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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사장의 서고 Oct 07. 2018

위안부 다음에는 양공주가 있었다

국가 권력에 의해 상품이 된 여성들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장의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안부 기림비가 설치되자 자매결연을 맺고 있던 일본 오사카시에서 불편함을 나타냈고, 결연 파기라는 강수까지 두며 기림비의 철거를 요구했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 위안부 피해자들의 희생을 기리겠다는 감사한 행동에 많은 한국인들이 감동했지만, 나는 왠지 씁쓸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해방 이전에는 일본 정부가 그런 만행들을 저질렀지만, 정작 해방 이후에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와 비슷한 제도를 운영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다. 욕설과 비스무리하게 한 번 정도는 들어보셨을, ‘양공주’가 그 주인공이다.





 저자인 여지연은 이민 1.5세로, 원래는 신문기자로 일했었다. 그러던 중 역사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게 됐는데, 이 책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책의 형태로 엮어낸 것이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기지촌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군인아내(military bride)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저자는 한국 기지촌의 역사에서 시작해서,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 군인 아내들의 삶까지의 궤적을 보여줌으로써 국가-사회에 의한 여성의 착취 역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본군 위안부와 흡사한 구조로 착취당하던 사람들이지만, 정작 한국 내에서는 ‘미군에 몸 팔던 창녀들’ 정도의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그들의 삶은 어땠을까?




 일단은 기지촌 얘기에 앞서, 일본군 위안부 얘기부터 먼저 좀 꺼내보자. 일반적인 대중이 갖고 있는 위안부에 대한 이미지는 ‘무고하게 끌려가서 성적 착취를 당한 소녀들’ 정도이지만, 실제로 위안부를 구성하던 사람들은 꽤나 다양했었다. 애비가 팔아넘긴 경우, 부모 빚에 떠밀려서 팔려간 경우, 인신매매단에 납치당해서 포주에게 팔린 경우, 시급 좋은 일자리라는 꼬드김에 속아 넘어간 경우, 원래부터 성매매에 종사하던 여성 등. 전국 각지의 다양한 사연을 가진 여성들이 그렇게 위안소에서 성매매에 종사하게 됐고, 국가(당시엔 일본제국)는 그 착취 산물을 취할 수 있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분개하고 욕하는 일이지만, 이게 50년대 이후 한국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됐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소위 ‘양공주’라 불리는 미군 접대부도 비슷한 이유와 비슷한 목적으로 탄생하게 됐었으니까.




 저자가 취재한 많은 여성들의 사연은 참 기구했다. 전후에 제대로 된 일거리를 찾지 못해서 자발적으로 기지촌으로 흘러들어간 경우도 있고, 취업광고에 속아서 흘러들어간 경우도 있고, 미국이라는 유토피아를 좇아 기지촌으로 들어간 경우도 있었다. 동기와 기원이야 어찌 됐건, 그들은 속칭 마이킹(대출금 형태로 성매매 여성에게 임금을 선지급한 후, 이자를 부풀려서 사실상 빚으로 인신구속을 하는 제도)의 늪에 빠져서 강도 높은 성노동에 시달려야만 했었다. 도망가면 됐지 않냐고? 지금도 결혼 상대방의 순결 여부를 중시하는 모질이 남성들이 그득한데, 1950년대에 미군을 상대로 몸 팔던 여성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 줬을 리는 만무하다. 그네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빚을 갚고도 계속 일을 하거나, 미군과 결혼해서 마치 유토피아처럼 보이던 미국으로 이주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그녀들은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에 발을 딛고 있는 최초의 한국인 군인아내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패권국 출신인 미국 군인들은 왜 굳이 후진국의 여성들과 결혼을 하고, 또 미국까지 데려갔을까? 당장 요즈음의 한국 남성들이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 사생아를 잔뜩 만들고 돌아오는 것만 보더라도, 주둔지에서의 성적 유흥을 목적으로 한다면 구태여 결혼을 할 필요는 없었지 않은가. 저자는 이에 대해서 복합적인 이유를 들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그녀들이 선택된 이유는 요즘 한국에서 다문화가정이 늘어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병으로서 복무하던 남성들 중 다수는 미국 사회에서 중산층 이하의 계층에 속하고 있었고, 그즈음의 미국에서는 전통적인 여성상이 붕괴되어가던 중이었거든. 남편에게 순종하고 가사 일을 기쁨으로 아는 미국 여성은 어머니 대에서 거의 사라져버렸는데, 미디어를 통해 접한 동양여성은 순종의 끝판왕이었으니까 사병 월급으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다.




 그렇게 미국에 온 여성들은 엄청난 문화적 장벽에 직면해야만 했었다. 생전 먹어보지도 않았던 미국식 음식에 적응해야 하다 보니 초기 몇 달은 10kg 이상의 체중 손실을 겪어야 했었고, 그런 음식을 남편 입맛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도 엄청난 부담을 느껴야만 했다. 게다가 그네들의 짧은 영어실력은 외부 활동이 거의 없다 보니 별로 늘지도 않고, 사병 월급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까지 같이 짊어지다 보니 집에서도 하루 종일 일만 하는 삶을 이어가야 했다. 거기에 더해, 흑인 남편을 만난 아내들은 훨씬 더 고단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당시 미국 사회 내의 흑백갈등은 주둔지인 한국의 기지촌에도 영향을 미쳐서 클럽도 흑인 전용 클럽과 백인 전용 클럽이 나뉘었었고, 흑인 클럽에서 일하다가 흑인 남편을 만난 부인들은 이중의 차별을 겪어야만 했었으니까. 흑인으로서의 인종적 차별에 더해, 비서구 문화권에서 자랐다는 문화-관습적 차별까지 겹쳐진 삶, 나는 잘 상상도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미국에서 나름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초기에는 한국의 친척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올 수 있도록 보증을 서주기도 하고, 이민 이후에는 정착을 돕기도 했다. 인터뷰이 중에는 거의 스무 명의 한국인이 미국으로 오는 것을 도운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주류 한인 커뮤니티들은 그들을 이중적으로 대했다. 한인 교회에서 아무도 먼저 말을 걸지 않고 혼자 예배를 보는 아줌마, 혹은 할머니. 그렇지만 필요할 때는 무척이나 쉽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걸 거절하거나 일이 잘못 진행되면 서슴없이 ‘더러운 양갈보년’이라고 칭할 수 있는 대상. 흑인 남편을 둔 군인아내 하나는 면전에서 다른 한인에게 ‘깜둥이 양갈보’라는 말까지도 들어봤다고 한다. 정작 본인들도 WASP 외부의 차별적 위치에 처해있었으면서, 자신들보다 ‘비천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멸시하고 혐오하는 끔찍한 짓을 해댔던 거다.


미국 한인 교포들이 백악관 앞에서 극우집회를 열고 있다


 저자는 이를 미국이란 용광로의 동화 압력에 맞서다 보니 발생한 비극적인 현상으로 설명한다. 외부의 환경이 본인의 문화에 적대적이다 보니, 개인은 이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침해로 파악한다. 그러다 보니 본인의 정체성 중 본질적인 부분을 강화하려는 일종의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인데, 불행히도 그즈음의 한국에서는 ‘한국다움’이라는 것이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였던 거다. 민족과 국가를 버리고 제 한 몸 잘 살겠다며 미국으로 이주한 2등 민족 구성원(?) 취급을 당하던 교포들은, 한국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더더욱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맹신하는 안타까운 악순환을 겪은 거라고나 할까? 그래서 ‘민족 재생산의 수단’이 타민족 남성과 관계하여 ‘혼혈아’를 낳은 것은 절대 용납이 안 되었던 거다. 남성으로 상징되곤 하는 민족에 대한 배반이니까. 그런데 이런 자기강화는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 군인아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일어났다. 일본 제품은 절대 안 사고, 한국에 두고 온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없는 형편에도 계속 송금을 하는 방식으로 ‘애국’을 하는 것이 이런 방식이 아니고서야 도대체 어떻게 이해가 될 수 있나. 나는 교포 사회가 왠지 모르게 한국 사회보다도 좀 더 수구적인 것 같다는 의심을 품고 있었는데, 그네들을 이해하는 것에 약간의 실마리는 되지 않았나란 생각도 들었다. 여러모로 군사정권의 교육정책이 해외로 나간 이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친 셈이다.




 이런 식으로 한국인 군인아내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좋은 연구라고 생각하지만, 마냥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전쟁-한국의 형성을 인식하는 틀을 그대로 답습하여서 서술하고 있는데, 이거 딱 예전 NL들 사고관이다. 물론 미국이 실질적으로 제국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한국은 그 영향권 아래에 있는 국가란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만 평화롭고 목가적이던 한국 사회에 미군이 진주하여 강제로 발전을 이뤄냈다는 식의 황당한 주장을 펴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그냥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이런 것은 본격적으로 군인아내들의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에 마무리가 되니 다행이긴 하다만, 책 읽을 생각이신 분들께서는 그 부분은 감안하고 보시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된다. 애초에 위안부와의 유사성이 크다고 생각되어서 집었던 책이라 제국-식민지 사이의 위계적 구도 하에서 여성들이 희생당했다는 관점을 벗어나긴 힘들다만, 이 부분은 과연 박사논문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라 앞부분 읽을 때는 좀 많이 실망스러웠다.


평창올림픽에서 애국가를 부른 다문화가정 자녀들로 구성된 '레인보우 합창단'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한 번 정도는 읽어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 간의 위계에 의해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국가의 여성이, 상대적으로 국력이 강한 국가의 하층민 남성에게 조차 소비된다는 것의 의미를 좀 명확히 알았으면 싶거든. 이 얘기를 하면 보통은 “역시 국력을 키워야 한다. 국방비 높여라”던가 “우리는 힘이 없어서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 여자들을 그렇게 유린을 했다. 이제 우리도 자체 핵무장을 해서 일본 년들한테 똑같이 해주자” 따위의 개소리나 해댈 텐데, 사실 우리는 진즉에 그런 지위에 올라왔다. 베트남과 필리핀 혹은 중국의 조선족들이 과거 한국 여성들이 당했던 거시적 착취의 대상이 된 지 오래고, 미국 군인들이 한국인 아내들을 맞아서 문화적으로 압력을 가해 굴복시켰던 것을 한국 농촌의 시어머니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우리가 이미 상대적으로 국력이 강한 국가가 되어버렸다는 얘기다.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분노와 안타까움은 국내의 다문화 가정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일본제국이 위안소를 운영했던 것에 침묵했던 당시의 일본인들이 죄다 공범이라 생각하신다면, 여러분들 역시도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사 위안부의 착취에 대한 공범이다. 이런 이슈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분들이면 몰라도,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현재를 돌아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개인적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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