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이 킴의 '은메달'이 내게 준 울림
거실 소파에 앉아 TV 화면을 응시했다.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결선, 한국 선수는 이미 모든 활주를 마치고 꽤 높은 점수를 받아둔 상태였다. 이제 남은 건 단 한 사람, 스노보드의 '전설'이라 불리는 클로이 킴의 마지막 시도뿐이었다. 그녀가 어떤 기술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금메달의 주인이 바뀌는 상황. 팽팽한 긴장감 속에 그녀가 반원통형의 눈 위를 날아올라 화려한 공중회전을 선보이던 그때, 예기치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회전 끝에 설면에 닿은 그녀의 보드가 중심을 잃더니 그대로 미끄러진 것이다. 그 짧은 '착지 실패'는 곧 한국 선수의 금메달 확정을 의미했다. 그런데 내 눈에 잔상처럼 남은 건 그다음 장면이었다. 눈 위로 넘어진 클로이 킴이 툭툭 털고 일어나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본인의 아쉬움을 달래는 자리가 아니라, 우승이 확정되어 환호하는 한국 선수 앞이었다. 그녀는 마치 자기 일인 양 환하게 웃으며 경쟁자를 꽉 껴안았다.
사실 클로이 킴이 누구인가. 10대에 이미 평창을 제패하고 베이징에서 2연패를 달성하며 이 종목의 살아있는 전설로 군림해온 선수다. 이번에도 당연히 3연패라는 대기록을 쓸 것이라 모두가 예상했기에, 마지막 시도에서의 실수는 본인에게 꽤 쓰라린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엔 아쉬움보다 진심 어린 축하가 가득했다. 공중에서 서너 바퀴를 돌다 바닥에 나뒹군 사람치고는 너무나 평온하고 해맑은 미소였다. 보통은 분함에 눈물을 훔치거나 카메라를 피하는 게 우리가 익히 봐온 '패자의 풍경'인데, 그녀는 그 낯선 생경함을 깨뜨리고 있었다. 승부의 세계가 원래 이렇게 따뜻했나 싶어, 보고 있던 내 마음까지 괜히 먹먹해졌다.
경기가 끝나고 금메달을 딴 한국 선수의 인터뷰를 보며 나는 한 번 더 놀랐다. 그녀는 대회 초반 심리적으로 흔들릴 때, 자신의 우상이었던 클로이 킴이 다가와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진심 어린 격려를 건네주었다고 고백했다. 전설이 건넨 그 한마디가 후배에게는 금메달을 향한 가장 큰 동력이 되었던 셈이다. 이 장면을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마흔 중반, 회사에선 어느덧 '낀 세대'이자 중견 선배다. 언젠가 나보다 더 빛나는 성과를 내는 후배들이 내 앞을 성큼성큼 지나쳐 갈 때, 나는 과연 클로이 킴처럼 진심으로 웃으며 박수 칠 수 있을까? 내 시대가 저물어감을 인정해야 하는 그 필연적인 순간 앞에서 비굴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의 시원시원한 포옹을 보며 내가 가졌던 막연한 두려움이 못내 부끄러워졌다.
동시에 그녀가 보여준 격려는 결코 나약함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누구보다 간절하게 3연패를 꿈꿨고, 그 꿈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에 넘어진 순간에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다짐해본다. 후배들에게 기꺼이 길을 열어주는 여유만큼이나, 나 또한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치열하게 노력하겠노라고. 3연패를 향한 그녀의 집념이 소중했던 것처럼, 선배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는 나 역시 내 몫의 활주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일 테니까.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선배의 격려는 자칫 공허한 훈수가 될 수 있음을 다시금 새긴다.
내일 출근하면 사무실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후배들을 조금 더 깊이 응원할 생각이다. 누군가의 우상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결정적인 순간에 "넌 할 수 있다"고 진심을 담아 말해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 그들이 나를 앞질러 갈 때 기꺼이 길을 터주되, 나 역시 부끄럽지 않은 선배로 남기 위해 내 몫의 활주를 멈추지 않으려 한다. 클로이 킴처럼 공중에서 멋지게 돌지는 못해도, 적어도 후배의 성장이 내 기쁨이 되고 나의 열정이 그들에게 자극이 되는 그런 선순환의 관계를 꿈꾼다. 40대의 품격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부장'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쥔 것을 기쁘게 나누어주면서도, 내 꿈을 향한 고집을 꺾지 않는 그 팽팽한 균형감 속에서 완성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