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태양 아래> 리뷰
한국 사람들은 보통 북한을 무척이나 폐쇄적이고, 자국민들에게 인권 탄압을 가하는 막장 국가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그런데 사실 이건 무척이나 큰 오해다. 러시아 출신의 비탈리 만스키 감독이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에 담은 영상들을 보면, 그런 편견이 산산조각이 나실 테다. 북한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이 있는 나라다.
영화는 진미라는 어린 여학생이 ‘조선소년단’에 입단해서 태양절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원래 진미의 아버지는 신문 기자로 일하고 있었지만, 영화 촬영이 시작되자 갑자기 봉제공장의 기술자로 보직이 바뀐다. 진미의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영화 촬영이 시작되자 갑자기 두유 공장의 직원으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원래 거주하던 허름한 집을 떠나, 번화가의 대형 아파트로 이주를 하게 된다.
구체적인 성과를 살펴보자. 진미의 아버지가 기술자로 바뀌자마자, 봉제공장은 역대 최고의 성과를 올리고 직원들은 그 공을 진미의 아버지에게 돌린다. 이 정도면 ILO 사무총장도 삼보일배를 하면서 머리를 찧어야 하는 수준이다. 도대체 어느 국가의 노동정책이 이리 짧은 기간에 이토록 성공적인 재취업교육을 이뤘던가? 이 뿐만이 아니다. 진미의 어머니는 두유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면서도, 매 끼니마다 상다리가 부러질 듯이 쌓인 진수성찬을 내어온다. 찬장에 조리 기구라곤 아무것도 없고, 기름때 자국 하나 없는 주방에서 이런 음식을 해낸다는 것은 고든 램지도 못하는 일이다.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는 신묘한 수령님의 은혜 만세, 만만세다.
사실 이 영화는 북한 정부와 러시아 정부의 지원으로, 평양 중산층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는 것이 원래 기획이었다. 비탈리 만스키 감독은 몇 년 간의 협의를 거쳐 2013년부터 북한에 방문하여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시작했는데, 애초의 합의와 달리 북한 정부는 모든 것을 다 ‘연출’을 했다. 학교 장면도 연출, 등교 장면도 연출, 공연 장면도 연출, 집에서의 일상생활도 연출, 모든 것이 다 정교하게 연출된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이런 꼴을 보다 못한 감독이 독한 마음을 먹고 중간에 기획을 갈아엎은 것이 바로 요 <태양 아래>라는 작품이다.
이런 사정이 있어서인지, 영화는 재밌는 장면들을 꽤나 많이 담고 있다. 감독의 말로는 북한 사람들이 현대적인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아, 카메라가 촬영 중인지 아닌지를 잘 몰랐다고 한다. 덕분에 그는 ‘연출’을 지시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필름에 담았다. “여기서 더 밝게 환호를 해야지, 그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밥 먹으면서 김치를 많이 먹으라, 암에 좋다 이런 말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넣어 보시라요”, “미안합네다. 저 말씀을 하시기 전에 조선 소년단 참여를 환영한다 이 말씀을 먼저 해주셔야합네다”. 북한 정부 관계자의 연출 지시가 고스란히 담긴 장면들은, 그 자체로 북한이 주민들에게 어떤 식의 통제를 가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 작위적인 연출들 외에도, 그 사이사이에 보이는 북한의 자연스러운 모습들은 또 다른 측면에서 놀라움을 선사한다. 훈장으로 상의 전체를 채운 노 군인이라던가, 쓰레기통을 뒤져서 종이를 챙겨가는 아이들, 학교에 등교하며 커다랗게 그려진 김일성 김정일 부자에게 단체로 ‘등교 인사’를 하는 학생들, 초등학생들에게 김일성의 유년기 일화를 가르치며 ‘조선옷을 입고 조선말을 하면서 인민들을 배신한 나쁜 놈들’을 비난하는 교사까지. 구미권 국가에 사는 이들은 이걸 제3자적 입장에서 지켜보며 동아시아에서 구현된 디스토피아에 혀를 찼겠지만, 나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 너무 이질적이라 거부감이 든 것들도 있지만, 그 안에서 발견되는 동질성에 너무 소름이 끼쳤거든.
혹시 북한에도 ‘국민체조’가 있다는 것을 아셨던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물론 실제 명칭이 국민체조는 아니다. 북한말로는 ‘업간체조’, 그러니까 일 사이사이에 하는 체조인데 이 사람들도 우리나라의 국민체조와 같이 녹음된 구령에 따라 체조를 진행한다. 둘둘 셋넷 다섯 여섯 일고~ 여덟. 노래만 이상야릇한 중국풍일 따름이지, 국민체조와 전반적인 느낌이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과거 한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그걸 아침마다 인민들에게 시킨다. 비슷한 건 또 있다. 과거 박정의 정부 시절 ‘국민교육헌장’을 강제로 암송하게 만들었던 것과 유사하게, 북한에서는 조선소년단 가입이 필수이며 그 과정에서 ‘소년단 선서’를 암송하게 시키더라고.
이런 것들 외에도 느낌상 과거의 한국과 비슷하단 생각이 드는 것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혹자는 과거 우리나라와의 유사성이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이걸 바꿔 말하면 그런 식의 통제가 계속됐을 시 한국도 비슷한 상황을 맞이했을 거란 말이 된다. 해방 이후 별로 큰 차이가 없던 인구집단도 반세기 만에 저 꼴이 났는데, 우리라고 달랐을 리가 없으니까. 처음에는 외국인 감독이 찍은 일종의 프릭 쇼라고 생각했지만, 영화를 다 볼 즈음에는 평행우주 속의 한국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꽤나 섬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