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생각을 끄고 집중하기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날카로운 물질은 무엇일까?
01. 지구상에서 매우 흔한 물질이다.
02. 이 물질이 없으면 대부분의 생명체는 죽는다.
03. 온도에 따라 모양이 완전히 다르게 변한다.
04. 자주 이걸 쓰지 않는 사람은 사귀기 어렵다. 냄새가 난다.
05. 나를 이걸로 보면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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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물이 가장 강력하고 날카로운 물질이냐고? 그것은 아래 영상을 보시면 이해가 된다. 바로 '워터 제트(Water Jet)'라는 기계이다. 물을 아주 좁은 노즐을 통해 기압의 몇 천 배로 쏘면 엄청난 절삭력을 가지게 된다. 자르지 못하는 물질이 없다. 너무 강력해서 파편조차 거의 튀지 않는다.
나무, 벽돌, 두꺼운 금속덩어리는 물론이고 지구 최강이라는 다이아몬드도 절단해 버린다. 절단면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매끈하다. 복잡한 모양도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 어떻게 흐물거리는 물이 이런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바로 아주 좁은 틈이라는 조건과 아주 강력한 압력이라는 조건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물의 모양이 변화무쌍한 건 알았지만 이 영상을 보았을 때 너무도 신기했다. 그리고 재미 이상으로 나에게 생각거리를 주었다. 내 생각을 불필요한 곳에 쓰지 않고 저렇게 한 곳에 모을 수 만 있다면?
헬조선 대한민국의 지친 청춘들에게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라거나, 열심히 살지 말라거나, 너무 노력하지 말고 행복한 일을 하라는 뜬구름 잡는 조언들이 난무한다. 책으로, 강연으로, 인터넷에 이미지에 캘리그래피로 많이들 돌아다닌다. 출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불분명하고 그럴싸한 비문들 투성이다.
가수 오반(OVAN)의 '망해 간다니까'의 가사를 보면 이런 거짓 쿨함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누가 네 행복까지 챙겨주니까 너만 행복하면 된다는 멍멍이 소리를 해대는 거’라고. 물론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생각해 보자 ‘열심히 살지 말라’는 책이 나올 때까지 편집자,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교정가, 인쇄소 실장님은 얼마나 열심히 살았을까? 작가는 퇴고를 발가락으로 했나? 그 책으로 번 돈은 자신을 포함, 수많은 이들의 ‘열심’으로 얻은 것이다. 누가 네 행복까지 챙겨주니까.. 노래 가사에 딱 맞는 상황이다.
열심히 살지 않아야 할 이유로 든 노력의 배신이란 건 모든 걸 결과로만 보기 때문이다. 책이 잘 안 팔리면 더 이상 열심히 쓰지 말아야 할까? 그건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어야 한다. 판매부진이든 흥행이든 그것이 열심히 하고 말고의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 경험으론 대부분 노력이 배신한게 아니라 여기저기 엉뚱한 것에 열심을 쏟은 탓이었다. 흩어진 욕망과 생각을 정리해 한 곳으로 모으고,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나의 고통을 덜어줄 것 같은 달콤한 조언 '생각을 끄라'는 말에는 역설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건 필요한 생각만 키라는 말이다. 베스트셀러 『신경 끄기의 기술』의 저자 마크 맨슨은 '무엇을 하기 전에 무엇을 더 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말까를 고민하라'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은 진짜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거기에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지 열심히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시험공부를 할 때 어떤 과목을 얼마나 몇 시간 동안 공부할지 계획을 세우고, 카페 구석자리를 점거하고 도서관에서 자리싸움하기 전에 카톡을 차단하고, 드라마를 끄고, 게임을 로그아웃하라는 말이다. 투 두 리스트가 아니라 낫 투 두 리스트가 필요하다. 그럼 할 일이 뾰족해진다. 워터제트 처럼.
죽기 전에 봐야 할 것들, 가야 할 곳들, 해야 할 것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죽기 전에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 가지 말아야 할 곳, 절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적어 본 적이 있을까? 무엇인가에 힘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쓸모없는 것들에 힘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워터제트 수준까지 되지 못하고 원하는 모양으로 절삭을 시킬 수 없다 해도 그 과정 자체가 삶이다. 그 노력은 강력한 삶의 힘을 부여할 것으로 믿는다. '열심은 살아야 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