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서 더 무서운 비극
내 아이가 살인을 저질렀다면, 그것도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사람 수십 명을 죽였다면 아이의 엄마는 어떤 심정일까? 내가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살인사건의 범인 ‘딜런 클리볼드’의 어머니가 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을 집게 된 이유도 그 부분이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를 잠시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슈화되는 살인 사건이 많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살인사건은 생각보다 훨씬 많이 일어난다. 한국을 기준으로 2016년 한 해만 놓고 보더라도, 그 해에 발생한 살인사건은 총 948건이었다. 이 중 흔히들 생각하는 ‘살인’이라고 보기는 조금 애매한 자살교사/방조나 영아살해, 촉탁살인을 제외해도 896건의 살인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니 그를 낳은 두 부모는 1,792명. 그 사람들이 모두 ‘살인자’의 부모인 셈이다.
책을 읽기 전의 생각은 이랬다. 대부분의 살인자 부모들은 그 자녀를 잘못 키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내가 접한 살인자라곤 언론을 통해 다루어지는 극악한 사건들의 가해자가 전부였고, 살인자를 다루는 창작물들도 죄다 이들을 정신이상자로 그려냈으니까. 자녀가 그렇게 망가지려면 부모가 적극적으로 엄청난 학대를 했거나, 그와는 반대로 정말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아서 아이가 비뚤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한 때 유명했던 TV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만 보더라도 보통은 부모가 이상했지 않은가. 그런데 책을 다 읽은 지금에 와서는, 도리어 더 무서워졌다.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는 무척이나 멀쩡한 사람으로 보였으니까 말이다.
본격적인 책 소개에 앞서,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필요할 듯싶다. 요즘에야 ‘고교 총기난사’라고 하면 그리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콜럼바인 사건은 좀 특별했다. <일본 vs 옴진리교>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9.11 테러 이후의 세계에서 ‘테러’가 어떻게 인식되는지와 9.11 테러 이전의 세계에서 테러가 어떻게 인식되는지는 무척이나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잖은가. 누가 감히 미국의 심장부에 세워진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가 자살 공격을 감행해서 수천 명이 죽을 거라는 상상을 했었겠나?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도 이런 ‘고등학교 총기난사’ 부류의 시초였기에 미국 사회에 던진 충격이 정말 엄청났었다. 그 충격적 범행을 일으킨 두 명의 가해자 중 하나가 ‘딜런 클리볼드’이고, 그의 어머니인 수 클리볼드가 쓴 책이 바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이다.
책을 주문하고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과연 살인자의 엄마는 어떤 내용으로 책을 채웠을까.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으로 가득 채웠을지, 본인의 아이가 어쩌다 괴물로 변화하고 있었는지를 담담하게 서술할지, 그것도 아니면 그의 아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며 뻔뻔하게 변명의 말들을 내뱉을지. 아쉽게도 이런 예상들은 모두 틀렸었다. 책이 다루는 주된 내용은 좀 뜬금없을지도 모르지만 바로 ‘우울증’이었다.
수 클리볼드에 대해 잠깐 얘기를 해보자. 총기난사를 자행하는 끔찍한 살인마를 키운 사람이라면 아이를 학대했거나, 혹은 지나치게 방치를 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수 클리볼드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역에서 장애아동을 돕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었고, 그의 남편도 술을 먹고 매일 밤 아이를 때린다거나 하는 끔찍한 인간이 아니었다. 혹시 총에 미친 사람이라 그 가풍으로 인해 총기난사를 하게 된 것 아니냐면, 이 집안은 정 반대의 상황이었다. 미국 가정이라면 하나 정도는 갖추고 있을 권총 하나 집에 두지 않는 강경한 총기 반대론자였으며, 교외의 풍경 좋은 전원주택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리버럴 가정에 가까웠다. 아이들도 잘 케어를 받고 자랐고, 범인의 형은 이미 독립해서 안정적인 직장까지 갖고 있었다. 멀쩡한 인간도 뒤틀리게 만들 잔혹한 환경이 전혀 아니었단 말이다.
그렇지만 총기 난사는 실제로 일어난 현실이었다.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원인을 찾는다. 마이클 무어의 총기규제 다큐멘터리 <볼링 포 컬럼바인>에서도 잘 드러나듯, 당시 미국 사회는 다양한 원인들을 지목했었다. 부모의 끔찍한 양육방식, 폭력 게임, 잔인한 영화들, 심지어는 ‘마릴린 맨슨’의 음악을 꼽는 이들도 있었다. 부모였던 수 클리볼드도 그런 책임론에서 빗겨나갈 수는 없었고, 살해 협박도 숱하게 받게 되었지만 그런 상황이 가장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은 바로 그녀 본인이었다. 왜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그런 끔찍한 범죄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으며, 또 그의 아들이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몰랐냐는 자책과 반성이 책 내용의 핵심이다.
그녀는 지적한다. 우리가 범죄자들을 유독 ‘특별히 악한 존재’라고 단정하는 것 아니냐고, 그녀 역시 참사가 있기 전에는 그렇게만 생각했다는 고백을 한다. 그냥 어딘가의 악독한 사람이나 저지르는 것이 범죄이기에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덕분에 안심을 하고 살아도 된다고. 자녀가 범죄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품고 사는 것보단, 그냥 우리 애는 안 그러겠거니 믿는 것이 훨씬 편할 테니까. 전형적인 합리적 무관심(Rational Inattention) 현상이다. 그런데 무척 안타깝게도 그녀에게는 그 일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녀는 ‘가해자의 엄마’라는 윤리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책을 냈다. 그녀가 자녀의 우울증 기미를 알아챘더라면, 그 아이가 죽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니까.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평생을 죄책감과 부채감의 늪에 빠져서 살고 있다. 그녀와 같은 불행을 경험하는 이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아이의 우울증을 더 연구하고, 그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무척이나 귀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녀 스스로에게 쏟아지는 책임론을 덜어내기 위한 목적도 없다고 보긴 힘들지만 말이다.
리틀턴의 모든 엄마들이 아이가 안전하기를 기대하고 있을 때 나는 우리 아이가 남을 더 해치기 전에 죽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했어요
아이가 없는 나는 평생 이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다. 그리고 제발 이해할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 대상은 누구나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피해자 부모들도 자신들의 입장을 이야기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데 웬 가해자 부모의 책이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한 번 읽어보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