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맘 알아주는 감성플리
노래 들을 때, 이거 내 노랜데?
느껴본 적 있다. 접어!
뜬금없이 손병호 게임으로 시작해봤다. 몇 분이나 접었으려나... 생각 없이 어떤 음악을 듣다, 어? 이거 내 이야기인데? 하는 순간이 종종 있다. 지루하다 못해 비루한 일상에 지쳐 있을 때, 그런 음악을 만나는 건 추운 겨울 누군가 잡아주던 그 손길처럼 포근하다. 가사는 또 을매나 찰진지.. 알던 노래 가사도 달리 들리고, 그럴 리 만무해도 마치 나를 위해 쓴 것 같은 곡들.
좋은 글과 좋은 음악은 생명력이 있어서 백인백색(百人百色), 천인천색(千人千色)으로 모두에게 각자의 언어와 멜로디로 들리는 게 아닐까. 나의 오만가지 기분과, 들쑥날쑥한 컨디션, 울퉁불퉁한 일상에 음악이 없다는 건, 윤활유가 부족한 자동차를 타고 가는 일이다. 필시 엔진은 마찰을 견디지 못하고 과열로 멈출 것이다.
첨단 뮤직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 정교한 전략과 마케팅이 녹아든 요즘 음악. 전 세계를 강타하고 혜성같이 등장한 스타들이 부른 무지막지한 인기곡도 물론 좋지만, 나는 역시나 마이너 감성을 평생 품고 산다. 프로듀싱도 사운드도 부족하지만 소품 같은 인디 스타일의 음악이 주는 나른함이 좋다.
가창력이나 음색 따위로 올림픽을 하는 경연프로그램에선 들을 수 없는 곡들을 애정하고, 레전드들의 곡을 조그마한 바에서 연주하는 프로와 아마추어 경계선 언저리에 있는 그들이 주는 왠지 모를 편안함이란... 단, 유튜브에서 나대는 몇몇 관종들의 은근히 다른 걸(?) 강조한 커버곡은 질색한다.
최근의 내 삶의 변화가 크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업계를 완전히 떠나면서 오히려 더 넓은 디자인의 영역을 커버해야 하고, 폭주하는 AI 이미징 테크놀로지에도 적응해야 한다. 이제 디자인 분야에 있어 '생활의 달인'으로는 생존하기 쉽지 않은 시대. 더 많은 생각,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INTJ인 나의 앞에 놓여있다. 새로운 루틴을 만들고 있는 중이며, 감정 에너지의 소모가 크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음악에 진심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노래의 숲에는 훌륭한 작곡, 작사가들이 이렇게나 좋은 곡들을 심어 두었다... 심지어 몇 년 전에 말이다. 그들은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고 내 귀에 도청장치를 심은 게 분명하다. 아름다운 가수님들의 목소리가 고마운 요즘, 나를 위해 쓴 것 같은 노래들을 공유해 본다.
허회경은 인디 레이블 '문화인(MUN HWA IN)' 소속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내가 최애 하는 가수이다. 이 첫곡을 듣는 순간 푹 빠졌다. 그녀는 아마도 감성천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애늙은이 같은 가사가 고운 목소리와 찰지게 어울리는 묘한 매력에 빠져든다. 늘 다시 힘을 얻는다. '김철수 씨 이야기'와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꼭 들어보시길 권한다.
Hey, hey, I would not live for you ever
내 길 위에 네가 발을 내밀고 있대도
Hey, hey, hey, I would not live for you ever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별일도 아니네
이 노래를 들으면 순수함과 애절함이 묻어나는 보컬 권순관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한동안 노리플라이 노래만 24시간 틀어 놓은 적도 있다. 발표하는 앨범마다 어느 한 곡을 꼽기 힘들 정도로 명곡들 투성이. 인디 밴드들 중 이들 만큼 멜로디 라인의 완성도를 올릴 수 있는 실력파들도 드물 것이다.
지친 마음 먼 곳에 흘러가고
움켜쥐고 있었던 아픔들과
집착에 헤매던 날들
돌아보면 꿈인 것 같아
마냥 나른해지고 싶을 때, 머리에 열이 잔뜩 올라있는 자신을 볼 때 듣는다. 담담하지만 섬세하고 조금은 이국적인 음색의 보컬을 가진 양양이 허스키한 감성으로 불러주는 이 노래. 2009년 발표 당시부터 좋아했고 최근에 다시 찾아 듣게 되었다.
내 가가야 하는 길은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아냐,
빠르고 느린 것 이기고 지는 것
리더 겸 보컬, 작사/작곡을 다하는 차세정의 1인 프로젝트 그룹. 인디신의 내로라하는 보컬들이 피처링하며 아름다운 곡들을 발표해 온 에피톤프로젝트. 초보비행은 차세정이 극 내향적 성격으로 무대 울렁증과 앨범 공동작업의 스트레스로 훌쩍 떠났던 동유럽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앨범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에 수록된 곡이다. 감성 한 스푼을 넘어 치사량인 이 앨범은 대부분의 곡을 차세정이 직접 불렀고, 제작사의 우려와 달리 가장 최고의 앨범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렇게나 많은 짐은 필요 없어
준비되면 이제 내게 말해 함께 가자 그 어디든
아무런 홍보도, 앨범활동도 없이 오직 노래에 대한 입소문으로 단숨에 최고의 인디 밴드로 떠올랐던 '브로콜리너마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멜로디, 특히 노래 가사는 탁월한 감각과 문학성을 보여준다.. 이 노래 발표 당시 보컬 '계피'는 일찌감치 탈퇴를 해 이후 행보는 글의 주제와 맞지 않아 생략하겠지만, 그녀의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독특한 음색과 발음은 지금까지 '브로콜리너마저'가 내 플리에서 빠지지 않은 이유다.
친구가 내게 말을 했죠
기분은 알겠지만 시끄럽다고
음악 좀 줄일 수 없냐고
네 그러면 차라리 나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