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자 아빠 해방기
조금은 오래된 경제입문서 로버트 기요사키의 베스트셀러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는 돈공부 좀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아빠를 부자, 가난뱅이로 나누나? 보나 마나 한 이야기가 담겼을 거라 생각했다.
이 책에서의 '아빠'는 생물학적인 아빠가 아니다. 돈을 버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부자아빠'이고, 시스템의 노예가 되는 법만 가르치는 사람은 '가난한 아빠'이다.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진짜 아빠가 나를 후자로 만들고 있다면, 그 말씀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한마디로 불행한지도 모르고 보람차게 살아가는 너희들의 '가난한 아빠' 대신 나, 기요사키가 '부자아빠'노릇을 할 거고, 그래서 내 책과 강연을 돈 내고 사야 한다는 말이다. 이 책의 내용은 배고프면 밥 먹고, 시험 잘 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와 다름 아니다. 나머지는 적당한 꾸밈말과 마케팅적 용어일 뿐이다. 앞뒤가 안 맞는 내용도 있다. 내용을 폄훼하는 게 아니다. 당연함을 일깨워 생각을 전환시키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경제 입문 자라면 필독서로 추천한다.
이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뀐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간접 경험과 독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이 책을 읽은 100명 중 1명은 실천해 성공하고, 2~3명은 겨우 겨우 따라 하고, 나머지 8~90명 이상은 잊어버리고, 1명은 어차피 실패한다. 이 확률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스승이나 책, 강의가 아니다. '그 책을 읽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핵심은 '부자'는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인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느냐이다.
부자의 마인드, 부자의 생각을 가르쳐 주는 책은 많다. 그런데 가난의 문제점을 과감히 지적하는 글은 적다. 그런 사람들은 욕을 한 바가지 먹고 악플에 시달린다. 안 그래도 힘들고,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지적질까지 받아야 해?라는 심리는 이해가 된다. 그래서 이 가짜 위로와 희망고문이 판을 치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책은 말도 안 되는 판타지 소설과 다를 바 없다.
어릴 적 나는 점심을 걸러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 자라면서 부모 원망도 해보고, 나의 소극적인 생각과 돈에 대한 두려움이 오히려 판단 미스로 이어지는 모습에서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주식투자를 접하며 경제와 정치, 사회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공부하며 깨달았다. 나의 가난이 주는 문제는 기회나 물자의 부족 그 자체가 아니었다. 가난은 심리 기저에 어떤 장치를 심어 놓았던 것이다. 순전히 나의 자의적 분석이다.
가난은 돈에 객관성을 잃게 한다.
가난은 돈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갖지 못하게 한다. 두려움 혹은 증오가 대표적이다. 두려움은 종종 무관심이나 무지로 드러난다. 비난도 선망도 어떤 부분은 증오가 바탕일 때가 있다. 두려운 자가 돈을 벌면 미친 듯이 써버린다. 증오를 품은 자가 돈을 벌면 갑질과 폭력을 일삼는다. 천민자본주의의 부산물에 불과한 삶을 살게 된다. 그저 따라 하기 허영심을 가진 자는 어차피 망할 거라 답이 없다.
우선 버려야 할 것은 금수저, 흙수저론이다. 부자든 가난하든 아빠는 잊어버려라. 아빠를 보지 말고 나를 보아야 한다. 출생은 나의 선택이 아니지만 내 삶은 나의 선택이다. 기회의 불평등을 핑계 대고 싶으면 경제학 역사를 살펴보라. 인류사 어느 시기에 기회의 평등이 있었나? 이 불공평한 시스템은 제도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변한 적이 없다.
주변의 부자들을 살펴보니 그들은 돈에 감정을 싣지 않았다. 큰 흐름을 보고 시기를 노릴 뿐이다. 특별히 아이큐가 높거나 대담한 성격이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돈을 오직 도구로만 본다. 데이터를 중시하며, 신중하게 한 번 심었다면 자랄 때까지 기다린다. 돈에 피, 땀, 눈물을 부여하면 살이 떨려 투자를 할 수가 없다. 반드시 언제까지 벌겠다거나, 반드시 얼마를 벌겠다고 달려들면 투자에 실패한다. 조급해지고,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이런 가난한 마음을 노린다. 결국은 잃게 된다.
가난은 시간을 빼앗아간다
또 하나 문제점은 금보다 귀중한 우리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다. 이것은 돈을 적게 버는 것보다 더 나쁘다. 고된 노동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귀찮은 상황을 만든다. 몸을 망가뜨려 또다시 일할 기회를 빼앗는다. 사람들은 원래 가진 재화나 돈이 부자를 만들거라 착각한다. 사실 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이다. 부자가 되는 과정에서 시간은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죽어라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 시간에 우리는 자기 계발, 경제, 사회, 문화 현상을 탐구해야 한다. 읽고, 보고, 써야 한다. 그래야 길이 보인다. 기술과 문화, 세상의 흐름을 이해하고 투자의 포인트를 찾을 수 있다. 그 외에도 드라마나 영화, 연극, 레저, 여행 무엇이든 자기의 적성에 맞는 것에 준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콘텐츠다. 이 콘텐츠가 쌓이면 직장에서, 삶에서, 또 다른 무대에서 자기의 길을 펼칠 수 있게 된다. 모두에게 시간은 공평하게 24시간 주어진다. 그러나 쓸 수 있는 시간은 내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가난은 포기의 안락함을 준다
가난은 경제, 사회, 정치를 외면하게 한다. 현실도피를 선물하는 것이다. 가난할수록 보수적이고 순종적이게 된다. 큰돈을 다뤄본 적이 없으니 '어차피 나와 상관없어, 나 살기 바빠, 복잡해, 생각하기 싫어'라고 말한다. 나중에는 '난 소박하고, 욕심이 없어, 난 열심히 살고 있어!'로 자신을 속이기에 이른다. 왜 당하는지, 심지어는 당하고 있는 것 자체도 모른다.
벗어나라는 충고에 글 읽는 게 힘들어서, 집중력이 약해서, 숫자에 약해서, 시간이 없다며.. 온갖 핑계가 수천가지다. 작심은 3시간을 안 간다. 학원을 끊고, 책을 사지만 다니지도 보지도 않는다. 생각이 턱턱 걸린다. 틈이 나면 공부보다는 늘어지는 것을 선택한다. 이리저리 치이며 열심히 산 게 억울하기 때문이다. 반면 성공한 사람들은 계획적으로 쉰다. 그러면서도 더 잘 놀고 더 잘 쉰다. 심지어는 노는 동안에도 돈을 번다.
이 글에서 지적한 것들, 다 내 이야기다. 일부는 과거고 일부는 현재진행형이다. 가난에 대한 메타인지(Meta Cognition)로 얻은 것들을 실천하기 위래 크게 노력 중이다. 두려움과 무지를 인정하고 매일 쓰고, 읽고, 또 본다. 무작정 돈을 추구하기보다는 시간을 확보하고 가치 있는 일들로 내 삶을 채우기 위해 불필요한 덩어리들을 떼어내고 있다. 몇 년이 흐르고 요즘 그 것들이 열매로 뚝뚝 떨어지고 있다. 매일이 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