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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니 스탁 Aug 06. 2023

[말] 신념이라는 바이러스

확증편향이 된 신념은 어떻게 진실을 말살하는가.


어떤 사람이 아무도 모르던 진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었고 자신이 실천하여 결과로 증명해 보였다. 그러나 그가 속한 집단은 그 주장, 아니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면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었다. 기분이 나쁜 이유는 '자신이 믿고 있던 신념과 자부심에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속한 곳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였다. 모두들 그가 살린 생명의 숫자가 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였고 업적을 폄훼하였다.


그 사람은 분노하여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책을 썼다. 그 책은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논쟁하고 다투었다. 그러자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를 속여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가 도망치려 하자 강제로 결박하고 가두어 버렸다. 저항하던 그는 몸에 상처가 났고 결국 감염으로 감금된 지 2주 뒤에 사망하였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바로 헝가리 출신 '제멜바이스'라는 의사의 이야기이며, 이 사람은 인류에게 '손을 반드시 씻으라'고 가르쳐준 사람이다. 그의 잘못이라면 '의사'들에게 가장 먼저 손을 씻으라고 말한 것일까? 의사들은 말했다. "숭고하고 위대한 일을 하는 존재인 우리가 죽음의 원인이라고? 당신 미쳤어?"


이그나즈 제멜바이스(1818~1865) ⓒ Wikipedia


1840년대 당시 그가 일했던 제네바 병원에서 수많은 산모들이 출산 후 '산욕열'이라는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무려 1000명 중 98.4명 꼴로 원인 모를 감염으로 고열에 시달리다 숨졌다. 당시 병원이란 곳은 위생과 거리가 멀었다. 사경을 헤매지 않는 한 병원에 가는 게 더 큰 병을 얻을 가능성이 높았다.


원인은 지금의 상식으론 복잡하지 않다. 의사를 비롯, 그 누구도 환자와 환자 사이를 오갈 때 손을 씻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체를 해부하다 피와 고름이 묻은 가운을 그대로 입고, 그 손으로 산모를 돌보았다. 게다가 의료용 기구도 소독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해부를 하다 칼에 상처라도 입으면 의사도, 의대생도, 누구도 예외 없이 크게 아프거나 죽음을 맞았다.


그 땐 병균이나, 감염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공기 중에 독소가 있어 그것이 병을 옮긴다 믿었기에 접촉성 교차감염에 완전히 무지했다. 신의 저주나 귀신을 탓하던 중세보다는 나았지만, 안타까운 수많은 죽음에 제멜바이스는 의문을 가졌다. 왜냐면 해부를 집도하지 않는 산파들이 돌보는 병동에서는 사망률이 1000명당 36명으로 훨씬 적었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그저 '남자 의사들이 산모를 거칠게 다루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했다.



수십억 인류를 살린 위대한 질문


그즈음 제멜바이스의 동료의사가 해부를 하던 중 사고로 팔을 크게 다쳤는데, 감염이 심해져 결국 사망하였다. 그런데 그 증상이 산모들과 비슷했다. 그는 생각했다. 해부실을 거친 의사를 접촉한 산모, 해부실에서 다쳐서 죽은 의사. 두 죽음의 공통점은 '해부'였다. 제멜바이스는 비로소 공기가 아니라 '입자'즉, 물질과 접촉에 의한 감염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명제를 세우게 된다.


그는 병원에 염소 처리된 석회용액을 가득 담은 대야를 설치했다. 해부실을 갔다 온 의사들은 그 물에 손을 씻고 산모들을 돌보기를 제안했다. 이듬해 1848년 산모의 사망률은 1000명당 12.7명으로 급감했다. 나에겐 숫자보다 놀라운 것은 감염의 경로에 대한 혁신적 발상의 전환이다. 흔히 말하는 역학조사 개념조차 없던 시절 그의 관찰과 생각 덕분에 오늘날 얼마나 많은 인류는 목숨을 건진 걸까? 이건 계산이 안된다.


1863년의 제멜바이스.(납치되기 2년 전) ⓒ Wikipedia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건 동료 의사들을 냉담한 반응과 비난뿐이었다. 자신들의 특권의식과 선민사상에 상처를 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생명을 구하려고 노력한 자신이 오히려 수많은 산모들의 죽음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항상 의대생들과 의사가 산모들을 죽여왔다'라고 말했다며 그를 악마화했다. 그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집단의 광기와 잘못된 신념은 메시지를 이길 수 없으면 메신저를 공격한다.


제멜바이스는 이를 주제로 책을 썼지만 이 역시 비판만 받았다. 분노한 그는 진실을 짓밟는 자들에게 '암살자들'이라고 비난하기에 이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가 근무 중이던 비엔나 병원은 문제를 일으킨다며 그를 해고했다. 그는 고향인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돌아가 무보수로 명예의사로 봉사했다. 역시나 산욕열이 창궐하던 그 병원에서도 산모의 사망자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거기 의사들이라고 다를까 그는 집단 따돌림에 시달렸다. 그는 매일 억울함과 분노에 휩싸여 동료와 갈등을 일으켰다. 몇 년 뒤 어느 날 동료의사들은 그에게 새로운 의료시설을 시찰하자는 제안을 한다. 병원 근처에 도착한 그는 이상한 낌새를 느껴 도망치려 했으나 동료들은 강제로 구속복을 입히고는 가둬 버렸다. 그곳은 정신병원이었다.


제멜바이스 납치보고서. 1865 ⓒ Wikipedia


그 역시 2주 뒤 손에난 작은 상처로 인한 감염이 급격히 악화되어 사망하고 만다. 수억, 아니 수십억 인류를 살린 위대한 의사는 이렇게 허망한 죽음으로 세상을 떠났다. 노벨, 뢴트겐, 뉴턴, 아인슈타인, 퀴리부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과학자들이 있다. 물론 이들은 명성만큼 인류에게 큰 업적을 남겼다. 심오한 원리, 공식, 저서와 논문을 남겼다. 그런데, 우리에게 단지 '손을 씻으라'라고 말한 이 가련한 의사는 아는 이가 드물다. 거기엔 원리, 공식, 저서, 논문이 없기 때문일까?



집단 사고의 좀비가 되지말아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각자는 똑똑하다. 지성이 넘치고, 교양이 있다. 그런데 집단이 되면 어떤 경우는 이상해 진다. 행동을 남에게 미루고, 다수의 광기에 휩쓸리고, 눈치를 보는 걸 넘어 진실에 눈감아 버린다. 그 집단의 정체성에 지나치게 경도되면 그 정도가 심해져, 아무리 사실이 그러하다 할지라도 스스로를 속이며 어리석은 '신념'을 따른다.


이 당연함은 수백 년 전 그의 관찰로부터 출발했다 ⓒ FreePic


분명 비리 덩어리에, 부도덕하고, 잔인 무도함에도 자신의 하찮은 정치적, 종교적 신념을 따라 그들에게 표를 준다. 진실은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인정한다. 그 이면에는 지독한 이기주의가 숨어있다. 겉으로는 지성인이고, 사랑이 넘치는 종교인이고, 사회적 지위에 맞는 옷차림과 교양을 뽐내지만 그럴싸한 명분뒤에 숨어 자신의 이득만 바라보며 잔악 무도한 권력에 빌붙는다.


문제는 그 지경이 되면 누군가가 진실, 사실을 증명해도 그것을 들여다보거나,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살피기보다는 그저 '공격'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신념의, 교리의 완결성에 도전하면 모두 적으로 돌린다. 오히려 그들을 말살하고 죽음으로 내 몬다. 지금 가짜뉴스에 중독된 수많은 이들은 자신이 어떻게 폭력적 사회로 만드는데 일조하는지 모른 채, 교묘한 프로파간다와 마타도어에 동참하여 깨춤을 추고 있다.


이런 풍자만화를 보니 외국도 형편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왜 그들이 말하는 행간에 불순한 의도와 진실을 감추는 통계의 거짓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까? 무도한 이들이 만든 사회 속에서 묻지 마 폭행과 살인, 집단의 광기로 인한 약자의 죽음이 너무도 많아져 편안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 기술이 발전되고 정보의 소통은 실시간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도구의 발전일 뿐이다. 그것의 무지막지한 속도는 우리의 광기를 더 가속화할 수도, 올바름으로 바로잡을 수도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쿨해 보이지만 자신이 피해자가 되면 가장 먼저 남 탓할 사람들이다.


비엔나 의과대학 앞의 제멜바이스 동상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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