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돈말마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니 스탁 Mar 22. 2023

[말] 매달 드라마 수십 편을 본다는 헬스 트레이너

갱생 중인 내 몸을 만든 헐크이야기


어느 날 아침, 한쪽 팔이 안 올라갔다. 하루종일 통증에 시달리며 겨우 일을 마쳤다. 홈트를 장장 1년 넘게 했고, 나름 근력을 키웠다 생각했는데, 뭔 일이람.. 퇴근길, 먼저 약국에 들러 소염진통제 한 봉지를 입에 털어넣는다. 잠시 후 묘한 몽롱함과 함께 통증이 좀 잦아든다. 견딜만 한데? 하고 집에 가기는 커녕 또 카페에 기어들어가 글을 썼다.


하여튼 넌 도무지 쉬질 못하니.. 생겨 먹은 대로 불안증 더하기 일중독이다. 다시 통증이 몰려온다. 약발이 떨어진거다. '이러다 제 명에 못죽겠는데.. 운동을 배워볼까?' 생각이 든다. 집으로 가는 길, 2층의 PT전문 피트니스 센터가 눈에 들어온다. 개인 PT라니.. 좀 비싸야 말이지. 사실 돈보다 또 대한민국 피트니스 산업 발전을 위해 통 큰 기부를 할까 봐 겁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몸뚱아리의 게으름을 내 정신이 이겨냈다! 내가 날 떠밀듯 계단을 올라가 센터 문을 열었다.


헐크 한 명이 서 있다. 헐.. 뭐지? 어마어마한 어깨와 우람한 갑바, 터질 듯한 허벅지, 짧은 머리의 다부진 체격. 피부에 녹색만 칠하면 영락없이 열받은 브루스 배너 박사다. "안녕하세요!~' 의외로 상냥한 헐크는 자리를 안내한다. 뭐지, 지금 나만 쫄아 있었나. 몸에 비해 100분의 1은 나긋한 목소리로 이어지는 설명, 테스트 수업과 함께 또 이어지는 설명.. 엇! 지금 내가 운동 안 하면 지구가 망할 것 같다. 아반떼 사러 갔다 제네시스 계약하듯 3개월을 끊고 있는 나...


운동하기 전 내 모습 ⓒ Freepik


다녀보니, 잘했다. 첨엔 너무 힘들고, 내 근력은 어이가 없었다. 거울 속 처진 어깨를 보며 '뭐지 이 쓰레기 체력은?'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피곤에 쩔어도 기어이 쇳덩어리를 쥐었던 노력과 그 노력을 이끌어낸 헐크의 놀라운 지도력으로 내 몸은 달라져있다. 헐크는 꼼꼼한 노트로 내가 어떤 운동을 얼마나 했는지, 뭐가 좋고 나쁜지, 뭘 해야 할 지 다 적어준다. 나는 방금 주차한 곳도 까먹는데 중량과 횟수를 정확히 기억한다. 자기가 시범 보이는 동작을 모두 핸드폰으로 촬영시키고 혼자 운동할 때 보고 복습하라고 한다. 정말 이런 헐크, 트레이너는 처음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나의 상태?,  상황?, 뭐, 어쨌거나 공감해 준다는 점이다. 불규칙한 식사와 업무, 밤샘, 스트레스, 출장으로 점철된 내 일상의 고충을 이해하고 틈을 내 운동하러 오는 나를 진심으로 격려한다는 점이다. 몰아붙이지 않고, 내 체력을 안배하고, 다치지 않게 기초부터 차근차근 빌드업을 시켜주었다. 진심어린 응원, 체계적 관리, 그리고 공감력은 내가 단시간에 헬스 중급 정도의 체격과 근력을 얻게 만들어 주었다.


그저께도 일을 마친 뒤 늘어지는 몸을 부여잡고 밤 9시 마지막 타임을 잡는다. 지금 마음은 이래도 운동을 하면 결국 더 행복해질 것을 안다. 운동하는 내내 짧은 기간에 크게 발전한 내 모습에 자기도 기쁘고 일이 재미있다며 눈을 반짝거리는 헐크. 운동을 마치고 노트를 정리하며 "선생님 덕분에 제 몸이 다시 태어난 듯합니다. 생활이 좀 더 밝아졌어요. 선생님은 전달력뿐만 아니라 공감력이 참 뛰어나신 것 같습니다."라고 하니 "저도 처음엔 놀림도 많이 당하고 퇴사 권고를 받을 만큼 트레이너 생활이 힘들었어요."라며 지난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나보고 날씬하다고? ⓒ Unsplash


헐크 다리가 호크아이 수준이었고 실적이 안 나와 헤매던 시절, 어느 날 한 선배가 '네가 일 하는 모습을 보니 문제가 있어 보여. 넌 지금 한 달 회원비가 비싸다고 생각해? 왜 자신 있게 상담하고, 더 가치 있게 가르치질 못하니? 넌 지금 그 돈의 가치를 병원비 이상으로 만들 자신이 없어 보여.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다.' 그 말에 그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했다고 한다. 그리고 맨날 날씬하다고 놀려대는(??? 트래이너들 사이에선 이게 욕인가 보다.) 동료들 말에 자극받아 바지 28 ~ 30 입던 이 남자는 한쪽 허벅지가 28인 남자로 거듭났다고 한다. 얼마나 하체를 조졌는지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다 다리 경련이와 옆집 아저씨가 업어줄 정도로 혹독한 과정을 거쳤다고...


헐크.. 도 삶에 고충이 많았구나.. 근육이 잔뜩 화나 있는 게 이해가 된다. 그리고 말했다. "이 직업, 쉽지 않아요. 회원님들 성격, 요구사항, 체력, 건강.. 모두 천차만별이죠. 첨엔 제가 무조건 끌고 가려고 했는데 정답이 아니더군요. 그분들에게 맞추되 동기를 부여하고 일상에 공감하려 노력했고, 저의 삶도 진솔하게 나눴어요. 그랬더니 각자 원하는 대로 한 분도 다치지 않고 건강이 회복되었고 저와 몇 년을 함께 하시더라고요."


안무겁다.. 안무겁다... 이건 드라마 소품일 뿐이야... 들 수 있다... ⓒ Unsplash


고객님 한 분 한 분은 저에게 각각 한 편의 드라마예요


근육 속에 브레인과 섬세함까지 있었네 이 친구. 대화를 통해 또 새삼 많은 걸 배운다. 그가 한 말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저에게 회원님들은 각각 한 편의 드라마예요. 내밀한 이야기 까진 아니지만 직장, 직업, 가족, 개인사... 희로애락을 저와 나누면서 저는 매달 수십 편의 드라마를 보는 셈이죠. 그걸 통해 저도 성장하고, 시야가 넓어져요. 늘 한 군데 갇혀 있는 일상이지만 제가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게 하는 고마운 분들입니다."


헐크의 마인드를 바꾼 선배의 말 한마디. 그걸 통해 느낀 것을 회원들에게 전달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그의 말들. 소속 트레이너들인 어벤져스티스리그의 아이언맨, 슈퍼맨, 원더우먼, 블랙위도우에게도(내 멋대로 DC와 마블의 세계관을 합쳤다) 그 마인드가 잘 전달됐나 보다. 다들 참 수업들을 잘하시고 교감도 잘하신다. 그건 말솜씨가 아닌 진심이 주는 말의 생명력이다. 그 살아 있는 힘은 누군가의 인생에 힘을 줄 수도, 좌절을 줄 수도 있다. 입 근육이 멋대로 까불지 않도록 정신과, 생각의 근육도 잘 다듬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 하늘은 무슨 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