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탈북자 출신으로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된 태영호 의원을 두고 잡음이 많았다.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 과민반응을 보이던 보수정당이 탈북자를 공천했다는 것에 분노하는 이들도 있었고, 탈북으로부터 몇 년 되지 않은 시기에 10억대 자산을 쌓은 것에 의구심을 품는 이들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북한과 ‘내통’ 할 우려가 있단 적극적인 음모론을 펴는 이들까지 나왔었다. 당연히 이런 주장들은 ‘탈북자 차별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왔는데, 재반론으로 나온 ‘북한 고위층 태영호가 일반 탈북자와 같냐’는 말을 보고 이 책을 집었다. 정말 다를까 싶어서.
태영호 의원이 기존 인터뷰를 통해 밝혔지만, <3층 서기실의 암호>라는 제목은 편집인께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도 책의 내용은 ‘태영호 회고록’에 가깝지, 북한 권력의 핵심부 3층 서기실에 대한 내용이 주는 아니다. 일종의 제목 낚시인 셈인데, 나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 더 좋았다. 태영호라는 인물이 살아온 궤적을 통해 겹쳐지는 북한 고위층의 업무 처리 방식이라던가, 북한이라는 사회가 돌아가는 과정이 보여 북한 사회의 상층부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진 것 같거든. 일반 시민이 본 북한 사회와 고위 관료가 본 북한 사회는 다르잖은가.
한국에서도 ‘부처 간 칸막이’ 때문에 행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얘기가 많지만, 북한은 그런 차원을 넘어 최고 권력자가 행정부처 간의 소통을 막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고 볼 수 있다. 태영호가 몸담고 있던 외무성(한국의 외교부에 해당)은 북한에 존재하는 또 다른 권력체계인 ‘노동당’의 국제협력부와 업무상 협력관계라 볼 수 있는데, 그의 증언에 따르면 두 부처는 협력하긴커녕 적극적으로 각자의 정보를 숨기고 수령에게 직보하는 업무를 꾸준히 유지해왔다고 했다. 이런 비효율적인 제도가 유지되던 것은 수령의 신격화 때문이다.
외무성에서 당시 국가 총책임자이던 김정일에게 특정 문건을 결재받으러 올린다고 해 보자. A라는 국가와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A가 요구하는 a라는 쟁점을 들어줘야 한다는 내용인데, 결재를 올렸더니 회신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A라는 국가는 B라는 국가와 특수관계에 있고, B라는 국가의 b라는 쟁점을 막기 위해서는 A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따라서 a를 들어주는 것은 물론 추후 a’ 등이 요구되더라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와! 수령님은 어떻게 이런 것을 다 아실까? 이것이 백두혈통의 통찰력인 것일까.
수령님의 신통력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엔 이르다. 실제로는 외무성이 아닌, 노동당 국제협력부에서 관련 정보를 받았기 때문에 이런 상세한 답변이 나올 수 있었던 거다. 노동당 국제협력부와 외무성은 철저하게 정보를 숨기는 경쟁 관계이니, 서로 간의 정보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게 '수령님'이 아시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부처'에서 아는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이처럼 북한의 모든 정보는 한국의 청와대 비서실 격 기관인 '3층 서기실'을 통해 모이고, 수령의 통치행위로 조정되어 나간다. 권력기관들도 철저한 정보통제를 하는 거다.
태영호의 일화들은 북한 권력기관이 어떤 방식으로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는지, 그리고 어떤 원칙을 우선하여 일을 처리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외무성 산하 유럽국 부국장의 하루 첫 일과는 무엇인지 아는가? 한국에서는 아마 다른 기관장들과 조찬모임을 진행하겠지만, 유럽국 부국장님은 외무성 유럽국 내에 비치된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깨끗하게 닦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해야 한다. 국가의 외교적 이익보단 김씨 일가의 이익이 우선시 되고, 굶어 죽는 북한 아동들보단 수령님의 권위가 우선시 되어 수백만이 아사한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구호 물품을 '수령님 하사품'으로 군부대에 뿌리는 막장 사회인 것이다.
앞서 소개한 내용만으로 보면 태영호가 작정하고 북한에 비판적인 내용을 쓴 것 같지만, 이 책이 서글픈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그가 북한에서 이룬 자신의 성취까지 쉽사리 부정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는 외무성의 신임받는 외교관이자 유능한 관료였다. 그가 외무성 내에서 이룬 성취, 아주 하찮게는 북한 주재 해외 공관 사람들과 친선 축구경기를 진행해서 비겨낸 일이라던가 좀 더 크게는 북한-영국 간의 수교를 성립한 것은 일반적인 사람이라도 평생 기억에 남을 성취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탈북을 감행했고, 김일성 이름이 새겨진 '시계'를 받은 것이 아무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로 와버렸다. 그럼에도 책에는 자신이 이룬 성취를 지워내지 못하고 뿌듯함과 성취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국내에서 탈북자는 납작한 상징으로만 동원되어왔었다. 북한이 얼마나 악마 같은 정권이고, 북한에서 얼마나 자신들이 인권유린을 당했으며, 한국이 얼마나 발전된 사회인지 몰랐다는 맞춤형 답변을 내놓지 못하면 한국에서 '탈북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기가 힘들었으니까. 그런데 정말 모든 탈북자들이 그런 획일화된 생각만을 품고 살고 있을까? 최소 20년, 혹은 그 이상 뿌리를 박고 살던 지역에 대해서 총화(자아비판의 북한식 표현)를 이어가는 삶을 살고는 있지만, 나는 이들 역시 태영호가 느끼는 괴리감과 서글픔을 동일하게 느꼈다고 생각한다. 태영호처럼 크게 내세울 성취는 없더라도 내가 살던 동네, 내가 얼굴 마주하고 살던 이웃, 내가 알고 지내던 이들을 깡그리 묶어 '끔찍한 북한'으로만 생각하겠냐는 말이다.
북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평생에 걸쳐 북한을 부정하고 비난하며 살아야 하는 그 서글픔은 태영호건 일반 북한 주민이건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고위층으로 호위 호식하다 더 안락한 삶을 위해 탈북을 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여겨지지만, 가난과 죽음의 위기에 찌들어 생존을 위해 탈출한 이들이나 자식을 평양에 볼모로 잡힌 상태로 생이별을 해야 하는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탈북을 한 사람이나 북한 체제에 대한 본질적 의문과 분노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떠나온 후에 스스로의 '근본'을 부정하는 서글픔 역시도. 김정은이 죽었다는 헛소문을 퍼트리는 납작한 보수의 상징으로 남기보단, 본인이 느낀 그 서글픔을 탈북민들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바른 정치인이 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