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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니 스탁 Mar 14. 2023

[마음] 하늘은 무슨 색?

우리의 고정된 하나에 대해


공익광고(2001년)


에버노트에서 오래된 생각노트들을 정리하다 흰색, 살구색, 검은색 크레파스를 나란히 놓고 '모두 살색입니다.'라고 말하던 공익광고 스크랩을 발견했다. 무려 20년도 넘은 광고인데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먼저 끌어낸 상당히 깨어있는 광고다.


우리는 대륙의 끝, 한반도라는 지정학적인 이유로 단일민족, 고유성이 강한 문화를 가진 나라다. 잘나서가 아니고 대륙 한가운데, 무역로에 걸쳐 있었다면 우리도 다민족 국가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단일 민족은 자부심 거리가 아니다. 어쨌거나 우리나라는 어떤 외국의 것이 들어와도 한국화 된다. 해외 유학이나 이민을 가서도 우리는 우리 것을 지켜낸다. 생각보다 K-컬처의 DNA는 강력하다.


이것은 양면성을 가진다. 다른 민족들과의 교류경험 부족으로 이미 다민족 사회의 진입로에 서 있음에도 피부색으로 대표되는 다른 민족에 대한 정서적 이질감을 가지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이슈가 되는 난민 문제만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이런 '개념'에 미숙하고 처리 방법을 모르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지상파에서 수많은 외국인들의 한국체험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영상이 쏟아져 나옴에도 어쩐지 특정 인종에 대한 선호와 차별은 여전하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입장 바꿔보면, 우리가 선호하는 하얀 피부의 사람들은 우리를 포함한 여러 민족을 '유색 인종'으로 묶었던 존재다. 그들도 노력은 하고 있지만 여전히 백색이 아닌 컬러에 대하여 열등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못 배운 사람, 가난한 사람, 범죄자로 여기며 기피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길거리에서 백인과 동남아인이 길을 물을 때 대응하는 태도를 관찰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백인에게는 얼굴이 닳을 정도로 친절히 가르쳐 주던 사람들이 동남아인들은 자신에게 접근하는 것조차도 싫어하거나 친절하더라도 불쌍히 여기며 길을 가르쳐 주었다.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끄러웠다. 그날 하늘을 보며 생각해 보았다. 파란색, 정말 저 색은 '하늘색'일까? 어슴프레 아침이 밝아 올 때,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오후에, 맹렬하게 몰아치는 비구름이 몰려올 때, 언덕에서 바라보는 황홀한 저녁에 하늘색은 과연 그렇게 푸르기만 하였던가?


코발트 빛 시린 하늘도 있고, 한여름 태양에 바랜 듯 희끗희끗 파스텔 빛도 있고, 용광로처럼 붉게 타오를 때도, 신비로운 보랏빛과 마시멜로 같은 노랑의 감탄스러운 만남도 있다. 고흐에게 하늘은 세상 사람 수만큼이나 주먹만 하게 빛나는 별이 많았고, 모네에게 하늘은 드넓은 대지와 구별이 없는 신비로운 수천 가지 색의 덩어리였다.


우리가 그 색들을 느껴보지 않고도 과연 삶의 진면목을 안다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하나의 맛으로 음식을 판단한다면 그 오묘한 조화를 표현할 수 없듯, 우리가 살색을, 하늘색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스팩트럼도 달라진다. 올바른 소통을 위해, 명확히 구별짓기 위해 이름을 붙인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 마음속의 하늘색이, 살색이 단 하나여서는 안 된다.


따지고 보면 하늘이든 바다든 원래 푸른색도 아니다. 모든 색이 들어 있다. 빛을 구성하는 색상 중 블루 계열의 파장이 가장 길다. 파장이 길 수록 멀리간다. 먼 거리를 오는 동안 다른 색상은 다 사라지고 남은 파란색만 우리 눈에 닿았을 뿐이다. 우리가 파란색 이외의 색을 못 보는 것이다라고 보는게 맞다.


수천만 가지의 색이 다 하늘색인 세상.

검고, 희고, 노란색이 다 살색인 세상.


보이지 않는 그 빛을 느끼고, 피부색에 대한 편견을 지울 수 있다면, 이 세상의 복잡계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지 않을까?




*2001년 외국인 노동자들의 대부로 불리던 김해성 목사는 '살색'이라는 명칭이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을 침해할 요소가 있는 것임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였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기술표준원이 '연주황'이라는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하지만 2004년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김해성 목사의 딸인 김민하 양과 그 또래 6명은 '연주황'이라는 명칭도 어른 들만 아는 어려운 한자어로 어린이들을 배려하지 않은 차별 요소가 있음을 주장하며 좀 더 쉬운 '살구색'으로 변경해 달라며 인권위원회에 다시 진정을 넣었고, 결국 2005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정해지게 되었다. 이 아이들은 세상을 바꾼 작은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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