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기자가 알려주는 평양의 자본주의
한국에서 북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크게 세 부류 정도로 나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을 수복하지 못한 영토이자 경제적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하나 있을 거고, 민족의 분단이라는 아픔과 처참한 인권침해 상황에 놓인 북한 인민들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또 하나 있을 거고, 극히 일부이긴 하겠지만 북한 정권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보이는 이들도 있을 거다. 나 역시 북한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다. 하지만 나는 앞서 언급한 이유들보단 조금 다른 이유로 북한에 관심이 많다. 나에겐 북한이 일종의 코호트(cohort)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코호트란 보건학, 그중에서도 특히나 질병의 원인이나 발생 양식을 탐구하는데 초점을 두는 역학(Epidemiology)에서 사용되는 개념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흡연이 폐암의 발생 위험을 높이는 위험요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흡연이 폐암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것을 처음에 어떻게 발견하게 된 것일까?
일반적인 실험연구(experimental study)에서는 그 증명이 비교적 쉽다. 생쥐 같은 동물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한 그룹은 담배연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게 하고, 다른 그룹에는 그런 조치를 하지 않은 다음에 두 그룹에서 폐암의 발생 빈도가 차이가 나는지 확인하면 되니까. 그런데 인간을 대상으로는 그럴 수가 없다. 강제로 사람들을 모아다가 다른 조건을 모두 통제하고 가둬두면서 한쪽 그룹만 강제로 담배를 피우게 만들 수는 없잖은가. 그래서 등장한 것이 관찰연구(observational study)의 일종인 코호트 연구다. 이미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모집한 다음, 이들을 두 그룹(=코호트)으로 나눠 폐암 발생 비율을 쭉 관찰하는 거다. 물론 두 그룹 간에는 흡연 여부 외에는 큰 차이가 없어야 한다. 그래야 폐암에 대한 흡연의 기여도를 평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시 북한 얘기로 돌아와 보자. 내 기준에서 북한은 하나의 코호트 집단이다. 한국과 거의 동일한 역사적 궤적을 거쳐 해방되었으나, 휴전선을 기준으로 나누어져서 이질적 제도 하에서 긴 시간이 지난 특수한 집단. 그렇기에 북한과 비교하여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은 아마도 한국 문화권 고유의 특징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고, 반대로 북한에만 혹은 한국에만 나타나는 것들은 제도적 영향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나한테는 북한이 무척이나 관심의 대상인데, 그 욕구를 아주 잘 충족시켜주는 책이 발간됐다.
저자인 주성하 기자는 무척 특이한 이력을 가진 분이다. 북한의 서울대라고 할 수 있는 김일성 종합대학교를 졸업하고, 탈북하여 동아일보 기자가 되신 분이거든. 세상 물정 모르던 탈북 청년은 김일성 종합대학교 졸업장을 품에 꼭 안고 내려왔다가, 그것이 한국에선 휴지조각이라는 것을 깨닫고 참 절망했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면서 그는 북한에 관한 글을 쓰고, 자유아시아 방송을 통해 북한에 남은 그의 동포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전하며,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을 돕는 일들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 일련의 활동에서 나온 것이 바로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인 셈이다.
기존에도 북한을 다룬 책은 많았었다. 그렇지만 이 책이 더 귀한 이유는, 기존에 북한을 다룬 유수의 책들과는 달리 정말 생활 밀착형으로 평양 시민들의 생활을 다양한 방면에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이런 거다. 북한의 젊은 청춘들은 과연 어디서 섹스를 할까?
무척 흥미롭게도, 북한은 성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성교육’이라는 것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대중매체에서 성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장면은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단다. 그래서 1990년대 <민족과 운명>이라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키스 장면 몇 초가 북한 대중문화에서 가장 야한 장면이고, ‘섹스’라는 단어는커녕 ‘사랑’이라는 단어조차 입 밖에 내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라고 한다. 그러니 모텔이란 곳도 당연히 없고, 젊은 커플은 음식점의 밀폐된 식사 칸 하나를 빌리거나 심야의 목욕탕을 잠시 대관하는 것이 아니면 섹스를 할 곳이 없어서 산에 오르는 일이 잦단다. 평양 모란봉 인근이 커플들의 성지라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주목해야 될 부분은 현재 한국과의 비교다. 분단 이전의 성적인 보수성은 그리 차이가 없었을 것인데, 유독 북한이 세계적 평균보다 더 보수적으로 바뀐 것을 보면 이는 제도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실제로 책에서는 그 원인을 북한 당국의 체제 선전으로 꼽는다. 북한에서 본인들의 사회주의 아닌 사회주의 체제를 홍보하기 위해서 자주 동원하는 것이 바로 ‘퇴폐적인 자본주의 문화’라더라고. 예컨대 이런 식이란다. 한국과 같은 퇴폐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빈곤층 여성 대부분이 성매매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고, 음란한 영상들을 찍고, 그것을 돈을 주고 거래하면서 타락하는 문화라고 선전을 한다는 거다. 그렇기에 우수한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는 그러한 성적 퇴폐를 용인하여서는 안 되며, 그런 퇴폐적인 문화로부터 인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의 정보들을 적절히 차단해야 한다는 기적의 논리다. 그 덕택에 평양의 커플들은 모란봉 으슥한 풀숲에서 모기와 정사를 나누고 있다.
이런 식으로, 책이 다루는 평양의 생활사들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특히나 눈길이 갔던 것은 북한 내에 존재하는 엄청난 규모의 명품 매장들이었는데, 책을 읽기 전에는 나도 부패한 상류층이 인민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사치를 누리는 것이라고만 여겼었다. 그런데 이건 딱 절반 정도만 사실이었다. 예컨대 최근의 조선일보 보도를 살펴보자. 기사에서는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서 수입한 사치품 규모가 40억 달러에 달한다며, 해당 금액이면 식량 부족분의 2배가량을 구입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운다. 그런 비판도 맞는 말이긴 한데, 문제는 이런 사치품 구입이 단순히 향락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90년대 북한은 대량 아사 사건을 겪었다. 소위 말하는 고난의 행군 시기다. 이 시기를 겪으며 북한의 ‘사회주의’는 붕괴했다. 국가의 배급이라는 것은 유명무실해졌고, 물가가 폭등했으며, 장마당이라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시장경제가 북한 인민들을 먹여 살렸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다. 장마당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상품’이 있어야 하고, 이를 구매할 수 있는 ‘돈’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이게 북한 내부에서만 도는 돈과 상품이라면, 장마당에서 아무리 교환을 해봤자 의미가 없다. 아랫돌 빼서 윗 돌 괴는 그런 방식이잖은가. 결과적으로 북한은 장마당을 통해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비결은 ‘외화’에 있다.
현재 북한을 지탱하는 ‘돈’은 북한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벌어오는 달러나 위안화 등이다. 북한 정부는 이들을 해외에 나가게 해주는 대신 그 수익의 일부를 세금처럼 떼어 받는데, 이런 공식적인 세금 외에 더 들어가는 것이 북한 공무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뇌물이다. 간단한 인가 도장 하나 받는 것도 담배 한 갑은 쥐어줘야 하는 부패의 왕국에서, 해외에 나가 달러 좀 만지는 직업을 가지려면 뇌물도 상당한 액수를 줘야만 한다. 그렇게 나가서 나름대로 외화를 벌고 북한으로 귀환하면 그게 장마당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돈’이 되고, 그네들의 구매력이 있으니 중국 등을 통해 ‘상품’도 수입이 된다. 그런 방식으로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넘겼다.
다시 사치품 얘기로 돌아 가보자. 대체 40억 달러 수준의 막대한 사치품은 왜 수입이 되는 걸까?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앞서 언급한 ‘뇌물 받는 간부’가 등장한다. 외화벌이 노동자들이 벌어온 돈으로도 장마당이 굴러갈 정도인데, 그 중간에서 돈을 받아먹는 간부들은 엄청난 자본을 축적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 정부는 항상 예산이 쪼들린다. 국가 입장에서는 이들의 달러를 빨아먹고 싶은데, 사회주의는 애진즉 붕괴하였기에 이들을 잡아 족쳐서 재산을 몰수할 수도 없다. 그렇게 방법을 찾다, 찾다 나온 것이 고위층을 대상으로 하는 명품 매장인 것이다.
그래서 40억 달러 수준의 명품을 수입하는 것을 두고, ‘인민의 고통을 도외시한 사치 목적’이라는 비판은 반만 맞는 것이다. 부패하고 사치를 부리는 고위층들의 수요가 있으니 수입되는 것은 맞지만, 이들이 쥐고 있는 달러를 빨아들이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명품에 웃돈을 얹어서 파는 것이라 이걸 그만두면 정부의 외화보유고가 줄어드니 부패와 사치가 싫어도(아마 싫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런 수입을 그만둘 수는 없다는 얘기다.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를 읽지 않았다면 아마 짐작도 할 수 없었을 일이다.
이렇듯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는 거시적으로 북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동시에, 한국의 문화와 비교도 해 볼 수 있는 무척이나 훌륭한 책이다. ‘혁명의 수도’라는 평양의 맨 얼굴이 궁금하지 않으신가? 관심 있으신 분은 읽어보시기를 강력히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