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안다는 건 무엇일까?
내가 경험한 대만은 꿈틀거리거나 환상적인 곳은 아니었다. 먹는 것은 정말 애를 먹었고, 숙소는 불편했다. 극 내향인이라 사람들과의 소통은 여전히 어려웠지만, 결국 이 여행은 내 삶에서 가장 잘한 일이자, 즐거운 경험이었다.
<나 홀로 타이완> 여행을 결심한 건 올해 7월이었다. 처음이라 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여행 전문가이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예절과 철학을 가르치는 아는 동생을 만나서 조언을 구했다. 그 친구는 역마살이 제대로 낀 인생이라, 안 가본 나라를 꼽는 게 더 빠를 정도다. 정말 유머러스하고 쾌활해서 외국인과 친구가 되는 데 5분도 걸리지 않는다.
함께 중국 광저우를 갔을 때였다. 강의용 앰프스피커를 사러 가서는 즉석에서 마이크를 꽂고 노래와 춤을 추며 공연을 했다. 사람들이 모여서 박수를 치고 웃고 난리가 났다. 부끄러움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원하는 가격으로 깎아줄 때까지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결국 도매가에 살 수 있었다. 진상과 웃긴 놈의 차이는 뭘까?
그 친구가 내 이야기를 듣고 많은 여행 경험을 들려주며 말했다. "혼자 여행을 결심하는 건 이미 멋진 일입니다. 변화를 위한 준비가 끝났어요." 그래서 지금 마음 그대로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나는 처음으로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나의 취미인 사진 찍기와 카페 탐방이다.
편안한 호텔과 훌륭한 음식, 화려한 경관 없이도 즐거웠다. 불편한 6인실에서 자는 것도, 싸구려 샌드위치 조식을 먹으면서도 행복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노매드들과 긴 대화를 나누지 못했어도 괜찮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했으니까. 그러니까, 여행에 필요한 건 돈이나 치밀한 계획이 아니었다. 온전히 자유롭고자 하는 마음이다.
내 몸은 대만에 있었지만 실은 내 마음속을 거닐었던 것이다. 여행 후 나는 더 소박하고, 더 간결하고, 더 겸손한 생각으로 살게 됐다. 더 좋은 건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행 적금을 시작했다. 다시 혼자 떠날 것이다.
겨우 열흘 남짓한 여행으로 대만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마는 내가 받은 느낌을 몇 가지 주제로 정리해 보았다.
대만의 11월 날씨는 신의 축복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완벽했다. 햇살은 강하지만 따갑지 않고, 조금 더워도 금방 시원해졌다. 무슨 옷을 입어도 다 어울리는 기이한 기온이다. 2일째 되는 날, 길을 걷다 특이한 점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인도가 건물의 1층 안으로 밀려 들어가 있고 도로 쪽엔 기둥들이 있는 터널구조라는 것.
추측 컨데, 무더운 여름에 햇살을 피하기 위한 지혜인 거 같다. 비가 왔을 때, 거의 비를 맞지 않고 숙소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계속 이어지는 이 통로 같은 길 덕분이었다.
강한 추위가 없어서 그런지, 대만의 식당은 대부분 실내와 실외를 구분 지을 수 없을 정도로 개방되어 있다. 어디서든 앉을 수 있는 벤치, 화단, 계단이 많았다. 그래서 아무 데고 주저앉아서 음식을 즐기고 버블티를 마실 수 있었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할 때만큼 맘 편한 게 없다.
따뜻한 날씨에 열대 수종의 거대한 나무들이 많고 식물들도 풍성하게 자라는 것 같다. 뭐든지 심어도 얼어 죽을 걱정은 없겠다. 날씨가 사람의 마음, 심지어는 민족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이 따뜻한 날씨 덕분에 내 조급증이 사라지고 느긋해진 기분이 들었다.
대만 사람들은 예의가 바른 편이다. 한국, 일본과 비슷하면서도 좀 더 순박하달까, 깍듯한 느낌이라기보다 무리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조금만 부딪혀도 먼저 사과를 한다.
카페나 식당은 대부분 친절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표정이 밝아지며 더 배려해 주는 느낌이다. 훈련된 응대가 아니라 진심이 묻어나는 환대다. 다만, 나이 드신 종업원이 있는 식당은 우리나라처럼 구수한 맛으로 가야지 세련된 친절은 기대하면 안 된다.
옷차림들이 매우 수수하다. 날씨 탓인지 뭘 꾸미고 덧입고 할게 별로 없다. 한국사람들 정말 옷 잘 입는다는 걸 새삼 또 느낀다.
일본의 파친코만큼은 아니지만 구슬 게임을 많이 한다. 사행성 게임인데 남녀노소가 즐기며, 부모들도 어린애들이 이런 게임을 하는 걸 굳이 말리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같이 앉아서 한다.
오사카를 갔을 때는 번화가를 가득 메우는 음악 소리가 좋았다. 시끄러울 법도 한데 오히려 신이 났다. 대만은 거리에 음악이 가득하다거나,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다거나 하는 건 별로 없다. 중국어에 대해 시끄럽다는 편견을 주는 말들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고향 갱상도 사투리보다 부드럽고 덜 시끄럽더라. 우리나라보다는 조금 소란스럽지만 지하철 안에서도 전화통화나 대화를 그다지 크게 하지는 않는다.
부르릉.. 부르릉... 와 다다다 다... 와 다다다 다.. 맞다 오토바이 소리다. 국민의 2/3가 오토바이(거의 스쿠터)를 타는 나라답게 처음 도착했을 때는 적잖게 당황스러웠다. 엄청난 오토바이 소음이 하루종일 귀를 때렸다. 특히 출퇴근 시간은 오토바이 군단이 몰려와 혼을 쏙 빼놓는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닌가. 며칠 지나니 신경도 안 쓰인다. 뇌가 생존하기 위한 방편일 테다. 정지신호 맨 앞에 오토바이 구역이 따로 있다. 오토바이가 먼저 출발하고 차가 뒤 따라간다. 오토바이 때문인지 차들이 과속을 하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사망사고가 속출할 테니까. 오토바이의 기동력에 출퇴근 교통체증도 빠르게 해소된다.
길 가다, 혹은 야시장에서 갑자기 은행나무를 밟은 것보다 더 고약한 냄새가 훅 들어올 때가 있다. 100 퍼 취두부 냄새다. 앞서 말했듯 식당이 개방되어 있어 주방의 음식 냄새가 길거리로 다 퍼진다. (프랜차이즈는 제외) 때로는 식욕을 돋우기도, 식욕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우리나라 청국장, 순댓국, 선지도 외국인에게는 헬일 거니 편견을 갖지는 말자.
나 홀로 타이완 [感] - ②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