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위주의와 ‘목표 달성’의 역설-
북한은 2026년 1월
‘용기 백배, 신심 드높이 떨쳐 나서서 새해 진군을 다그친다.’
순천청년탄광은 지난해 보다 수만 톤의 석탄을 더 생산할 것을 결의하고, 평양 김정숙방직공장은 수백 명의 방직공들이 2년분 이상의 계획완수를 궐기했단다.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는 발표도 경쟁적으로 이어진다.
풍곡청년탄광이 지난해보다 1.5배의 생산실적을 기록했다고 하자 무산광산에서는 생산계획을 하루 평균 103% 넘치게 수행했단다.
공업자재 분야도 빠질 수 없었는지 2026년 들어 20일 동안 수천 톤의 시멘트를 증산했다고 열을 올린다.
“증산투쟁, 창조투쟁속에서 충성의 대오는 장성한다”는 구호도 찬란하다.
9차 당대회를 앞둔 북한은 새로운 생산 목표를 결의하고 독려하며 초과 달성을 축하한다.
아직도 양적 생산에 치중하고 있어 시대에 뒤쳐져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뭐 그래도 애초 설정한 대로 계획과 목표를 이루거나 뛰어넘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개인이나 농장, 사업소, 기업 같은 생산 주체들이 공동체에 약속하고 대외적으로 공표한 계획과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또 목표 수치를 채우지 못했을 때 다가올 비판의 강도가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면….
계획과 목표 초과 달성의 역설이 여기에 숨어있다.
특히 북한 같은 사회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탓인지 북한에서는 우리가 흔히 접하기 어려운 단어가 있다.
‘본위주의’
화폐 가치를 일정량의 금과 연동하는 금본위제라는 단어와 유사하다. 하지만 북한의 본위주의는 많이 다르다
북한은 본위주의를 “국가와 사회의 이익보다도 협소한 자기 기관, 자기 지방, 자기 개인의 이익과 명예, 공명을 앞세우는 사상 관점과 사업태도”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하면 각종 이기주의를 뜻하는 데 기관 본위주의, 지방 본위주의 등등의 말들이 파생돼 나온다.
본위주의와 ‘계획과 목표 달성’이 결합하면 예기치 않은 역설 혹은 꼼수가 발생한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나라의 최고지도자답게(?) 모순적 상황과 꼼수를 잘 알고 있다.
2021년 2월 12일 당 중앙위 회의에서 김정은이 지적한 꼼수(?)들이다.
①올해 전력생산계획을 현재 전력생산수준보다 낮게 세웠다.
②자재 수급을 문제 삼아 신발생산계획을 형편없이 낮게 세웠다
③평양시 살림집 건설계획을 당대회 결정 목표보다 낮게 세웠다
애당초 계획을 낮춰 잡는 이유도 간파하고 있다.
“계획을 낮게 세워놓고 연말에 가서 초과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으려는” 꼼수라는 거다
또 다른 본위주의도 김정은이 직접 언급한다.
④필수 자재를 쌓아 놓고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능력껏 알아서 자력갱생하라’는 건 자기의 책임을 아래 단위에 밀어버리는 태만 행위.
⑤국가경제지도기관이 권한 타령, 조건 타령을 하며 속수무책으로 앉아있는 낡은 타성
목표는 일부러 낮춰 잡고, 가진 재료는 안 내놓고, 책임은 위나 아래로 미루고, 비판 대상은 나만 아니면 되고…. 이런 상황이 만연하다면 사회나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지 못한다.
김정은은 “부정부패가 개인이 저지르는 범죄라면 본위주의는 부문과 단체 이름으로 자행되는 더 엄중한 반당, 반국가, 반인민 행위라며 단호히 쳐갈겨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약 60년 전에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으니 말이다.
“지금 일부 공장들에서는 쓰지 않는 자재를 잔뜩 쌓아놓고도 다른 공장에 주지 않아 생산에 큰 지장을 주고 있다…귀중한 자재를 사장시키는 것은 국가에 큰 손실을 끼치는 혹심한 기관본위주의이며 해독행위이다” <김일
성,전국기계공업부분일군회의에서 한 결론 1967.1.20.>
실제로 김정은의 2021년 지시도 효과가 없었고 그 이후에도 거의 해마다 당 고위간부와, 내각에 여전히 불호령을 내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참고:“염소가 달구지 끌고…건달뱅이가 말아먹어” -허풍과 보신, 패배주의 반복은 시스템의 문제?-)
왜 이런 일이 생길까?
결국엔 모든 경제 활동을 계획대로 맞춰야 한다는 시스템 때문이다.
소비자들에게서 인기가 많으면 ‘물들어올 때 노를 젓듯이’ 신속하게 많이 만들어 팔아야 하고, 너무 많이 만들어 가격이 떨어질 거 같으면 생산량을 조절해 손해를 보지 않아야 할 텐데 북한 공식 경제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데도 중국은 이미 경제시스템이 시장 동향에 민감할 정도로 맞춰져 있는데 북한은 여전히 반세기전 구호에 매달려 있다.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해체된 지 벌써 35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사회·경제시스템의 근본적 개혁 없이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김정은의 분노와 질타는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다.///
*제목배경사진은 2025.11 KBS 화면을 캡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