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가 달구지 끌고…건달뱅이가 말아먹어”

-허풍과 보신, 패배주의 반복은 시스템의 문제?-

by 동욱

2026년 1월 19일 함경남도 룡성기계연합기업소.


1단계 개건현대화 공사를 마치고 준공식이 열렸다.


연단에 오른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현대화 공사로 일정한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게 됐다며 관련 기관과 노동자들을 칭찬했다.


국가 경제의 자립성을 공고히 하고 경제 발전을 추동할 잠재력을 확보한 진일보의 성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칭찬으로 연설을 시작하던 김정은 위원장. 갑자기 분위기를 돌변시킨다.

2026년 1월 19일 김정은 룡성기계연합기업소 시찰. YTN 캡처

“그러나 나는 다음의 사실을 이보다 더 큰 성과로 간주합니다.”라고 말문을 떼더니 룡성기계공장 현대화 공사는 “맡은 소관에 불충실하고 무능한 경제지도 일군들의 고질적인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 명백한 실례”라고 날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들은 사업초기 “바르지 못한 언동으로 당중앙을 우롱했고 자질과 능력도 없으면서 양심과 초보적인 책임의식까지 져버렸다”며 “그 모양 그 꼴 밖에 안 되는 사람에게 중임을 맡긴 상황”을 혹독하게 비유한다.


“황소가 달구지를 끌지, 염소가 달구지를 끕니까? 부총리동무는 제 발로 나갈 수 있을 때, 더 늦기 전에 제 발로 나가시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부총리동무를 해임시킵니다.”


룡성기계연합기업소는 북한의 최대 산업설비 생산 공장으로 ‘어머니 공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그곳을 일부 현대화 했으니 잔치라도 해야 할 텐데 난데없이 경질을 발표한 것이다.


경질된 사람은 양승호 내각부총리.


2020년 4월 12일 내각부총리로 승진됐으니 약 6년 만에 경질된 것이다. “그 모양 그 꼴 밖에 안 되는 사람에게” 6년 가까이 경제정책의 중임을 맡긴 셈이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4년 7월 31일 수해현장을 방문한 김정은. 서울신문 캡처

2024년 7월 말 신의주를 비롯한 평안북도과 자강도 일대에 물난리가 났다.


수해 현장을 둘러본 김정은 위원장. 곧바로 인사조치를 단행했다.


우리의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사회안전상 리태섭을 경질하고 후임에 방두섭 당 군정지도부 제1부부장을 임명했다. 평북과 자강도 당 책임비서도 교체했다.


“재해방지사업을 만성적으로, 관조적으로 대한 결과 맥없이 재난을 당하는 폐단을 가져왔고, 직무수행을 심히 태공(게으름)함으로써 용납할 수 없는 인명피해까지 발생시켰다”는 게 ‘즉각적인 처벌’의 사유였다.


바로 한 해 전인 2023년. 이번엔 내각 총리가 사실상 표적이었다.


2023년 8월 21일. 평남 안석 간석지 침수 현장.

2023년 8월 21일 평남 간석지 피해 현장을 찾은 김정은.동아일보 캡처

배수 공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바닷물이 넘쳐 벼를 심은 논 270정보를 포함해 모두 560정보의 간석지가 침수됐다. 여의도 면적의 두 배가 넘는 셈이다.


김 위원장은 현장에서 내각 관료들을 건달뱅이로 몰아세웠다.


“김덕훈 내각의 행정경제규율이 점점 더 극심하게 문란해졌고 그 결과 건달뱅이들이 무책임한 일본새(일하는 태도)로 국가경제사업을 다 말아먹고 있다”


심지어 내각 총리 이하 일군들은 ‘당중앙의 호소에 호흡을 맞출 줄 모르는 정치적 미숙아들’로 ‘경종을 경종으로 받아들일 줄 모르는 지적저능아들’이라며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쏘아 붙였다.


그런데 김덕훈 내각총리는 김정은 위원장 본인이 5년 전에 발탁했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시행된 경제발전 전략 5개년 계획이 “모든 부분에서 엄청나게 미달됐다”며 ‘쓰라린 교훈’을 통해 단호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 뒤 당시 59세로 비교적 젊은 관료인 김덕훈을 경제 수장으로 선택한 것이다.

2021년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연설하는 김덕훈.한겨레 캡쳐

김덕훈 내각총리는 2021년 1월 1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2016년부터 시작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목표를 수행하지 못한 결함의 원인은 내각을 비롯한 경제 부문 지도일군들이 패배주의에 빠져 눈치놀음과 요령주의를 부리는 현상들을 극복하지 못한 데 있다”고 진단했다.


북한은 같은 날 내각부총리 8명 가운데 6명을 교체하고농업상과 전력공업상, 대외경제상, 재정상, 상업상 등 우리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인사 20여명을 물갈이 했다.

경제 실패의 책임을 바로 전 내각으로 돌리면서 국면전환을 꾀하고 변화와 쇄신(?)을 하기 위한 김정은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도 결국엔 소용없을 거라는 전망이 한 달도 못 돼 수면위로 드러났다. 그것도 김정은 위원장 본인의 질타로 확인됐다.


2021년 2월 8일부터 사흘간 열린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2021년부터 시행할 새 5개년 계획은 구태의연한 것과는 결별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다”며 김정은 위원장

이 직접 당과 내각을 깬 것이다.

2021년 2월 당 중앙위 회의 참석한 김정은. 조선일보 캡처

“내각이 경제계획에 주도적이지 않고, 각 부처의 안을 기계적으로 종합해 현실가능성이 없다”

“알곡 생산 목표는 계획단계부터 관료주의와 허풍을 피할 수 없게 돼 있다.”

“건설 부분 경제 일군들은 숨고르기를 하면서 흉내나 내려는 보신과 패배주의의 씨앗이다”


이 회의에서 김정은은 몇 사람을 손가락으로 지목하며 비판과 분노를 쏟아냈다.


김두일 당 경제부장은 일어선 채로 비판을 받았는데 결국 임명 한 달 만에 경질되고 만다. 오수용 당 비서가 새로운 당 경제부장으로 교체됐다.

2021년 2월 당 중앙위 회의 모습.조선일보 캡처

김정은 위원장이 극도의 분노를 쏟아내며 경제 컨트롤 타워인 당 경제부장을 한 달 만에 경질, 교체하고 정책 실행을 총괄하는 내각을 모두 물갈이 했는데… 5년이 지난 지금도 경제 담당 각료와 당료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보신과 패배주의에 젖어 있다고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문책할 일이 생기면 지방으로 보내는 노동교화 형부터 심하게는 처형까지 공공연히 일어나는 사회 아닌가?


그런데도 거의 매년 연례행사처럼 최고 지도자가 분노와 질책을 되풀이 하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그것도 보신이니 태만이니 눈치놀음에 패배주의 같은 비슷비슷한 사유가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게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이쯤 되면 북한 경제 관료들의 인성이나 자질,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 경제가 안고 있는 시스템에 근본 적인 결함이 있는 것 아닐까? ///


*제목 배경사진은 YTN 화면을 캡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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