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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llax Feb 14. 2020

컬러사진노트 1

책장을 정리하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던 무엇(?)이 눈에 띄어 열어 보았습니다. 검은색 파일철 안에는 예전에 촬영했던 필름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필름 뭉치들을 살펴보다 이내 눈에 띄는 슬라이드 필름을 하나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무척 반가웠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그저 하릴없이 시간 여유가 많았던 시절, 어느 날 비가 부슬부슬 소리 없이 종일토록 내렸습니다. 그날따라 왜 그랬는지 우울하여, 아마도 미래에 대한 걱정이었던 듯, 밤늦게까지 잠도 안 오고 라디오만 듣고 있다 창밖을 내다보고는 생각 없이 카메라와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갔습니다.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멍하니 먼 하늘을 바라보는데 저 멀리 아파트 단지와 짓고 있는 교회 건물이 겹쳐 보였습니다. 새벽 3시쯤으로 기억됩니다. 그 사이로 가로등 불빛 세 점이 아련히 보여 마치 커다란 배에 불빛이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35mm 카메라에 180mm, 3M Scotch 800 슬라이드 필름, F2.8, 1/2s로 살짝 카메라를 흔들어 불빛이 번지도록 여러 번 촬영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포스트잇을 만드는 미국 3M에서도 당시에 슬라이드 필름을 생산하여 국내에서도 유통되었는데 저렴하지만 독특한 입자와 발색 때문에 한동안 선호했었습니다. 이 필름을 다시 찾을 수 있어 반가운 마음에 DNG 스캔을 하고 ACR에서 기본적인 컬러 작업을 하면서 필름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려 했습니다.



포토샵에서의 2차 작업은 명암대비와 레벨 레이어만을 만들어 약간의 조절만 하고 마감을 했습니다. 이 필름이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필름의 입자와 더불어 그날의 소리 없던 빗방울과 우울했던 마음이 함께 녹아들어 만들어졌기 때문일 겁니다. 주말로 가는 금요일에 찾은 필름 덕분에 잠시나마 오래전 어느 날의 쓸쓸했던 기억을 떠올려, 이제는 편안하고 반갑게 이야기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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