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돈말마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니 스탁 Dec 18. 2023

나 홀로 타이완 [食] - ①

[홀로 떠난 타이완 여행기] 나를 위한 대만 음식은 없다



당황스럽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이번 여행에서 먹는 건 (거의) 망했다. 내가 건강상 이유와 운동을 하면서 식단을 절제한 탓에 다양한 향신료와 달고 짠맛에 대한 적응력이 크게 떨어졌는데, 그걸 몰랐던 것이다.


맛 표현은 지극히 개인 적인 것이니.. 자칫 대만 음식이 맛이 없다고 오해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번 여행에서 맛집에 줄 서기를 하지 않기로 했지만, 대신 맛있는 음식을 발견을 하고 싶었다.


ⓒ Tony Stock


둘째 날 먹은 이 점심 식사가 여행 내내 나를 힘들게 할 줄은 몰랐다. 길을 걷다 무작정 사람 많은 곳을 찾아 들어갔다. 친절한 사장님이 밥을 푸시고, 위에 얹을 반찬 3가지를 고르라 신다. 나는 닭고기 조림과 몇 가지 채소무침, 그리고 멸치처럼 생긴 볶음을 골랐다.


정체불명의 아픔 ⓒ Tony Stock


기대감과 함께 첫술을 입에 넣는 순간.. 음.. 이건 뭐지.. 좀 싱거우면서도 달고, 약간 쿰쿰한 냄새가 나면서 느끼함이 밀려왔다. 반찬을 황급히 투입했는데.. 간이 거의 안되어 있고 채소가 물컹하다. 뭔가 느글거리는 맛이다.. 조미료를 물에 탄 맛이랄까. 순간 비위가 확 상해버리고 만다.


손님이 적은 식당도 아니었기에.. 이 음식이 맛없는 건 내 문제였다. 보는 것과, 상상한 맛과, 실제 맛의 갭이 너무 컸고 현타가 온 나는 여행 내내 뭘 먹어도 속이 느글거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 Tony Stock


다음 날은 조금 가격대가 있어 보이는 큰 식당으로 갔다. 쭈글.. 중정기념당 옆을 지나다 발견한 식당이다. 사람이 꽤 많았고 잠시 기다리니 친절한 직원분이 자리를 안내하고 메뉴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급 호감을 가지고 잘 대해주는 느낌은, 기분 탓은 아닌 듯하다. 매번 그랬기 때문이다. 나는 샤오룽바오(小籠包 소룡포)를 시키고 따뜻한 수프 종류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친절하고 아리따운 직원분이 산라탕(酸辣汤)을 추천해 주었고 먼저 달라고 했다.


빈자리는 하나뿐 ⓒ Tony Stock
비주얼은 문제없다 ⓒ Tony Stock


하지만 난 또 멘붕이 빠지고 만다. 이건 또 뭔가. 맑은 물풀 속에 재료가 흐물거린다. 약간 얼큰한데 싱겁고 시큼한 맛이 난다. 서양의 닭고기 수프처럼 아플 때 먹는 영혼을 치유하는 수프라는데 나는 되려 영혼이 아프다. 다행히 함께 시킨 샤오룽바오는 맛이 괜찮았다. 다만 일부러 먹으러 갈 정도는 아니어서 별점을 준다면 3개 반이다.


왜죠.. ⓒ Tony Stock


결국 산라탕은 거의 다 남기고 말았다. 친절하고 따뜻한 서비스와 그렇지 못한 식사, 당황스럽다.


ⓒ Tony Stock


도심이 익숙해진 아침, 멀리 떠나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하철 아무 노선이나 고르고 맨 끝 정거장까지 가기로 했다. 내리니 절벽이 펼쳐진 강변이다. 오길 잘했다!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출렁다리를 지나는 게 스릴 있었다. 다리 끝에 좀 무서운 골목 입구가 있어 호기심에 들어가 보니...


ⓒ Tony Stock
ⓒ Tony Stock


등산로가 나온다!


ⓒ Tony Stock


한 가족이 내려오고 있었다. 휴,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ㅎㄷㄷ


ⓒ Tony Stock
ⓒ Tony Stock


피톤치드를 마시며 몇 시간 등산을 했다. 정상까지 가지는 않았고 중간에 빠지는 길이 있어 산 둘레길로 내려왔다. 땀이 제법 났지만 시원한 바람에 금방 상쾌해졌다. 며칠 운동을 못해 찌뿌둥하던 것들이 싹 사라졌다. 10월의 대만 날씨는 정말 축복이다. 나, 대만으로 이민 갈까? 아.. 여름이 있었지..


ⓒ Tony Stock
ⓒ Tony Stock
쌀국수 ⓒ Tony Stock


검색해 보니 이곳은 비탄풍경구(碧潭碧潭風景區)라 불리는 곳이었다. 우리나라의 가평이나 청평 같은 느낌의 강변유원지다. 식당가도 너무 예쁘게 잘 꾸며져 있고, 포근한 날씨에 친구, 가족들과 함께 강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이 수도 없이 많았는데, 나는 그나마 안전할 것 같은 쌀국수를 시켰다. 먹어 봤잖아. 고수도 좋아하잖아.


고추기름 레몬 쌀국수 ⓒ Tony Stock


그러나 결국 레몬에, 고추기름 소스를 추가로 부탁해 마구 때려 넣지 않고서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달다.. 달다.. 달다.. 왜 이렇게 단거야. 면도 미끌미끌.. 국물도 뭔가 다르다. 시원하지가 않아! 아름다운 풍경과 상쾌한 등산.. 그렇지 못한 식사.. 당황스럽다.


ⓒ Tony Stock
ⓒ Tony Stock


타이베이 101 타워 옆 브리즈 난산(Breeze Nanshan) 쇼핑몰에 있는 식당가다. 여기도 전 세계 음식이 다 있다. 그중 만만해 보이는 일본식 덮밥을 시켰다. 이건 내가 한국에서도 먹어 봤으니까.. 드디어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우'설탕'삼겹덮밥 ⓒ Tony Stock


달다.. 그냥 단 게 아니라 고기가 설탕처럼 끈적거리는 양념에 쩔어 있다. 우삼겹이 아니라 우설탕삼겹이다.  미소 된장국은 한국, 일본보다 너무 싱거워 느끼함을 잡아주지 못했다. 결국 나는 맥주를 시켰다. 기린 맥주의 쌉싸름함이 겨우 내 속을 달래준다. 멋진 마천루와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의 낭만.. 그렇지 못한 식사. 당황스럽다.


옳지 않은 창잉터우 ⓒ Tony Stock


결국 유튜버들이 극찬한 진천미(眞川味)라는 곳을 찾았다. 깨갱… 뭐라도 먹어야 하니까.. 창잉터우(苍蝇头), 파볶음, 두부 튀김 등이 특히 유명한 곳이다. 나는 창잉터우를 시켰다. 잘게 썬 부추쫑과 다진 돼지고기, 발효한 검은콩인 두시(豆豉 또우츠)를 넣고 간장 양념하여 볶은 것이다. 이건 내가 살던 동네에 작은 대만 음식 전문점이 있어 꽤 자주 먹었던 메뉴이기도 하다. 짭조름하고 두시의 쌉싸래한 맛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달다.. 밍밍하다. 반찬은 또 싱겁다. 내가 먹던 불맛 가득한 볶음이 아니라 물이 흥건하다. 두시는 씹는 맛이 없다.. 찾아보니 두시는 화병에 좋은 한약재이기도 하다는데. 나는 화병이 생길 거 같다. 유튜버들의 극찬과 밀려드는 손님들, 그렇지 못한 식사. 당황스럽다.


ⓒ Tony Stock


그래도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메뉴를 찾으려면 유튜브를 뒤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 두 가지와, 지금도 생각나는 한 가지를 찾았다는 점이다. 앞의 두 가지는 곱창국수와 또우장이다. 뒤의 한 가지는 버블티이다.



곱창국수


ⓒ Tony Stock


시먼딩의 번화가 중심에 위치한 아종면선(阿宗麵線)의 곱창국수다. 역시나 좀 달고, 흐물거리며, 물풀 같은 국물에 탄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면... 3시간 동안 불린 컵라면 같은 식감이다. 처음 먹어보고는 먹방 예능 <맛있는 녀석들>은 '맛있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먹는 걸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1차 당황이다.


그런데..  그다음 날 아침.. 갑자기 곱창국수가 생각났다. 밤새 무지성으로 틀어놓은 에어컨에 몸이 싸늘히 식어 있었고, 방음이 1도 안 되는 다인실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깊은 잠을 못 자고, 공용 욕실, 화장실을 드나드느라 고단한 몸이 그 녀석을 몹시 원하고 있었다. 2차 당황이다. 숙소에서 10분 거리인 아종면선에 잠도 덜 깬 채 총총히 걸어간다. 라지(큰 놈)를 시켜서 후루룩 하는 순간.. 불꽃놀이가 내 머릿속에서 펑하고 터졌다.



아.. 뚱이들이 말한 게 이 맛이구나.. 차가운 몸을 데워주고, 식도에서 위장까지 나를 감싸며 토닥거려 주는 부드러운 면, 중간중간 야들야들 고소한 곱창의 식감은 잠을 깨워준다. 기둥에 비치된 니 맘대로 소스 중 매운 놈을 살짝 뿌려주니 세상에나.. 느끼함이 확 줄어들고 비호감 국물은 이제 물풀이 아니라 건강 죽보다 더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기가 막힌 맛이 되었다.



또우장(豆漿)


ⓒ Tony Stock
ⓒ Tony Stock


다음으로는 한국에 도입이 시급한 또우장(豆漿)이다. 곱창국수와 함께 거의 매일 먹었다. 기다란 튀김 빵 요우띠아오(油条)와 또우장(豆醤, 두유)을 함께 먹는다. 또우장은 따뜻한 것, 차가운 것 / 단맛, 무설탕을 고를 수 있다. 얼죽아인 나는 당연히 차가운 두유에 무설탕이었다. 그냥 이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빨간 X자 표시는 무설탕이라는 뜻이다.



흑당(黑糖) 버블티


밤낮으로 행복하다 ⓒ Tony Stock


그리고 대만 여행을 가면 1일 2티를 한다는 게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준 시먼딩의 행복당(幸福堂)의 버블티다. 다른 버블티와는 차원이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숙소로 복귀할 때 거의 매일 들렀고, 걷느라 지친 피로가 버블티 한잔에 싹 사라지곤 했다.


매장에서 한 땀 한 땀 천연 타피오카를 만든다 ⓒ Tony Stock
펄펄 끓는 건 실제 솥은 아니고 드라이아스다 ⓒ Tony Stock


행복당은 공장이 아니라 매장에서 바로 만든 천연 타피오카를 쓴다. 2012년 대만산 타피오카에서 발암물질이 발견되어 난리가 난 적이 있는데, '화학성분 타피오카 패, 천연 타피오카 승'라고 매장 앞에 써 놨다. 무엇보다 맛이 있다. 찐득한 연유크림 위에 흑당(흑설탕 아님)을 퍼 올리고 토치로 빠르게 지진 ‘흑당버블티’가 시그니쳐다. 굵은 빨대로 잘 휘저어 먹으면 천연 타피오카와 대만 우유의 부드러운 고소함, 불맛 나는 흑당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분명 달달한데 과하지 않고 끝맛이 깔끔하다.


ⓒ Tony Stock
이름 그대로 먹으면 행복해진다 ⓒ Tony Stock


먹거리 하면 빠질 수 없는 대만의 야시장이다. 그러나 이미 비위가 상한 나. 이름 있는 야시장 닝샤, 스린 등에서 후추빵, 큐브스테이크, 치즈감자, 우유도넛, 닭꼬치, 삼겹살 파말이, 기타 등등.. 적지 않은 것들을 먹어 보았지만, 딱히 감탄할 맛을 못 느꼈다.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그래도 모두들 자기 직업과 음식에 자부심이 보였다. 활기차고, 대부분 밝은 표정이 음식보다 더 나를 즐겁게 해 준다. 여행지에서 현지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야 말로 여행자가 행복해지는 순간이 아닐까?


ⓒ Tony Stock
ⓒ Tony Stock


대만의 야시장은 생각보다 굉장히 관리를 잘하고 있었다. 카드 사용을 장려하고 있었고 길바닥에 음식물 찌꺼기나, 쓰레기는 찾아볼 수도 없다. 우리나라 재래시장보다 훨씬 깨끗했다.


ⓒ Tony Stock


희한하게도 지금도 사진으로만 보면 달려들어 먹방을 찍을 것 같다.


ⓒ Tony Stock
ⓒ Tony Stock
ⓒ Tony Stock


과일을 드신다면 이걸 추천드린다. 구아바를 썰어서 요상한 양념을 섞어 준다. 배와 사과, 무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식감에 찝찌름한 첫맛, 달큰한 끝맛이 느껴진다. 걷다 지칠 때 에너지가 공급되었다.


ⓒ Tony Stock
난생처음 먹어보는 식감의 구아바 ⓒ Tony Stock


정겹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비주얼과 그렇지 못했던 나의 먹방체험.. 당황스럽다.


ⓒ Tony Stock
ⓒ Tony Stock
단짜이면.. 너마저 ⓒ Tony Stock


포스터에 대만 음식은 먹어야 한대서 먹었다. 매장 입구에 주인장의 사연도 적혀 있다. 유명한 단짜이면(擔仔麵)이다. 오.. 얼마나 먹음직스러운가... 노코멘트다. 당황스럽다.


딤딤섬은 강추한다 ⓒ Tony Stock


가격이 좀 더 나가면 맛있을까?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에 있는 딤딤섬(點點心)이다. 여긴 비싸다.


일단 비싼 건 맛있는 걸로 ⓒ Tony Stock


오른쪽의 닭발은 정말 최고였으며, 볶음밥과 찐 밥의 중간 맛인 메인 요리도 너무 맛있었다. 청경채 무침에 간장소스를 뿌리니 조화가 이루 말할 데가 없다. 일단 비싼 건 맛있을 확률이 높다는 결론을 내고. 여기는 두 번을 더 갔다.


ⓒ Tony Stock
정체불명의 고통이 수미쌍관을 이룬다 ⓒ Tony Stock


딤딤섬으로 다소 즐거워진 내 위장을 한 방에 KO 시킨 사건이 있었으니… 타이베이 북쪽 <말할 수 없는 비밀>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단수이(淡水)에 놀러 갔다 딱히 먹을 곳이 없어 향토음식 푸드코트라는 곳에 들어갔다. 이름도 모르고, 세상 맛있어 보여 시킨 메뉴.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왼쪽은 누린내 나는 곰탕인데 거의 소금국이다. 오른쪽은 밥 위에 간장 두부와 계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충격이다. 간이 1도 안 됐다. 진짜다. 저 색깔.. 어딜 봐서 싱거워 보이는가.. 1/5도 못 먹고 그냥 나왔다. 아름다운 강변과 그렇지 못한 식사. 당황스럽다.


극찬까진 아니고 호평 ⓒ Tony Stock


다수의 먹방 채널에서 극찬을 했던 임동방우육면(林東芳牛肉麵)이다. 진입장벽 없는 조화로운 육수에 적당한 서비스, 돈 주고 따로 시킨 채소 반찬도 비로소 맛있었다. 마늘이 많이 들어가고 간이 적당해 면 요리와 잘 어울렸다. 된장처럼 생긴 건 매운 양념이다. 국물에 조금 풀면 칼칼하니 정말 맛있다. 대만에서 내가 먹어본 것 중 가장 훌륭한 맛이다. 그러나 결론은 건대 앞 송화도삭면이 나에겐 1등이다.


나의 랜덤 한 입맛에 이제 독자 여러분도 당황스러울 것 같다.


ⓒ Tony Stock


PS. 피신해 간 세븐일레븐이라는 안식처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ㅠㅠ



나 홀로 타이완 [食] - ② | 타이베이의 1일 1 카페 탐방기에서 계속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 홀로 타이완 [觀] - ④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