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감자, 그리고 나의 책상
영화를 보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팝콘을 축내고, 누군가는 예술적 미학을 논한다.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나는 영화 속에서 인간을 공부한다. 타인의 삶을 관찰하며 '사람은 왜 저러고 사나'를 탐구하는 것이 꽤 즐거운 취미다. 하지만 일상이 눅눅한 솜이불처럼 몸을 짓누르는 날엔 공부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우고 싶어진다. 그럴 때면 나는 관성적으로 영화 <마션>을 틀었다. 이 영화는 내게 일종의 정신적 자양강장제다. 지친 일상에서 헛웃음이라도 한 번 터뜨리고 싶을 때, 마크 와트니를 찾아 화성으로 떠났다.
영화의 설정은 황당할 정도로 가혹했다. 화성에 홀로 고립된 남자. 산소가 떨어지면 죽고, 물 생성기가 고장 나면 죽고, 식량이 바닥나면 그날로 화성 토박이 귀신이 되는 처지다. 나 같으면 첫날부터 우주복 헬멧을 벗어 던지고 통곡하다가 운명을 달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크 와트니는 정말 '된 놈'이었다. 그는 절망할 시간에 감자를 심고, 지구와 통신할 방법을 찾았다. 심지어 그는 끔찍하게 싫어하는 디스코 음악밖에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인분으로 감자를 키우는 그 처절하면서도 이성적인 생존 방식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의지라는 것이 얼마나 단단해질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마크 와트니, 그는 진정한 '인간 합격'이다.
사실 요즘 나의 상황도 화성 미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에서 맡게 된 업무들이 딱 그 꼴이다. 대부분 우리 회사에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야 하는 일들이다. 전례가 없으니 매 순간이 막막하고 어렵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동료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하는 일이라 어깨가 더 무겁다. 과연 우리가 이 생경한 길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 혹여나 내가 방향을 잘못 잡아 동료들의 소중한 시간만 낭비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자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란, 사실 확신보다는 걱정에 더 가깝다. 보이지 않는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중압감에 패배주의가 슬며시 고개를 들 때, 나는 다시 화성의 그 남자를 떠올렸다.
"You solve one problem, and then you solve the next problem… and if you solve enough problems, you get to go home."
다시 본 오늘 와트니 교관님의 마지막 말씀이 내 가슴에 꽂혔다. 인생은 거대한 비극의 집합체가 아니라, 사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자잘한 문제들의 연속일 뿐이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한탄해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오늘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일은 무엇인가?"를 묻는 게 훨씬 실속 있다. 거창한 성공을 확신하기 전에, 일단 오늘 마주한 복잡한 데이터 하나를 정리하고 막힌 매뉴얼 한 줄을 읽어 내려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감자 심기'다. 그러다 보면 나도 어떻게든 나의 안식처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