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절·광명성절 용어 사라지면 ‘정상국가’?

-수령 신비화 대신에 ‘아버지 원수님’

by 동욱

‘제3차 2.16 경축 인민예술축전’

김정일 생일축제를 알리는 일명 선전화 문구다.


김정일 생일 84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2월 13일부터 18일까지 동평양대극장, 함흥대극장 등에서 열린다고 북한매체들이 소개했다.


어라! 그런데 무언가가 빠졌다.


2월 16일 김정일 생일은 북한의 광명성절 아닌가?

그런데 광명성절이라는 단어가 빠진 것이다.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 태양절과 더불어 북한 최대의 명절로 꼽히는데….

2024년 선전화와 2026년 선전화. 광명성절 단어가 빠졌다.연합뉴스캡처

김정일 생일 경축행사는 2022년부터 2년마다 열린다.


1차인 2022년과 2차인 2024년에는 ‘광명성절경축 인민예술축전’으로 표기했다.


2026년 이번에는 ‘광명성절’ 대신 그냥 ‘2.16경축’으로 표기한 것이다. 주체연호도 사라졌다.


2년 전에도 비슷한 조짐은 있었다.


2024년 4월에 북한 매체들이 김일성 생일을 태양절이라 하지 않고 그냥 ‘4.15’로 부른 것이다.


2025년에는 태양절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횟수는 많이 줄었고, 광명성절이라는 용어의 사용 빈도도 감소했다.


태양절 혹은 광명성절을 “의도적으로 다른 표현으로 대체하거나 삭제하고 있다”는 게 통일부의 평가다.

KBS캡처

태양이니 빛나는 별이니 하는 표현을 은근슬쩍 빼는 이유가 있을까?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 시절 ‘모래로 쌀을 만들고 솔방울로 총알을 만들었으며 축지법을 쓰고, 가랑잎을 타고 큰 강을 건넜다’고 선전하면서 신격화, 우상화의 정점을 보였던 북한 아닌가?


20세기 후반인 1996년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천하를 쥐락펴락,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라는 선전가요까지 배포한 북한 아닌가?

축지법 관련 북한 노래 공연. TV조선캡처

그런데 김정은이 보기에도 그런 선전선동이 황당무계했을까? 김정은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민망했을까?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3월 초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편지에서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게 된다.”고 했다.


“수령은 인민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헌신하는 영도자”라는 것이다.


수령을 신비화하지 말라는 교시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2020년 5월 노동신문은 ‘축지법의 비결’이라는 기사에서 “사실 사람이 있다가 없어지고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나며 땅을 주름잡아 다닐 수는 없는 것”이라고 썼다.


김일성 축지법 설을 부정한 것이다.

2020년 5월 20일 노동신문 축지법 관련 기사.TV조선캡쳐

비록 김일성 본인이 1945년 11월 29일 평안북도 룡천군을 방문했을 때 “사람이 땅을 주름잡아 다닐 수는 없다”며 축지법을 부정했다는 기록이 있다고는 하지만,


2020년 5월의 노동신문 보도는 분명 지난 수십 년 간 북한이 김일성을 신격화하고 우상화한 것과는 결이 다른 내용이다.


황당무계할 정도의 신격화가 오히려 김일성의 항일운동 경력까지 의심토록 하는 역효과를 냈기 때문일까?


지도자의 신비화, 신격화가 국제사회에서 조롱받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김정은이 통치하는 북한은 ‘사회주의 정상국가’임을 강조하려는 걸까?


북한이 태양절이나 광명성절이라는 용어가 대체됐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그 이유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도 당연히 없다.

김정일 생일맞아 미술관 관람.뉴시스 캡처

김정은이 2019년 지시했기에 최고지도자를 신비화하는 걸 자제하는 분위기가 분명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정상국가’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시도로 볼 수도 있다.


역으로 김정은의 선의로 인한 우상화 중단이 아니라, 황당무계한 이야기로는 더 이상 주민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라는 선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김정은 위원장의 홀로서기 방편이자 김정은 개인에 대한 독자 우상화 작업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분석이 정답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2026년 2월 3일 북한TV의 8시 보도 한 토막에서 힌트는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코너 제목은 ‘위대한 령도, 불멸의 업적’이며 박옥희 아나운서가 평양 애육원과 육아원을 취재한 현장 리포트다.

김정은 2014년 평양 애육원 육아원 방문.서울신문 캡쳐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은 원수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14년 2월 3일 평양 육아원과 애육원에 사랑의 자욱을 새기셨습니다. 최송란 원장 선생님은 그날 아버지 원수님의 품에 안겼던 높은 반 어린이들이 지금은 대학에도 가고 조국 보위 초소에도 섰다고 얘기했습니다.…(중략)…아버지 김정은 원수님의 숭고한 후대관, 미래관을 가슴 깊이 새겨 안고 지금 전국의 육아원, 애육원의 보육원, 교양원들은 친부모가 되고 훌륭한 교육자가 되어 원아들을 나라의 기둥감들로 키워가고 있습니다.”


아나운서와 4명의 취재원 인터뷰가 나오는 이 리포트는 모두 22개 문장으로 구성돼 있다.


22개의 문장 속에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은 원수님’ 혹은 ‘아버지 원수님’ 이라는 표현이 19번 나온다.


아나운서가 말하는 9개의 문장에서는 9번, 인터뷰를 한 4명의 취재원들은 13개 문장을 이야기 하는데 10번 나온다. 거의 한 문장에 한 번씩 나오는 셈이다.


‘아버지 원수님’이라는 표현이 빠진 문장은 전체 22개 가운데 3개다. ///


*제목배경사진은 연합뉴스에서 캡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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