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종사를 보니, 세간의 빛깔은 빛깔도 아니더라”

[순례노트3-⑩]남양주 수종사와 다산 그리고 초의

by 동욱

수종사는 언제 가도 좋다.


수종사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언제 봐도 좋다. 이른 아침 물안개도, 한 낮의 아스라한 윤슬도, 해질녘 불그스름한 노을도, 하루 어느 때 바라봐도 결코 순례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수종사 산령각에서 바라본 풍경

1년 가운데 ‘이 때가 최고’라는 은근한 차별도 없다. 신록이 울창해지고, 단풍이 들고, 눈이 내리는 설경 모두 순례자를 감동시킨다고 한다.

두물머리. 두 갈래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져서 양수리다. 수종사는 한강이 시작되는 그 곳을 바로 위에서 조망한다.


조선시대 문인 서거정(1420-1488)은 “동방에서 최고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고 했고 많은 시인 묵객들도 예찬했다.

운길산 수종사 일주문

수종사 가는 길은 여느 절처럼 산길을 돌아 올라가야 한다.


삼거리 큰 길에서 굽이굽이 산길을 자동차로 10분 정도 올라가면 일주문이 나오고 곧장 불이문이다.

수종사 불이문. 뒤쪽으로 해탈문 가는 계단이 나온다

불이문 뒤쪽 돌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한 두 사람만이 지날 수 있는 해탈문이 나온다. 이제 곧 부처님의 공간이나온다는 예고편일까?

수종사 해탈문

좁은 해탈문을 지나면 확 트인 무량무변한 풍경이 순례자를 맞이한다. 반전매력을 담은 공간 배치가 지혜롭다.

수종사 대웅보전 앞 풍경. 묵언이라고 적혀있다

수종(水鐘).


조선시대 세조가 1458년 강원도 상원사 계곡에서 피부병을 치료하고 환궁하는 길에 이 지역에 묵었다. 그런데 한밤 중 종소리에 잠을 깼다.


신하들이 알아보니 천년 고찰 옆 바위굴 속에 18나한상이 모셔져 있고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수종사 범종각과 은행나무

종소리 사연을 들은 세조는 이곳 사찰을 다시 짓게하고 은행나무 두 그루를 하사했다고 한다.


수종사 언덕에 있는 은행나무는 키가 30미터 가량 되고 나이는 500살이 넘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노란 단풍을 순례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세조가 하사했다는 은행나무

세조와의 인연 덕분에 붙은 이름이 수종사란다. 사찰 이름을 흔히 부처님 말씀이나 설법한 장소에서 따오는 것에 비춰보면 수종사 작명은 조금 달랐다.


대웅보전 옆의 사리탑도 그렇다.

수종사 대웅보전 옆 사리탑과 팔각오층석탑

사리탑의 주인공은 이름난 고승이 아니라, 조선 태종과 후궁 의빈 권씨 사이에 난 정혜옹주다.


비록 어머니는 다르지만 세종대왕의 여동생이기도 한 정혜옹주는 결혼 5년 만에, 그것도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이세상과 이별했다.

“정혜 옹주(貞惠翁主)의 빈소에 사제(賜祭)하였다. 그 제문에,

“왕은 말하노라.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은 운명에 관계된 것이나,

골육간의 애정은 죽거나 살거나 다르지 아니하다.

오직 너의 성품이 곧고 아름다우며, 자질은 현숙하였다.”

<세종실록26권, 세종6년(1424년) 10월 14일>

수종사 정혜옹주 사리탑

태종 사후에 비구니가 된 어머니 의빈 권씨는 하나 뿐인 딸의 극락왕생을 위해 불교식으로 화장했는데,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세종의 여섯 째 아들인 금성대군이 고모 정혜옹주를 위해 시주했고 1439년 부도를 세우고 안치했다.


수종사 부도 옆에는 팔각오층석탑이 있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이 석탑에서는 조선 성종의 후궁들이 조성한 불상과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가 발원한 금동비로자나불좌상 등이 나왔다.

수종사가 비록 신라시대 때 창건됐다고는 하지만, 관련 자료나 설화는 거의 없고 오히려 조선시대와 연관성이 더 높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에서 나온 금동불좌상(출처:공공누리)

수종사와 조선시대 최고의 인연은 단연 다산 정약용(1762~1836)이다.

남양주 정약용 유적지에 있는 정약용 동상

설명이 필요 없는 조선의 천재 다산은 수종사 인근이 고향이며 수종사는 어릴 때 뛰놀던(?) 놀이터다.

수종사 산령각 올라가는 계단길

네이버 지식백과에 올라있는 ‘여유당전서’를 검색해 보면 수종사와 운길산에 대한 다산의 시와 산문이 제법 나온다.


14세 때인 1775년 ‘수종사에서 노닐며(遊水鐘寺)’라는 시를 비롯해 ‘봄날 수종사에 노닐며(春日遊水鐘寺), 수종사에 묵다(宿水鐘寺)’ 같은 작품들이다.

수종사 은행나무 전망대에서 본 두물머리

특히 1783년 22살 때 진사 시험에 합격한 뒤 쓴 ‘수종사에서 노닐다(遊水鐘寺記)’라는 산문에서는 ‘①유년 시절에 노닐던 곳을 장성한 뒤에 찾아가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고, ②곤궁하였을 때 그냥 지나쳤던 곳을 공명(功名)의 뜻을 이룬 뒤에 찾아가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며, ③외로이 홀로 갔던 곳을 귀한 손님과 좋은 친구를 데리고 찾아가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라며 군자삼락(君子三樂)을 정의하면서 ‘수종사 소풍’ 글을 올리기도 했다.

수종사 은행나무 전망대에서 본 한강기맥

수종사 경치를 묘사한 작품도 물론 있다.


수종사 눈 풍경(水鐘寺賞雪)

신선이 사는 선계와 같이 아스라하고, 縹緲閬風玄圃

백옥 숲과 은 병풍이 두른 듯, 周遭玉樹銀屛

하늘은 봉우리에 닿아 검어지고, 天近峯巒似黑

물은 여울을 만나 더 푸르네. 水逢湍瀨暫靑

<정약용,소내사시사(苕川四時詞) 제11수,1786,여유당전서 제1집 제1권>

다산기념관에 전시된 여유당전서

군자삼락까지 이야기 하면서 수종사를 사랑했던 다산.


1801년 전라도 강진으로 귀양 가면서 가족은 물론 수종사에 대한 그리움도 컸을 것이다. 오죽하면 ‘호남에 4백군데 사찰이 있지만 아스라이 보이는 수종사의 높은 누각 보다는 못하다’는 시를 남겼을까?


1818년 오랜 유배가 풀려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다산의 수종사 사랑은 다시 이어졌다.


1831년 초겨울 70세 나이에 두 아들(학연, 학유)과 초의 선사(1786~1866), 그리고 정조대왕의 사위 홍현주(1793~1865) 등 당대 지식인 벗들과 함께 수종사 산행에 나선다.

수종사 올라가는 길에 바라본 두물머리

하지만 궂은 날씨에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다산만 산행을 포기했다. 그때 남긴 시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836년 75세의 나이로 세상과 이별하니 더욱 그렇다.


“~~북쪽 산비탈 일천 굽이를 부여잡고 올라가

동화의 만곡 티끌을 맑게 씻고자 하나

이 같은 풍류놀이에 따라가기 어려워

흰머리로 읊으며 바라보니 마음 진정 슬퍼라”

<정약용, ‘해거도위가 수종사에 노닐려 하나, 늙어 따라갈 수 없네’

(都尉將遊水鐘寺, 余老不能從), 1831, 여유당전서 제1집 제6권>

다산기념관에 전시된 수종시유첩

다산을 뒤로 하고 산행에 나선 이들이 쓴 ‘수종시유첩(水鐘詩遊帖)’에는 수종사의 아름다움은 물론 당시 지식인들의 지적 유희와 시 창작 대결이 온전히 담겨 있어 또 다른 멋을 느끼게 한다.


다산의 맏아들 정학연이

“~~바라보매 미친 구름 탑과 높이 나란하다…

펄럭펄럭 흡사 마치 등선(登仙)의 흥취 있어,

사다리를 치우고서 곧장 붉은 노을에 다다르리.”라고 읊자

둘째아들 정학유가

“~~하늘 길 올라보니 가지런히 좋구나.

빼난 기운 긴 허공에 학춤 추듯 너울대고…

구름 끝 아스라이 옥사다리 바라보네”라고

화답한다. <정민,『다산의 재발견』,휴머니스트,2011,pp.632-633>

왼쪽 산 입구에서 말을 타고 수종사로 가는 모습. 홍현주의 그림

비록 당색은 달랐지만 다산을 존경했던 정조의 맏사위 홍현주도

“~~정토가 앞에 펼쳐지고 실마리가 드러나자

노래하고 읊조리며 화답함은

천강에 달이 뜬 것 같고

만 리에 구름 한 점 없는 것 같아

그 쾌활함은 이루 표현할 수 없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민,p.637>


초의선사는

“수종사의 바람소리와 우렛소리를 듣고 보니,

일체 세간의 온갖 악기 소리는 소리도 아니었다.

수종사의 눈과 달빛을 보니,

일체 세간의 온갖 빛깔은

빛깔이라 할 수도 없었다.”고

그 마음을 전했다. <정민,p.638>

수종시유첩에 기록된 이만용의 제사(題辭)

특히 홍현주와 초의 선사가 산행 끝에 수종사에 도착해 차를 마시며 주고받은 대화는 초의선사의 저서 ‘동다송(東茶頌)’ 집필의 기초가 됐다.


"동다송 1권.

동다송은 해도인 홍현주의 명을 받들어 짓다. 초의 사문 의순.

東茶頌卷一. 東茶頌承海道人命作. 草衣沙門意恂"

<초의선사 장의순,『한국다도고전 동다송』,이른아침,2020,p.20>

수종사 찻집 삼정헌

초의선사는 동다송에서 ‘우리나라 차의 우수성은 물론 차의 효험, 차 재배법, 차를 만들고 우려내는 법, 마시는 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우리나라 차에 대한 모든 것을 총정리했다.


지금도 수종사에는 삼정헌이라는 찻집이 있어 두물머리를 굽어보며 그 시절 선조들의 지혜와 다향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수종사 삼정헌 외경

///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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