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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9. 2023
철학은 해롭다.
자크 라캉: 알랭 바디우 세미나
철학자는 아픈 사람이다. 아픈 사람이 잘못된 생각으로 쓴 글이 철학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해임되어야만 한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자크 라캉이다.
철학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는 신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 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필로소피라는 단어의 뜻으로 들어가 보면 답은 간단하다. 지혜의 대한 사랑이다. 지혜와 지식은 다른 것이다. 지혜는 지식과 달리 형이상학적인 담론이다. 예를 들어 과유불급 같은 말이 지혜이다. 비록 이 책은 라캉에 대한 알랭 바디우의 세미나이지만 제1장은 니체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한다. 결국 철학이라는 것이 펼쳐지기 위해서는 언어가 개입이 되어야 하고, 언어로서 말해진 지혜 혹은 진리는 절반만 사실이며, 철학은 절반만 해롭다는 결론으로 귀착된다. 긴 담론이 응축된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본래의 뜻을 왜곡할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철학이 언어에서 오는 한계 때문에 절반만 해로웠다면 라캉의 철학에 대한 고발도 집행유예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라캉은 새로운 관념으로 철학의 문제점을 이어간다. 철학은 수학에 막혀있다. 철학은 정치의 구멍을 매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학의 진리에 대한 사랑을 문제 삼는다. 3가지 추가 혐으로 인해 라캉은 집행유예가 아니라 사형을 언도한다.
3가지 모두 다른 방향에서 철학의 권위를 실추시킨다. 중요한 점은 라캉이 그의 주장이 철학을 대체하는 대안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라캉은 단순히 철학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것에 중점을 둔다. 마치 조선시대 때 가장 끔찍한 형벌이 사약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죄를 얼굴에 문신으로 남기는 형벌 효과와 비슷하다. 철학의 문제점을 각기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지만 이 3가지 내용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이 행위이다. 정신분석학은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분석이 핵심이다. 라캉은 분석의 핵심은 불안이라고 했다. 실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은 실재를 환상으로 대체한다. 하지만 실재를 아무리 환상으로 잘 포장해도 실재는 불안을 유발한다. 정신분석을 통해 그 불안을 들어내는 것이 정신분석이라고 라캉은 말한다. 반면 철학은 만족을 주려한다. 철학자는 진리를 발견하고, 발견된 진리와 사랑에 빠진다. 진리와 사랑에 빠진 철학자는 그 환상적 담론 안에서 만족하고 머문다. 반면 정신분석학은 숨겨진 불안을 찾아내고, 그 불안은 행동의 동력이 된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이 무조건 선택해야만 하는 상태에 몰릴 때 하는 선택은 항상 옳은 선택이라고 한다. 사람을 극단의 선택으로 몰아가는 것이 불안이다. 이 점에서 철학과 정신분석학의 명확한 차이가 나타난다.
이 책은 알랭 바디우의 세미나 중 마지막 세미나이다. 그래서 그의 반철학에 대한 주장이 다른 2번의 세미나보다 더 명확하다. 비록 철학이 오염된 언어로 환상 안에서 머무르는 학문이라도 나는 철학책 읽기를 중단할 수 없다. 해로운 것을 알아야 유익한 것도 알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직 내 뇌에는 철학으로 더럽혀질 공간이 많이 있다.
#알랭바디우
#알랭바디우라캉세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