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단점과 장점의 조삼모사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저 대사로 아주 유명한 짤이 있다. 바로 '연느님'의 스트레칭 짤이다. 무슨 생각을 하며 스트레칭하냐는 질문에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 말하는 장면이다. 방송이라, 쿨 해 보이려고 한 말이 아니다. 다소 어이없어하는 찐 표정이다.
질문자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공간에 퀸연아와 단독 인터뷰를 할 절호의 기회를 살려 소위 '있어 보이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을 거다. 자신의 우문에 현답을 한 이 장면을 그대로 내 보낸 건 시청자들도 깨닫길 바랐을까? '해야 할 일은 그냥 하는 것'이라는 걸.
의미 집착러인 나는 가끔 일이나 관계에 어려움을 겪곤 한다. 모든 일에 '마땅히 해야 할 이유'를 찾는다. 프로젝트를 예를 든다면 잘 정리된 고객의 요구사항조차도 낱낱이 분해해 어떤 부분은 제대로 파악하는지, 어떤 부분은 오류를 품고 있는지 분석하고 합의점을 찾아야 일을 시작한다. 시작이 느리고 사람을 피곤하게 했다. 종종 상당한 저항에도 부딪혔다.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도 똑같이 질문했을 거다. '연느님'의 삶의 철학이 드러나는 상투적이고 멋진 대답을 한 것 기대하며. 그러나 짧고 명쾌한 그녀의 대답은 내가 들어본 어떤 길고 심오한 강연보다 더 큰 감화를 일으켰다. 때때로 생각보다 우선 실천이 앞서고 간단한 몇 마디로 본질에만 집중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냥 성격일 때도, 뛰어난 지성일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김연아가(당연히) 아니다
생각의 훈련으로도 가능할까 싶어 부단히 노력을 했다. 그러나 타고난 걸 바꾸는데 잘 될 리가 없었다. 일단 하고 보는 일은 나에겐 줄을 달지 않고 뛰는 번지점프 같았다. 생각 더하기 생각의 알고리즘을 깨는 건 고속도로에서 유턴하는 것만큼 어려웠다. 그런데 꽤 오랜 기간 스스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의외의 결론이 났다. 나의 이런 특성이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도 많으며, 나를 신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말이었다. 나는 관점을 바꾸기로 했다.
이걸 장점으로 바꿀 방법은 없을까? 두 가지를 우선 실천해 보았다. 하나는 이전 글에서 처럼 너무 생각에 얽매이지 말고 우선 실행을 가능케 하는 루틴을 만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표현방법과 스타일을 바꾸는 노력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설득하거나 비판하기보다는 경청하고 어떻게 시너지를 낼 것인가에 집중했다. 그 결과 충돌은 훨씬 줄어들었다.
나는 이 경험에 비추어 누구든 '단점으로 보이는 것을 특성으로 인식하고 발현되는 프로세스와 전달방식을 바꾸면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파괴적인 성격이 아니라면 가진걸 너무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고 '어떻게'에 집중해 보자. 영화에서 주로 오타쿠들이 혜성 충돌을 막아내지 않나. 나답게 살면서 나다운 방법으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랄까.
사실 매사 긍정적이고 무계획인 사람들이 저지른 것들을 수습하는 건 나 같은 사람들 아닌가. 일했던 회사에서도 내가 없으면 회의 마무리가 안됐다. 업무 프로세스도 엉망인채로 방치됐다. 디자이너들은 불필요한 노가다를 해야 했다. 아아 엔트로피로 가득한 세상... 맞다, 우리가 없으면 세상은 무질서의 극치를 달릴 것이다. 진지충들아 힘내자. 세상엔 피트니스 센터에서 스트레칭하며 온갖 잡생각을 하는 나도 필요하(할거)다. 아마...
뭐 하나 빠지는 데 없이 완벽한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