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보이는 것과 보고 싶은 것

by 주니준

밤과 낮, 같은 길 다른 마음


1월의 끝자락, 사천 서포마을의 한적한 바닷가를 찾았습니다. 가는 길, 도로 양옆으로 벚나무들이 서 있었습니다. 도로 양 옆, 가로수로 서 있는 벚나무는 잎도 꽃도 없이 벌거벗은 채 바람을 맞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길을 지나며 상상했다. ‘봄이 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벚꽃이 흩날리는 그 길을 떠올리자, 봄날 언젠가 다시 찾을 생각에 작은 흥분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도착한 숙소. 통창으로 보이는 바다는 잔잔했습니다. 그리고 해가 지는 그 시간 작은 배 한 척이 포물선을 그리며 지나갔습니다. 마치 이곳의 고요한 삶을 전하는 듯했습니다.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 바둥거리던 마음을 그리 다독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밤 11시, 멀리서 연락이 왔습니다.

"엄마, 나 너무 아파."
타지에서 학교 다니는 딸아이. 아르바이트 도중 몸이 아파 집으로 돌아갔다는데, 삼십 분 간격으로 토하고 설사를 한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잠시 일상을 멎추고 나선 길나섬이었지만 딸아이의 전화에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밀려와 안절부절 어쩔 줄 몰랐습니다. 마침 함께 길나섬을 해 준 이는 어여 다녀오라며 저를 챙겼습니다. 결국 옷을 챙겨 입고 새벽 시간 차에 올랐습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뿐.

하지만 오후에 보았던 벚꽃 흩날릴 봄날을 떠올리며 잠시 설렜던 그 길, 새벽 그 길은, 너무도 깜깜했습니다. 가로등조차 드문 어촌 마을의 어등길, 그 길에는 그 어느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민가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도 없었습니다. 세상을 가득 채운 어둠이 주는 그 묵직함, 그리고 깜깜한 새벽 시간이 주는 공포,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 그것만이 있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작은 움직임마저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벚나무들조차 낮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자동차 불빛에 비치는 벌거벗은 가지들이 그저 기괴했습니다. 간혹 지나치는 빈집은 그 어둠 속에서 더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숨을 참고 차 속력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달려 고속도로에 들어섰을 때, 간간이 보이는 새벽 차들의 불빛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딸아이의 곁. 끙끙거리고 누워 있는 녀석을 챙겨 새벽 응급실로 갔습니다. 3개의 수액을 맞고서야 열도 내리고 속도 진정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 녀석의 상태가 호전되는 것 같아 죽을 먹인 뒤, 안도하며 다시 바닷가 그곳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그 시간, 오후였습니다. 햇살이 비추는 마을은 처음과 같았습니다. 벚나무도, 어촌 도로도, 모든 것이 똑같았지만, 내 마음은 그리 달랐던 것입니다. 밤에는 두려웠던 그 길이, 또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벚꽃을 꿈꾸며 설렜던 마음도, 어둠 속에서 두려웠던 감정도, 결국 다 내 마음속에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저는 낮과 밤, 같은 길을 다른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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