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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사장의 서고 Oct 13. 2018

후쿠시마는 어떻게 재앙이 되었나

언론인이 기록한 후쿠시마 이후 100일간의 기록

 얼마 전 고양시에서는 무척 황당한 일이 있었다. 고양시에 위치한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는데, 그 원인이라고 지목된 것이 '풍등'이었거든. 피의자로 소환된 것은 인근 지역에서 거주하던 스리랑카인. 사정은 이랬다. 해당 지역 초등학교에서 풍등 날리기 행사를 진행했었는데, 그걸 주운 27살의 외국인이 재미 삼아 다시 날렸던 풍등이 하필 그 저유소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풍등에서 잔디로 옮겨 붙은 불은 결국 탱크에까지 이어졌고, 해당 탱크에 저장되어 있던 석유 260만 리터가 불에 타 사라졌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화재의 원인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고, 다행히도 피의자로 지목된 외국인 청년의 책임보단 풍등 하나에 대형 화재가 날 정도로 관리가 취약했던 회사의 책임론이 불거져 그는 풀려나게 됐다.




 그런데 이 사건을 보다 보니 나는 묘하게 기시감이 들었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인명 피해가 없었지만 만약 그 이상으로 확산됐다면 정말 초대형 참사로 이어졌을 것 아닌가. 부실한 시설관리라는 기름에 작은 풍등이 하나 끼어들어 일어난 대형 참사, 나는 이게 과거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꽤나 양상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사건을 정면으로 다뤘던 르포 서적 <관저의 100시간>이 떠올랐다.   



 이 책은 2011년에 일본을 강타했던 도호쿠 대지진과, 그로 인해 발생했던 후쿠시마 원전 사태 초기의 정부 대응 100시간을 <아사히신문>의 기자가 정리한 르포로, 머리말에서 저자가 힘주어 말하듯 “논평과 추측은 배재했다. 나는 오로지 팩트로 말하겠다.”에 지극히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시간대별로 총리 관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어떤 조치를 취했었는지를 관계자들의 증언과 남아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꼼꼼하고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당시 총리였던 간 나오토의 증언까지 확보할 정도로 취재에 열을 올렸고, 그 많은 내용을 지루하지 않게 잘 풀어 내놨다.




 서평을 어떻게 쓸까 좀 고민을 했었는데,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대목 몇 개를 추려서 간단히 옮겨 적어볼까 한다. 다만 한 가지 미리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단순하게 국내의 원전에 대입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사고가 발생했던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은 국내 원전과는 달리 차폐가 완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재해와 인재가 겹치자 참사의 형태로 발전을 한 것인데, 설계 자체가 다른 국내 원전은 비슷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멜트다운이나 방사능 물질의 외부 유출의 우려가 매우 낮다. (참고기사) 다시 말해, 무작정 일본과 같은 일이 발생하리라 넘겨짚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말이다. 진보된 설계 방식 덕분에 국내 원전이 안전성은 훨씬 높지만, 시스템이나 인적 관리에 있어서는 도쿄전력의 부적절한 대응과 부실한 원전 관리 시스템을 통해 경각심을 갖는 방향으로 읽는 것이 더 좋으리라 생각한다.  




 원자력안전 총괄 책임자가 비전공자  



 한국 관료체계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본 관료체계는 확실히 이런 점에서 좀 막장성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원자력 안전 관련 책임 관청은 경제산업성 산하 원자력안전•보안원인데, 후쿠시마 원전 사태 당시의 보안원장은 데라사카 노부아키(寺坂信昭)였다.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의 교류전원 완전 상실 사태가 일어난 직후, 일본 정부 차원의 위기관리센터가 꾸려졌었다. 원자력 안전 관련 최고책임자인 보안원장 데라사카도 당연히 여기에 참여했는데, 문제는 이 양반이 사무계 출신 인사였던 것이다. 당시 일본 총리였던 간 나오토는 도쿄공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소위 초엘리트 이공계 출신이었는데, 원전 사태 초기에 데라사카 원장에게 현재 원전의 상태가 어떤지를 물어보자 당연히 보안원장은 우물쭈물하기만 했다. 분노한 총리가 “자네 기술에 대해 알고 말하는 건가?”라고 물었고, 데라사카는 “제가 경제학부 출신이라서··· 그래도 기본적인 내용은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보좌관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이후에 보안원장과 총리가 따로 면담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여기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안전감독 관련 최고책임자가 비전공자였다는 점이다. 재난 상황에서 내각 수반인 총리에 대한 기술적 조언을 책임져야 할 자리가 보안원장인데, 관례적으로 보안원장 자리를 사무계와 기술계가 돌아가면서 맡았었단다. 뭐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한다. 근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본인의 전공을 떠나서 관리감독 기관의 대표란 인간이 초기 사태 파악도 제대로 못 한 상태로 ‘제가 경제학부 출신이라…’ 따위의 어이없는 변명을 했다는 거다. 이 사건 이후에 데라사카는 총리 관저를 떠났고, 대신 기술계 출신의 인사를 관저에 파견했다. 그런데 종국에는 기술계 출신 차장도 총리를 만족시키지 못해서 관저를 나섰고, 원자력안전•보안원이 아니라 같은 경제산업성 산하의 자원에너지청 부장을 대신 파견 보내는 촌극을 연출했다. 사고대응 요직에 실제로 기술적·정책적 조언을 해 줄 전문가가 없었던 셈이다.  



 정부 내의 정보유통 부재와 현장 정보의 수집능력 부족 



 이게 사실 제일 어이가 없었던 부분인데, 원전사고 당시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긴급 시 신속 방사능 영향 예측 네트워크 시스템(SPEEDI)’이라는 것을 이미 운용을 하고 있었다. SPEEDI를 이용하면 방사능 물질이 유출된 지점, 풍향, 풍속 등을 고려해서 방사능 물질이 도달될 지점 등을 예측하고, 그를 토대로 최소한의 지역에서 신속하게 재난 대피가 가능했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당시에도 분석이 계속 이루어졌었고, 그 내용은 경제산업성 산하 원자력안전•보안원으로도 당연히 전달이 됐었다. 문제는 보안원에서는 이를 정부에 제공하지 않았고, 정부가 꾸린 재난본부에서는 SPEEDI라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도 모른 상태로, 단순히 원전 반경 동심원 몇 km로 대피하라는 식의 대처를 했었다. 당시 원전 관련 재난본부를 총괄하던 간 총리는, 실각 이후 저자가 인터뷰 과정에서 이 얘기를 꺼내자 ‘그런 것이 있었습니까?’ 정도의 반응을 보여주며 격노했다고 한다. 저자가 당시 보안원장이던 데라사카를 인터뷰하며 이를 따져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가관이다. “문부과학성은 도대체 뭘 했습니까?” 이런 식의 정부 내 정보 유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의 건은 차라리 정부 내의 소통 문제지,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현장의 상태를 제대로 전달받지를 못한 것이다. 아무런 기능을 못하고 있던 보안원을 대신해서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대신 투입이 되었는데, 보안원이 보관하고 있어야 할 ‘원전 도면’이 재난본부에 없었다. 정말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보니, 순전히 이 양반의 원전 구조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서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결정하는 식으로 문제에 대응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현장에서 제대로 정보가 수급이 되지 않아서, 총리 관저는 후쿠시마 제1 원전 1호기의 외곽 건물이 폭발하는 사고를 TV 뉴스를 보고서야 접했다. 더군다나 현장에서는 위험하다는 판단 하에 냉각수로 해수를 투입하기 시작했는데, 관저에는 이 사실이 전달되지 않아 ‘해수 투입을 하라’는 결정을 투입을 시작한 지 1시간 후에야 현장으로 내려 보냈다고 한다. 시스템의 실패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막장기업 도쿄전력  



 앞서의 원인들에도 불구하고, 원전 사태가 저 지경으로 흘러간 것에는 도쿄전력의 막장 짓이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사태 초기, 후쿠시마 원전의 가동이 힘들어지자 전력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도쿄전력에서 ‘일시 정전 실시’ 공문이 관저로 통보됐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놀랐던 점이 있는데, 관저에서는 해당 조치로 인해 ‘자택 내 요양환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서 도쿄전력에 정전을 유예해줄 것을 요청한다. 가정용 인공호흡기라던가 산소 농축기 등을 자가에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 전력공급 중단으로 인해 환자가 사망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관저는 도쿄전력 부사장을 소환해, ‘큰 거래처들에 양해를 구해서 환자에게 통보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정전을 늦춰 달라’고 요청을 한다. 여기서 부사장이란 놈이 하는 말이 예술이다. “대형 고객부터 살펴야죠. 그런 부탁을 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정전 계획이 늦춰지긴 했는데, 참 읽으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근데 이것보다 더 심각한 건 따로 있다. 후쿠시마 제1 원전의 상황이 악화되자, 도쿄전력에서는 총리 관저로 전화를 걸어 ‘원전에서 직원들을 철수하겠다.’는 소리를 한다. 철수한단 말은 거의 원전을 포기하겠다는 말이고, 이 소식을 들은 총리는 격분해서, 통합 재난본부를 도쿄전력 본사에 설치하는 초 강경책을 편다. 근데 결국 도쿄전력은 현장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직원들까지 후쿠시마 제 2원전으로 철수시켰고, 제 1원전에는 냉각작업을 수행하는 최소 인력만 남게 됐다.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공기업이었으면 좀 나았을까란 생각도 든다만, 보안원도 저 꼴인데 여기라고 달랐을 것 같지는 않다.  



 맺으며



 이런 것 말고도, 책에는 참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웃긴 상황이 많이 담겨있다. 원전 관련 재난상황 시, 현장에서 방재업무를 담당하도록 규정되어있는 센터 건물에 방사능 필터가 설치되지 않아서 정작 그 건물을 이용을 못했다던가, 관저 내에서 원전 문제 관련 대응만을 위해서 선정한 임시 사무실에 통신 차단이 걸려있어서 휴대전화로 정보를 전달받으려면 관저 밖으로 나갔어야 된다거나 하는 등 ‘시스템의 일본’이라는 말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희한한 난관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일본 관료들은 재난 상황에도 매뉴얼대로·원칙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했고, 답답할 정도로 법적 근거 확인에 집착을 했다. 처음에는 미친놈들이라고 욕을 하며 읽었는데, 생각해보면 저게 맞는 것 아닌가. 재난 상황에서도 저 정도라면, 평소에는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일 처리를 할지가 보여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점들보다 더 대단하다고 느껴졌던 건, 이 책이 실제로 나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재난 당시의 최고책임자이던 간 나오토 총리는 물론 다양한 관련 분야의 사람들이 기명이든 익명이든 적극적으로 저자의 인터뷰에 응했었다. 그리고 저자는 이걸 19장짜리 주석에 빼곡하게 기록했다. 중요한 발언마다 출처를 꼭 명시했고, 정보원의 안위가 위험한 경우에는 익명으로 적었지만 ‘도쿄전력 측에서 반론할 경우 정보원을 명시하는 동시에 그가 취재에 응한 경위 등을 밝힐 용의가 있다’ 따위의 말을 빼곡하게 덧붙여뒀다. 기자가 작심하고 파면 이렇게 되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달까. 개인적으로 그보다 더 감명 깊었던 건, 저자 본인의 성향을 맺음말에서야 드러냈다는 점이다. 저자는 분명 ‘탈핵’을 주장하는 입장에 서있는 것 같은데, 나는 책 읽으면서 저자의 성향을 극후 반부에 가서야 약간이나마 읽어냈다. 정말 칼을 갈고, 사실만 담담히 서술한 책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길 권한다.




 덧붙여 나는 이번 사태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이번 풍등 덕분에 전국에 흩어져있는 저유소의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고, 정확한 시설 점검의 계기가 되어 다른 더 큰 참사를 막을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하고. 아쉽게도 후쿠시마에는 풍등이 없었다. 차라리 후쿠시마에도 '풍등'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이번 저유소 화재를 계기로 더 나은 관리 시스템이 구축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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