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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 Feb 04. 2018

인간, 시간에 영원히 구속되는 존재

김애란 <바깥은 여름> 서평

    요 몇 년 새 부쩍 ‘포토그래퍼’라는 이름의 직업이 늘어난 것을 느낀다. 각종 SNS에는 포토그래퍼에게 작업을 요청하는 메시지가 쇄도하고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그들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아름답게 목격된다. 보고 있자니 마치 오래전 화가들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요구했던 귀족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들이 전문 포토그래퍼를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이토록 신경 써서 찍는 이유는 ‘나중에 나이가 들었을 때 젊은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싶어서’ 일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시간의 차이에 영원히 구속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마찬가지로 김애란의 소설 <바깥은 여름>은 시차에 구속당하는 인간들에 대한 소설이다. 그 시차는 감정의 시차일 수 도 있고(건너편) 성장의 시차 일 수도 있으며(노찬성과 에반, 가리는 손, 풍경의 쓸모) 상실의 시차(입동,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침묵의 미래) 일 수 도 있다. 다만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현실은 과거와 달리 모두 아프고 참혹하다는 것이며 이는 소설의 제목이 바깥이 여름이 아닌 <바깥은 여름>인 이유다. 바깥‘은’ 여름이라면 안은 겨울일 테니까.     


    소설 <바깥의 여름> 단편 중 하나, 「풍경의 쓸모」는 그간 청춘과 함께 자라왔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청춘을 다룬 작품이 김애란에게 많았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성인을 화자로 세웠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주인공 ‘나’는 사진에 찍힌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고 ‘영원한 무지’를 느끼며 어딘가 ‘가슴을 찌르르 건드리게 한다’고 했다. 그 무지라는 것은 어린이만이 가질 수 있는 천진난만함과 그의 어머니가 그를 찍기 위해 부른 정우란 이름에 담은 앞으로의 기대나 희망 같은 것이었다. 다 자란 성인의 ‘나’는 더 이상의 인생에 어떤 이벤트도 없을 그저 그런 강사일 뿐이며 세상의 중심을 둘러싼 풍경 같은 존재다. 


    그녀가 그리는 어른의 세계는 ‘프로’라고 칭해진다.  ‘프로’라 칭할 수 있는 두 인물이 있는데, 먼저 그의 아버지를 들 수 있다. 묘사로 추측건대 ‘나’의 아버지는 한 때 교단에 섰던 인물이고 원리 원칙을 중시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나’의 가정을 버린 인물이며 추문에 휩싸여 교단에서 물러나야 했던 인물이다. ‘다른 집’에 속한 인물이지만 ‘우리 집’ 일을 계속 챙겼던 아버지를 ‘나’는 ‘프로 아버지’라 불렀다. 자식에게 말하기 어려운 곤란함은 피하면서 아비로써 해야 할 도리는 해야 하는 그의 ‘프로’ 의식은 ‘나’의 결혼식에서 빛을 발한다. 그런 아버지가 오랜만에 연락이 왔고 만난 자리에서 그는 돈을 요구한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일종의 우위에 있던 ‘나’는 곽 교수와의 관계에서 그 위치가 전복된다. 강사에서 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했던 나는 곽 교수와의 친분을 쌓길 원했다. 우연히 차를 동석하게 됐을 때, 곽 교수는 사람에 대한 자신만의 잣대를 습관적으로 들이대는 인물로 그려진다. ‘어른이 별건가. 지가 좋아하지 않는 인간 하고도 잘 지내는 게 어른이지.’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교수들의 험담을 일삼는 그의 언행에서 모순적인 ‘프로’ 어른의 모습을 발견한다. ‘프로’ 어른의 면모는 곽 교수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찾아볼 수 있다. 음주운전을 하고 사람을 친 곽 교수의 뒤처리를 대신해주는 사건과 학생과의 ‘관계보다 강사라는 실무를 우선시’ 하는 ‘프로’ 강사라고 스스로를 말하는 부분에서 점차 프로의식을 갖춘 어른이 되어가는 ‘나’가 보인다. 결국 ‘나’ 또한 아버지처럼 어딘가에서 ‘프로’여야 하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인물들의 프로 의식과 맞물려 주목하게 되는 대사가 있다. ‘참 전형적으로 사신다’는 나의 생각이 묘사되는 부분이다. 어쩐지 ‘나’는 그 전형적인 것에 그리움이나 부러움 같은 감정을 내비친다. 그러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마지막까지 전형적인 인물이었는가? 아버지는 자식에게 돈을 요구했고 암이 걸렸다고 했지만 암이 걸린 사람은 자신이 아닌 ‘나’의 가정을 망가뜨린 불륜 상대였다. 신세를 지었다며 임용의 뒤를 봐줄 것처럼 말했던 곽 교수는 뒤에서 ‘나’를 떨어트린 장본인이었다. 모두 전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인물들, 그들에게서 ‘나’는 ‘더블폴트’ 당하고 마는 인물이다. 여기서 전형적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평범하다’라는 의미로까지 통용되는 이 단어가 사실 어른이 겪는 삶에 있어서는 적용되기 어려운 단어가 아닐까 하고. 작가는 끊임없이 사진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전형성이 결핍된 삶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그 당연한 사실을 진정 외면하고야 마는 프로 어른들의 세계. 풍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비전형적이게 되는 이 현실은 말 그대로 겨울이다. 전형성에 충돌하는 삶을 프로 의식으로 감추어 살아가는 소설의 인물들. 그들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건 끝없는 삶의 겨울 속 각자가 가진 ‘스노우볼’을 꼭 쥐고 살 수밖에 없는 수많은 현실 속 어른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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