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도시를 달달하게 만들어 줄 감성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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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고마워
언제부터인가 유튜브에 유난히 시티팝(City Pop)이 많이 추천되는 알고리즘 이벤트가 발생했다. 1984년 발표한 타케우치 마리야(竹内 まりや)의 'Plastic Love'는 수천만회의 조회수를 찍으며 순식간에 그녀를 시티팝의 전설로 등극시켰다.(사실 그녀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저 반갑고 좋았다. 나는 원래 이런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시티팝은 1970년대말 신디사이저(Synthesizer)가 대중화되고 널리 쓰이면서 유행한 일렉트로닉 뮤직, 신스팝(Synthpop)장르가 일본으로 건너가 만들어진 음악이다. 주로 디스코 리듬에 퓨전 재즈, 애시드 재즈와 유사한 느낌을 주며 명확한 구분은 의미 없다. 시티팝은 장르이기도, 마케팅 용어이기도, 일본의 버블경제로 탄생한 문화용어이기도 하다. 다만, 아시아적 색채가 가미된 특유의 가볍고 도시적인 느낌의 음악을 통칭한다.
영롱한 건반, 먹먹하고 까슬까슬한 전자 드럼, 묵직한 베이스, 뭉툭한 재즈 기타, 때론 늘어지고 때론 활기찬 색소폰의 조합이 특징이다. 어느 곡을 들어도 사운드가 비슷하게 느껴질 만큼 시티팝 만의 스타일이 있다. 사용되는 코드도 매우 비슷해 '노래, 너무 쉽게 만드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구조도 아니고 가창력보다는 보컬의 음색으로 승부를 건다. 대부분 가볍고 바이브레이션이 가늘다.
2018년부터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뉴트로(Newtro)'라는 신조어가 나오고 시티팝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유행에 상당히 빨리 반응한 가수가 있는데 무려 원더걸스 출신 유빈이 부른 '숙녀(淑女)'라는 곡이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인지 당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뮤비부터 노래의 완성도까지 요즘말로 '폼 미친'곡으로 역주행이 마땅하다. 그런데 안 한다. 역시 난 마이너 감성인가 보다.
나에게 있어 시티팝의 매력은 건조한 도시생활에 지칠 때마다 낭만 한 사발을 드링킹 할 수 있다는 거다. 운전하며 듣고 있노라면 노량진역 앞 가로등이 야쟈수로 변하며 한강이 붉은 노을이 짙은 캘리포니아 해변으로 변한다. 방구석에 앉아서도 그루브에 어깨를 들썩이며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된다. 무한 루프되는 도시 배경에 걸터앉아 맥주 한잔 들이키며 비현실적인 낭만에 젖는다. 말이 그렇다는 말이다. 진짜 이러면 병원 가야겠지.
요즘 많은 젊은 아티스트들이 레트로 한 감성의 커버와 노래들을 발표하면서 K-시티팝은 나름의 인기 장르가 되었다. 들을게 많아 행복하다. 내 플리에 숨겨둔 5곡을 골라 공유해 본다. 아무도 이 노래들을 몰랐기를 바란다. 한 곡이라도 발견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해서다.
대한민국 퓨전재즈의 조상님 김현철. 모두가 실망했다는 '달의 몰락'이 수록된 3집 앨범마저 사랑했던 나로서 안 좋아하는 노래를 찾기가 어렵다. 뛰어난 보컬은 아니지만 세계 어느 뮤지션들과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 스타일과 편곡능력을 가진 보물 같은 가수다.
대한민국 시티팝 마니아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대표 가수다. 청량하고 맑은 보컬은 시티팝을 위해 태어난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Aqua City, 2020>, <Winter City, 2020>, <Summer City, 2021>, 시리즈와 <Ocean Wave> 앨범은 LP로도 발매되며 인기를 끌었다.
나이 답지 않은 처연한 목소리에 반해 즐겨찾기를 하고 자주 들었던 가수였다. 그런데 우효가 시티팝 노래를 불렀다니! 우효는 안 어울리는 노래가 뭘까. 하루종일 무한 반복했던 곡이다.
몽환적인 보컬이 매력인 조제가 부른 Dive는 우연히 추천 알고리즘에 얻어걸린 곡이다. 2017년 데뷔한 인디 가수로 노래도 좋지만 팝 아트 작품 같은 앨범 재킷들이 특히 좋다.
원작자가 찬사를 보낼 정도로 기존 발표된 곡들을 리믹스해 새로운 느낌으로 재탄생시키는 장르변주의 대가 단피아. 아이유의 '라일락'에 이어 뉴진스의 '하입 보이'를 시티팝 버전으로 바꿨다! 그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