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기다림과 이별의 준비

- 동생의 병상 앞에서

by 주니준

2023년 11월, 학교에서 일하고 있던 중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니 동생. 쓰러졌단다. 어떡하면 좋냐."


전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두려움과 울먹임. 그래도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쓰러졌고 병원에 옮겼으니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동생은 심정지가 온 지 한참이 지나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병원을 거쳐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습니다. 응급실 병상에 누워 있는 동생은 의식이 없었습니다. 세미코마 상태였고, 호흡도 좋지 않아 바로 기관절개술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3개월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니 병원에서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요양병원으로 전원되었습니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또 한 해가 흘렀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동생을 찾아갑니다. 의식도 없고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녀석. 그저 숨만 쉬고 있는 동생을 위해 온몸을 닦고, 머리를 감기고, 구강 면봉으로 입 안과 치아를 닦고, 바디로션을 온몸에 발라줍니다. 그리고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제 딸 이야기, 학교 이야기, 정치 이야기들을 주절주절하며 돌아옵니다. 그렇게만 해도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작년 겨울, 갑자기 상태가 악화된 동생을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녀석은 또다시 고비를 넘기고 세상의 연을 이어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이제 그만 가자. 그만 편해지자. 이렇게 의식도 없이 누워만 있는데 이게 뭐라고..."


하지만 그 말은 내게 또 다른 상처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동생은 여전히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네 번 투석을 받고, 엉덩이 욕창은 뼈가 보일 정도로 심각해졌으며, 등에도 욕창이 생겼습니다. 기관절개술을 통해 자가호흡을 하고 있지만, 폐렴과 기관지 감염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식은 없습니다. 가끔 무의식적으로 눈을 뜹니다. 하지만 눈맞춤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눈을 뜨면 멍하니 천장만 봅니다.


어렸을 때의 동생이 떠오릅니다.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을 피해 엄마와 함께 집 옥상에서 공포에 떨던 어린 동생. 반항심이 가득했던 학창 시절, 일자리를 전전하며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던 청년 시절. 결혼을 꿈꾸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사랑을 놓아야 했던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 모든 시간이 겹쳐져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누워 있는 그를 마주합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도 묻습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니?"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묻습니다.


무엇이 동생에게 가장 좋은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상태로라도 우리 곁에 있기를 바라는 것인지, 이제 그가 고통에서 해방되길 바라는 것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가족의 욕심으로 녀석을 붙잡고 있는 건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요? 저는 그 답을 아직도 찾지 못했습니다. 기다림이란 원래 설렘이나 기대를 동반하는 것이지만, 지금 제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답합니다. 너의 세상의 연을 놓은 시간을 그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네가 잘 떠날 수 있도록 잘 보내줄게라고... 언제 떠나도 따뜻한 손길을 기억할 수 있도록, 고통 속에서도 사랑받았음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의 마지막 마음이 후회가 되지 않도록.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이제 기다리지 않고 준비하려 합니다. 그를 위한, 그리고 남겨질 우리를 위한 이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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