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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니 스탁 Sep 18. 2023

재즈, 피아노, 그리고..

듣고 상상하라.

오랬만에 올린 글에 감사한 댓글을 주신 윤슬 작가님께 응답합니다. 가을, 여러분과 함께 듣고 싶은 플리입니다.






나는 뭐에 집중하면 바로 옆에서 이름을 불러도 잘 못 듣는다. 평소엔 몹시 산만하지만 뭐 하나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그중 하이파이 오디오와 함께 하는 음악감상은 방해받고 싶지 않은 나만의 소중한 시간이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구체적으로 시각화하는 습관이 있다. 혼자 상상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든다. 풍경화를 그렸다, 인물화를 그렸다, 추상의 혼돈을 헤매기도 한다. 본인 피셜, 이런 음악 감상법은 음악을 더 입체적이고 공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영상편집이나 디자인을 할 때도 많은 도움을 준다.


나에게 이런 정서적 안정과 상상력까지 더해주는 두 재즈 피아니스트를 소개할까 한다. 20세기, 21세기를 각각 대표하는 키스 자랫(Keith Jarrett)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이다. 이들의 음악을 들었을 때 그랬다. 온갖 그림들이 그려지고 마음에 들어온 멜로디가 며칠이 지나도록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Keith Jarrett (1945~) ⓒ ECM
Brad Mehldau (1970 ~ ) ⓒ bradmehldaumusic.com


특히 내가 홀딱 반한 것은 이들의 연주하는 모습이다. 거의 피아노와 한 몸처럼 보이는 그 몰입이 아름다웠다. 이들의 음악은 느긋하게 쉬고 싶을 때, 누군가가 그리울 때, 자연의 변화가 너무 좋아서 행복할 때.. 때론 강퍅해진 내 마음을 감싸 안아준다. 추천하는 곡들이 여러분께도 상상력을 펼치는 색다른 휴식을 선물했으면 한다.






1. Keith Jarrett - My Song(2009)



대표곡 <My Song>은 내가 키스자렛을 처음 알게 된 곡으로 사회 초년생 시절, 월급날 달려간 레코드 점에서 산 LP판에 수록되어 있었다. 히트곡답게 수많은 공연에서 즐겨 연주했던 레퍼토리지만 즉흥 연주를 즐기는 그 답게 어떤 경우도 같은 멜로디와 스타일이 없다. 수많은 버전 중 2009년 베를린 공연에서의 My Song은 나에겐 단연 최고였다. 환상적인 도입부의 변주는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오피셜 음원을 찾을 수 없어 음질이 좋지 않은 게 아쉽다.



2. Keith Jarrett - Over the Rainbow(1984)



흔한 레퍼토리 <Over the Rainbow>이다. 그러나 이 곡처럼 한 줄 한 줄 선을 그어가며 온 힘으로 음악을 그리는 느낌을 받은 연주는 드물다. 곡의 중 후반부, 그가 특유의 연주 자세로 온몸을 뒤틀며 건반을 누를 때마다 마치 푹 담근 붓으로 그린 수채 물감이 번지듯 내 상상 속엔 무지개가 펼쳐진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연주다. 1984년 도쿄 라이브.



3. Kieth Jarrett - So Tender(1987)



다음곡은 키스자렛 트리오의 <So Tender>라는 곡이다. 키스자렛의 앨범과 연주를 듣다 보면 중간에 잡음인지 허밍인지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그의 특이한 연주 습관으로 격정적인 순간에 멜로디를 낑낑거리며 따라 부르고, 신음소리를 내기도 한다. 클래식 피아니스트이자 기인으로 불리는 글렌 굴드(Glenn Gould)가 몰입의 경지에서 허밍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적응 안 된다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자꾸 들으면 결국 같이 몰입되고 만다. 같이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다. 마성의 아티스트다.



4. Brad Mehldau - When It Rains(2002)



<When It Rains>, 이곡은 브래드 멜다우와의 첫 만남이었다. 오래전 한창 야근하던 중이었다.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의 재즈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이 곡이 흘러 나왔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 없다. 그의 연주는 몇 소절이 지나자마자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건반소리는 빗방울 같았고 나는 폭우가 쏟아지는 대지를 달리고 있었다. 온통 진흙탕이였지만 몸을 스치는 무성한 풀들과 쟂빛 하늘에 휘몰아 치는 바람마저 상쾌하다. 때론 느린화면으로 빙글 빙글 춤을 추고 부서지는 물방울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마침내 대지위에 드러눕고 화면은 천천히 줌아웃되며 드넓은 풍광속에서 나는 한 점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암전...


이 상상이 끝나고 나서 비로소 곡목을 확인했다. 'When it Rains'.. 소름이 돋았다. 그는 내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브래드 멜다우라는 음악가와 영혼이 통했다고 느꼈다.



5. Brad Mehldau - Black Birds(2021)



다음곡은 비틀스의 주옥같은 명곡 중 하나, <Black Birds>의 브래드 멜다우 버전이다. 1968년 앨범 <The Beatles>에 수록된 곡으로, 당시 만연한 흑인 인권탄압에 대한 사회적 의식을 담은 곡이다. 브래드 멜다우가 1997년 발표한 <The art of the Trio>에 수록됐던 곡의 2021년 연주 영상이다. 양손을 자유자재로 쓰며 다른 멜로디를 동시에 연주하는 기교인지 천재성인지 모를 그의 연주는 그저 아름답다. 위에 글을 쓰느라 손발이 너무 오그라 들어 무리가 와서 이 곡에 대한 감상은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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