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는 없고 모두 선불·충전식…왜?-
“누구나 지식경제 시대의 당당한 주인이 되자”
2025년 11월 2일 북한 노동신문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지식경제.
지식이나 정보, 기술을 활용해 제품이나 서비스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제 체제를 의미한다. IT나 신소재, 통신, 금융 부문이 주로 해당한다고 네이버 AI브리핑은 설명한다.
북한도 ‘지식경제 시대의 주인’이 되고자 하니 한편으론 반갑기도 하다.
눈길을 끄는 건 “수백 만 명의 가입자를 가진 삼흥전자지갑”이라는 문구다. 가입자가 수백만 명이라고 하니 귀가 솔깃하다.
2023년 북한 매체에 처음 언급된 ‘삼흥전자지갑’은 스마트폰으로 다운로드 받아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전자결제 앱’이다. (참고: 진달래, 푸른 하늘, 삼태성의 공통점은?)
‘삼흥전자지갑’으로 통신 요금 결제는 물론 평양 내 버스와 지하철도 탈 수 있고 쌀이나 옥수수를 파는 국영 양곡판매소에서 양곡구매권도 구입할 수 있단다. 여기에 ‘예약봉사’ 기능도 있어 식당이나 결혼식장을 예약할 수 있다고 한다. 일부 식당에선 배달서비스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결제 대금은 어떻게 빠져나가지? 우리처럼 은행 계좌에서 돈이 빠져 나가는 건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북한 금융시스템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북한주민들은 2009년 단행된 이른바 ‘화폐 개혁’ 때문에 당국과 은행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다.
2009년 11월 30일 기습적으로 단행된 ‘화폐 개혁’은 12월 6일까지 구권 100원을 신권 1원으로 교환하는 게 주요 골자다. 일주일 동안만 교환이 가능했고, 한 가구당 구권 10만원까지라는 상한선을 뒀다.
당시 북한 노동자 1명이 평균 100만 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하니, 날벼락 같은 조치였다. 가진 돈의 90%가 눈 녹듯 사라졌다.
앉은 자리에서 현금 자산 90%를 강탈당하자 북한 사회는 충격과 공황상태에 빠졌다. 주민 불만은 극에 달했
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결국 박남기 재정경제부장이 책임을 지고 해임됐다. 그는 화폐개혁 석 달 뒤 공개 총살당했다.
그런 트라우마 때문인지 북한 주민들은 은행에 돈을 예치하는 건 국가에 돈을 바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믿지 못할 자국 화폐를 달러나 위안화로 바꿔 집에 숨겨 놓는 일도 상식이 됐다. 장판 밑이나 도배지 틈에 외화를 숨겨 보관한다는 걸 대한민국 사람도 알 정도이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모바일 앱카드’가 가능하지?
북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전자결제 앱은 ‘삼흥전자지갑’이고, 울림, 전성, 나래 등 다양한 전자결제 앱이 존재한다. 이들 앱은 유성은행, 조선중앙은행, 조선무역은행 등과 연계돼 있다.
그렇다고 개인이 은행 계좌를 만들어 돈을 예치하는 ‘신용카드 시스템’은 아니라고 한다.
쉽게 이해하려면 우리의 ‘충전식 교통카드’를 떠올리면 된다. ‘전자지갑’에 먼저 현금을 건네 적정 금액을 충전시킨 다음, 거기에 들어있는 잔액만큼 사용하는 거다.
카드나 앱을 처음 만들 때 은행에 가야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은행갈 필요도 없고, 계좌를 터서 돈을 넣어둘 필요도 없다고 한다.
호텔이나 백화점 등 큰 상점에서 현금을 주고 앱카드를 충전하면 끝이다.
더구나 “삼흥전자지갑을 운영하는 삼흥경제정보기술소는 고객이 요청하면 지정된 장소로 직접 방문해 현금을 수령하고 이를 전자결제카드와 연동시키는, 이른바 ‘찾아가는 충전 서비스’를 시행할 정도다.” <손광수, 북한의 전자결제 앱 삼흥전자지갑-현대화와 통제 그 사이에서, KB지식비타민,2026>
물론 전자결제 앱 작동을 위해 북한 금융전산망과 휴대전화망이 인트라넷을 통해 연결돼 있다. ATM기기나 POS기, 카드 리더기 같은 금융 인프라도 조금씩 갖춰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은행에 대한 불신이 심한 북한에서 전자결제 앱이 확산된 건 코로나 팬데믹이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한다.
코로나 때 휴대전화 게임 앱을 사용하던 젊은 층들이 앱 개발회사가 만든 전자결제 앱을 접하게 되면서 편리성에 눈을 떴다는 분석이다.
“실제 북한 내 청년들 사이에서 간편결제가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소식통은 ‘전자결제 체계는 수도, 도 소재지, 시내, 중심 도시들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확신하면서 믿음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면서 ‘어른들도 밤새 안경 끼고 자식들에게 프로그램 사용법을 배우고 돈이 있으면 충전해 결제하면서 흥겨워할 정도’라고 말했다. 편리한 간편결제 보급이 은행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을 다소 불식시키고 있는 모양새다.”<데일리NK,2024.6.4.>
여기에 자금을 100% 추적할 수 있는 디지털 거래를 활성화해 경제 통제권을 한층 더 강화하려는 북한 당국의 정책적 노림수가 스며든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북한 당국과 은행에 대한 주민 불신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다.
“북한 당국은 전자결제 사용이 국가 정책에 동참하는 ‘애국적 행위’라고 포장해 주민들의 적극적인 사용을 유도하고 있다. 평안남도 소식통은 ‘평성시에서는 전자결제 사용에 관한 강연회가 이미 여러 차례 진행됐다’고 전했다. 사람들은 일단 ‘북데기 돈(북한 지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 편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감시나 정책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에 충전 금액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전했다.”<데일리NK,2025.11.26.>
북한은 2021년 ‘전자결제법’을 신설했으며 개인과 기관, 기업소등이 전자결제체계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했다. 전자결제의 목적을 ‘현금 유통량을 줄이고 무현금 유통량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전자결제법 1조는 규정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전자결제를 통해 주민들이 국영상점이나 대중교통 요금 등 다양한 결제처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유인하지만, 실질적인 목표는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해 자금 흐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데 있다. 북한의 전자결제 동향은 북한 금융 발전 방향을 엿볼 수 있는 가늠좌가 될 것이며 북한의 체제 방향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손광수,2026>///
*제목 배경사진: 북한 정보화성과전람회.2025.11.2. 헤럴드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