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인상 레몽 루셀
화요일 저녁에 철학 수업을 듣는다. 철학 선생님은 라틴어 책을 직독직해 해주시면서 수업을 진행하신다. 프랑스에서 박사를 하셔서 당연히 프랑스어를 하신다. 인문학자가 살기 척박한 한국에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영어 과외도 하셨던 것 같아서 영어도 잘하신다. 한 마디로 지식인이다 그래서 지식인 가지는 오만함도 느껴진다. 조금 다른 사람을 깔본다고 할까? 근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아서 그 오만함이 이상하지 않다. 지속적으로 다른 사상을 흡수하다 보면 너무 평범한 생각과 행동에 시니컬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 상식적인 것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것인가를 알면 나오는 파열음 같은 것이다.
아프리카의 인상을 읽으면 기존 문학에 대한 저자의 오만을 느낀다. 또한 기존 문학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다. 너희가 했던 문학은 이야기라는 굴레와 언어라는 형식에 조금의 변형만을 주었을 뿐이다. 나는 완전히 새로운 문학을 창조하겠다. 그래서 이 책의 2부는 문학의 가장 오래된 형태인 신화적 형태나 민담을 집중적으로 나열한다. 민담이나 신화 같은 하찮은 이야기는 얼마든지 창작할 수 있다는 뉘앙스이다. 반면에 1부는 언어 구조를 건드린다. 위대한 소설가가 의존했던 언어를 나는 이 정도로 깊게 파고 들어서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한다. 8년 동안 이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정말 피를 토할 만큼 언어의 구조를 뒤틀고, 변형시키고, 새롭게 만든다. 예를 들면 '벽에 시계가 걸려있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벽은 물리적 벽이 아니라 푸르다는 뜻의 벽, 시계는 물리적 시계가 아니라 시야기 미치는 범위, 걸려있다는 마음이 걸리다는 내용으로 바꾸어서 '짙은 푸른색 때문에 내가 볼 수 없어서 마음이 불안하다'라는 형태로 언어를 새롭게 창작한다.
레몽 루셀 앞에서는 셰익스피어도, 도스토예프스키도 별거 아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일듯한 태도다. 위대한 작가를, 작품을 부정하려는 오만과 거기에 어울리는 노력이 이 작품 안에 있다. 그래서 그 오만함이 당연함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