한 축복 대신, 그저 가만히 앉아 물으셨다. "수식아, 너는 왜 PD가 되고 싶니?" 그 한마디에 둑이 터져버렸다. 나는 몇 시간 동안 내가 왜 이 길을 가려 했는지, 지금 얼마나 무서운지 횡설수설 쏟아냈다. 수녀님은 그 긴 시간 동안 시계 한 번 보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다 받아내셨다. 그날 밤, 나는 비로소 밖으로 나갈 용기가 생겼다. 대단한 조언을 들어서가 아니라, 내 밑바닥을 온전히 보여줘도 괜찮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해결사'가 되려고 한다. 상대를 빨리 그 늪에서 건져 올려야 한다는 강박에 시야가 좁아진다. 그래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형식적인 문구 뒤에 숨거나, "다 지나갈 일이야"라는 무책임한 낙관을 던진다. 하지만 진짜 위로는 상대의 슬픔을 빨리 휘저어 증발시키는 게 아니라, 그 슬픔이 다 가라앉을 때까지 옆에서 가만히 지켜봐 주는 일이다. 앨런이 찰리와 함께 게임기를 붙잡고 있었던 것처럼, 수녀님이 내 푸념을 묵묵히 들어주셨던 것처럼 말이다. 억지로 힘낼 필요 없다고, 지금은 그냥 같이 앉아 있어 주겠다고 말하는 것. 어쩌면 그게 40대를 지나며 내가 배워야 할 가장 성숙한 대화법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누군가 힘들다는 소식을 들으면, 멋진 위로의 말을 고민하기보다 일단 가서 의자 하나를 펴고 그 옆에 조용히 앉아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