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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사장의 서고 Sep 25. 2018

옥탑방이 지옥이라는 당신에게

옥탑방은 열악하지만 기회의 공간이기도 하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의 특이한 행보가 화제가 됐었습니다.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에서 한 달 동안 거주하겠다는 공언을 하더니 정말 그 기간을 모두 채우고 나온 것입니다. 하필 그 기간이 기록적인 폭염과 겹쳐 ‘쇼’라는 비난도 많았고, 직접 경험해봐야 아는 것이 있다는 긍정론도 있었지만 옥탑방이 서울에서 가장 거주환경이 나쁜 곳이라는 것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인기 웹툰 <신과 함께> 같은 곳에, 지하 단칸방과 옥탑방의 앞 글자를 따면 ‘지옥’이 된다는 한탄조의 대사까지 등장을 할까요?      




이런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옥탑방이나 반지하 같은 끔찍한 주거환경은 당장 없애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공간들을 없애는 것은 되려 도시 하층민들에겐 재앙에 가까운 일입니다. 옥탑방은 인위적으로 고통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지옥’이라기 보단, ‘인력사무소’에 더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죠. <도시의 승리>는 이런 통찰들을 담은 꽤나 도발적인 책입니다.      





저자인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책에서 많은 사람들을 호되게 비판합니다. ‘역사적 가치’를 운운하며 도시 재개발을 막는 이들을 비판하고, ‘환경’을 얘기하며 도시 확장을 반대하는 이들을 겨냥해 데이터를 근거로 그네들의 주장이 얼마나 환경에 해를 끼치는지를 냉철하게 논증합니다. 물론 책의 구석구석에서는 그의 도시 사랑이 뚝뚝 묻어납니다. 그렇지만 그의 개인적 선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선호에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음을 철저하게 논증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물론 하버드 경제학과 교수답게 철저하게 시장 친화적으로요.      




앞서 언급했던 옥탑방의 예를 살펴봅시다. 서울 시내의 좋은 아파트들은 물론이고 읍이나 면 같은 기초 자치단체에 있는 주택보다도 주거환경이 나쁜 옥탑방을 두고 좋은 주거지라고 말할 사람은 없겠지만, 서울 옥탑방은 시골 주택보다 한 가지 분명한 이점을 제공합니다. 일자리 취득 기회와 그 일자리로 비교적 저렴하게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죠. 아시다시피 시골 지역에는 일자리가 거의 없습니다. 농사지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분들은 농산물 수매가가 얼마 정도인지 한 번 확인해보시고 충격을 받으시면 되겠습니다. 그렇기에 일자리를 찾는 청년층은 도시로 올라올 수밖에 없는데, 안타깝게도 도시는 무료로 체류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옥탑방의 존재가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저렴한 거주지에 살면서 일을 하면, 상대적으로 실질임금이 올라갈 수 있으니까요.      




열악한 주거환경이라는 이유로 옥탑방을 없애버리면, 취약계층은 그만큼 더 비용이 높은 거주지로 옮기거나 상대적으로 집값이 더 저렴한 교외지역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선의로 주거환경을 개선하려고 하다가, 취약계층의 잠이 4시간 줄어들고 그만큼 통근을 하게 만드는 거죠. 그러면 저소득층들은 모두 열악함을 감내하고 평생 옥탑방에서 살아야 하냐면, 그건 아닙니다. 저자인 글레이저 교수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도시 고도개발 제한을 푸는 것이 꼭 필요함을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서 지속적으로 얘기합니다. 도시의 토지는 한정되어 있고, 도시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니 수요도 동일하게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고층화가 진행되지 않으면 감당할만한 수준의 주택 가격 달성이란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대단한 얘기가 아니라, 수요-공급의 단순한 경제학인 셈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도시의 인구집중은 피할 수 없습니다. 특정 도시에 거주하고자 하는 인구가 늘어나는 것에 맞추어 해당 도시의 건물들이 고층화되면 다른 어딘가는 분명 인구가 줄어들 거니까요. 그리고 여기서 책의 제목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도시의 승리>라니, 그가 애정해 마지않는 도시만의, 도시의 장점이 툭툭 튀어나오기 시작합니다. 인간과 인간의 연결을 통한 아이디어 조합은 물론 도시에서만 가능한 다양한 혁신과 교육, 문화적 이점 등 어렴풋이 짐작만 하던 것들이 끝없이 구체적 사례들과 함께 등장합니다. 특히나 쇠락한 도시의 대표 격인 디트로이트가 왜 망했는지, 뉴욕은 어떻게 섬유업의 도시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부활할 수 있었는지는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최근 떠오르는 도시인 휴스턴과 뉴욕의 비교도 꽤나 재밌구요. 그런데 제가 가장 눈길이 갔던 것은 ‘환경’의 관점에서 도시의 승리를 다룬 대목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층 빌딩 롯데 월드타워


흔히들 도시는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더 심하게는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글레이저 교수는 이런 인식이 잘못된 것임을 각종 데이터를 통해 철저하게 논파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기존에 존재하는 도시를 고층화하는 것 혹은 그 도시 인근을 개발하는 것은 분명 주변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일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 개발이 불가능해지면 늘어난 인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비교적 새로운 녹지 지역 혹은 환경이 거의 파괴되지 않은 소도시 지역으로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 덧칠을 하는 수채화와 같이, 농담은 진해지더라도 차라리 먹이 있는 지역에 계속 칠하는 것이 백지에 새로 색을 입히는 것보단 환경 파괴가 덜하다는 것이지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저자는 대도시에서 교외지역으로 이동하는 스프롤 현상(sprawl)에도 경계를 보냅니다. 교외의 녹지가 훼손되는 것은 물론이고, 교외에서 직장이 있는 대도시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동차 매연이나 탄소배출도 문제가 되니까요. 게다가 도시의 집중적인 냉방이나 난방은 교외지역에서 단독 주택을 데우거나 식힐 때보다 훨씬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에 교외의 단독 주택이 늘어날수록 에너지 소비는 더욱더 늘어나게 됩니다. 차라리 도시를 고층화해서 냉난방을 집중화하고, 통근 시간을 줄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하는 것이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란 것입니다. 아스팔트 깔린 도시가 교외지역의 잔디 깔린 단독주택보다 되려 환경 친화적인 곳이라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물론 이 책이라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적인 도시들의 성공의 이유는 물론이고, 실패한 도시들의 실패한 이유들을 통해 ‘성공적인 도시’가 되기 위한 조건들이 나열되긴 하지만 정말 본질적인 도시의 성공 조건은 느슨하고 흐릿하게 제시될 뿐입니다. 그걸 알아냈다면 아마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겠지만, 그런 본질적 부분에 대한 조금 더 깊은 탐구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 책을 덮고 난 다음에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은 따로 있습니다. 번역의 질이 생각 이상으로 조악하다는 것입니다. 책의 일부를 옮겨오면 이렇습니다.     


보스턴과 그 인근 지역은 수출할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인적 자본이 중요했다. ‘뉴잉글랜드’의 기후는 그들이 떠나온 ‘잉글랜드’의 기후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보스턴은 영국인들이 고국 가까이서 더 저렴하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을 해외로 많이 수출할 수 없었다.     


제가 특별히 독해력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인용한 부분을 처음 봤을 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30분 정도 고민을 해 본 결과, 제가 이해한 것은 이렇습니다. ‘뉴잉글랜드’는 ‘잉글랜드’와 기후가 유사했기 때문에 영국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것은 뉴잉글랜드에서도 생산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영국인들이 자기네 나라에서 저렴하게 구할 수 없는 물품들을 영국에 수출하려고 해도, 기후가 비슷한 뉴잉글랜드에서는 어차피 그걸 못 기르니 수출할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 이걸 저런 식으로 번역을 해둔 것입니다.    



이 정도는 차라리 이해가 어려운 문장이지, 오역도 있었습니다. 이 부분입니다.

    

이런 가격 차이를 감안해 봤을 때 세금과 주택 가격과 교통비를 제외한 퀸즈 거주민들의 실질소득은 1만 9,750달러에 약간 못 미친다. 연소득이 1만 달러가 안 되는 휴스턴 거주자들도 똑같은 식으로 계산해 보면 그들의 실질소득은 3만 1,250달러에 이른다. 실질 달러 가치로 환산해 보면 휴스턴 가족이 58퍼센트 더 부자가 된다.  


문장 안에서도 모순이 있는 것이 보이실 겁니다. 연소득이 1만 달러가 안 되는 사람들의 실질 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다니 이상한 문장이지요. 앞뒤의 맥락을 바탕으로 해석했을 때, 해당 서술은 이런 의미일 겁니다. 휴스턴 거주민들은 퀸즈 거주민들보다 연소득이 1만 달러 정도 낮음에도, 낮은 주택 가격으로 인해 실질 소득이 훨씬 높다는 그런 의미를 ‘1만 달러가 안 되는 휴스턴 거주자들’이라고 오역을 해 둔 것이죠. 이런 식의 오류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어서 무척이나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도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는 무척이나 좋은 책이니, 감안하고라도 관심 가시는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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