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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사장의 서고 Aug 14. 2018

도쿄 지하철 가스테러의 전말

일본 VS 옴 진리교

1995년 3월 20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의 신흥종교인 옴 진리교가 도쿄 지하철에 유독성 화학 물질인 사린가스를 살포했고, 출근 시간에 해당 지하철에 탑승했던 많은 시민들이 사린가스에 노출되어 피해를 입게 됐다. 사망자 13명에 부상자 6,300명. 일본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경악할만한 사건이었다.



사건의 충격성과는 별개로, 나는 저런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 외에는 옴 진리교는 물론이고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궁금증에 인터넷을 뒤져봐도 단편적인 정보들이 전부였고, 관련된 내용을 정식으로 출판한 곳도 없었으니 바로 옆 나라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한국 사람들은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낱 신흥 종교단체가 테러를 저지를 정도의 사린가스를 만들 설비를 구축하고, 그 계획을 실행할 수준의 충성도 높은 신도들을 모았던 걸까?



그러다 드디어 올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관련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책이 나왔다. 네티즌 나인이라는 익명의 작가가 정리한 옴 진리교의 탄생과 파국, 그리고 일본이라는 사회가 이들에게 대응하던 방식을 담은 책 <일본 VS 옴 진리교>다.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앞부분은 옴 진리교가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를 저지르기 전까지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그리고 있고, 뒷부분은 옴 진리교가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를 저지른 이후 옴 진리교에 대처하는 일본 사회의 대응 방식. 비중은 대략 앞부분이 2, 뒷부분이 1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앞부분이 옴 진리교가 대표하는 사이비 종교에 대한 흥미를 돋운다면, 뒷부분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저자께선 뒷부분에 좀 더 방점을 찍으신 듯했으나, 개인적으론 앞부분이 더 흥미가 있었다. 일부를 옮기자면 이렇다.



저자는 옴 진리교가 저런 흉악한 테러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 옴 진리교 특유의 교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포아(ポア, Phowa)라는 개념인데, 원래는 티베트 불교에서 다른 차원으로의 전환(shift)을 뜻하는 신비주의적 용어였으나 옴 진리교의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본명 마츠모토 치즈오)는 이를 뒤틀어서 살인을 정당화하는 개념으로 바꿔버린다.



예컨대 현생에서 지속적으로 악업을 쌓고 있는 인간이 있다고 해보자. 그의 영혼을 구제하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그가 더 이상 악업을 저지르지 못하게 설득을 하거나 훈계를 하는 것이 맞을 테다. 그런데 옴 진리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악업을 완전히 중단시키는 것이 최상의 구원법이라 주장한다. 그를 죽여서 악업을 쌓는 그의 영혼을 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뒤틀린 포아 개념을 받아들인 옴 진리교도들은 살인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인식하고 교주의 지시에 따라 강력범죄를 지속적으로 수행한다. 사린가스 테러 이전에도 이들은 엄청난 수의 강력범죄를 저질렀는데, 교단의 비행을 파헤치는 변호사 일가족을 살해하고 암매장하는 건 예삿일이고, 탄저균과 보툴리누스균을 배양하여 생물테러를 기도했다가 실패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게다가 사린 테러는 지하철 한 번이 아니었다. 본인들의 지부 설립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지방 소도시에도 사린가스를 살포한 적이 있었으며, 옴 진리교의 실상을 깨닫고 탈출한 신도를 보호해줬다는 이유만으로 80대 노인에게 VX를 사용한 화학테러까지 감행한다.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을 살해할 때 사용했던 그 독극물이다.) 그런 폭주의 종점이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였던 것이다.



재밌는 건 일련의 사건 이후 옴 진리교가 사실상 해체되었음에도, 그 후속 단체들이 새로 만들어져 옴 진리교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옴 진리교 해체 이후 원래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를 인정하고 그를 전면에 내세우는 ‘알레프’와 아사하라 쇼코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지만 그가 정립한 옴 진리교의 교리 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종교 수행을 지속하는 ‘빛의 고리’라는 단체가 현재까지도 일본에서 지속적으로 교세를 확장하고 있다니 그 끈질긴 생명력이 참 놀랍다. 본인들은 스스로를 박해를 받던 기독교인들과 동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지하철 테러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그 종교가 생존하고 있다는 건 무척이나 의외였다. 교주의 기운을 받기 위해 그가 수감된 교도소 담장을 빙빙 돌던 신도들이 있던 만큼, 그의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불가피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옴 진리교에 대한 설명 외에도, 지하철 테러 이후 일본 정부가 옴 진리교에 대처했던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크다. 현대국가가 종교의 탈을 쓴 테러집단을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살펴보다 보면 일본 사회의 저력이 느껴져 감탄이 나온다. 종교법인격 박탈 →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를 통한 파산 유도 → 공안기관의 정기적인 감찰을 통한 철저한 감시라는 수순은 놀라울 정도다. 더군다나 20년 가까이 이어진 유관 재판들이 최근까지 이어졌고, 그것들이 마무리 된 후에야 사형을 집행하는 치밀함까지.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 그것을 무리하게 세월호 참사와 연결 지었어야 했을까? 피해자에 대한 피해구제 측면에서 유사성이 존재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하지만, 구체적 가해 집단이 악의를 갖고 행한 일과 각종 적폐가 누적되어 발생한 불행한 사고를 등치 하는 것은 무리한 연결 짓기라 생각한다. 일본 쪽의 대응이 훨씬 더 타당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말이다. 개인적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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