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그래도 돼. 우리가 전진하는 한.
자책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문제가 생기면 해답을 찾아야 한다. 실수를 실패로 만들지 말지는 내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하지만 그게 잘 될 리 없고 처음엔 일단 넘어질 수밖에 없다. 나같이 유리멘털의 인간이라면 산산이 부서질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용케도 스멀스멀 다시 일어서고야 만다.
주변에 나를 뜨겁게 달궈주는 용광로 같은 고마운 사람들과 스스로 불타오르는 경쟁심과 자기 증명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 아버지로부터 생긴 것이다. 지나치게 경직되고 올바름을 강요했던 아버지는 내게는 애증의 대상이다. 언제나 스스로를 억압하고 절제하도록 세뇌되다시피 했던 가정교육 때문에 나는 사춘기조차 없이 성장했다.
부모 원망이 아니다. (스무 살 넘어가면 그런 건 그만둬야 한다.) 대신 내가 얻은 건 로봇에 가까운 신뢰할 수 있는 답을 찾는 자세이다. 반드시 나를 재건하고 올바로 서겠다는 의지다. 이것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부분은 연륜과 지혜로 해결할 문제다. 실수를 교정하는 삶을 지금도 살고 있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분명 실패는 존재한다. 이루지 못하는 것들의 실존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실패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기도 하다. 스무 살 때 맛본 실패에 세상이 끝난 것 같았다. 더 노력했지만 또다시 찾아온 실패에도 세상이 끝난 것 같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맞은 엄청난 실패는 정말 세상의 종말 같았다. 그런데 세상은 안 끝났다. 여전히 잘도 돌아가고 나는 오히려 더 건강해지고 일을 더 잘하고 있다.
나는 물러서는 법을 몰라서 괴로웠던 것이다.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고 끝까지 매달리고 집착했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기보다 천착하고 지구 맨틀까지 파고들 심정으로 삽질을 했다. 그러나 석유나 금은 나오지 않았다. 어두운 동굴 속에 출구 없이 헤매는 나를 보았을 뿐이다. 답을 모르고, 같은 일이 반복될 때는 잠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함을 배웠다. 그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지혜로움이다. 아직 실천은 남았다.
나에게 포기는 죽도록 싫은 것이었다. 나는 무려 23년을 한 업계에서 종사했다. 베테랑이라는 소리를 듣고 어딜 가서든 실력도, 설득력도 빠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업계의 고질적 병폐, 대기업으로부터 하청으로 이어 이지는 피라미드 구조와 부조리한 영업방식, 승자독식의 이윤구조, 관료들의 나태함과 부패, 무한경쟁은 개선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와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이권들이 나를 하나의 포지션으로 점점 고정시키고 있었다. 어딜 가든 문제가 있는 조직, 프로젝트를 뚝딱 고쳐 놓는 해결사처럼 되고 말았다. (물론 처음부터 잘된 프로젝트도 많다). 나는 일단 일을 맡으면 웬만하면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내 속은 썩어 들어갔다. 늘 잠이 부족하고, 불안증에 시달렸다. 매번 능력의 한도를 초과해서 썼고 번아웃이 왔다. 그런데 몇 년간은 일 중독이라 번아웃이 온 줄도 모르고 살았더라. 그런데 내가 한쪽으로 기울어 뒤집어질 지경에 또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나의 또 다른 용도를 발견했다.
그래서 얼마 전 오래된 목표를 내려놓고 업계를 떠나기로 했다. 사표를 쓰고 그 동네에는 다시는 가지 않으리라 생각하며(왠지 이렇게 생각해야 편하다) 마지막 회의, 문서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원섭섭하... 그냥 시원했다. 잘한 거다. 나는 편한 일을 찾아온 게 아니다. 더 불확실하고 더 노력을 해야 하는 일을 시작했다.
나의 포기가 패배가 되지 않는 것은 내가 마땅히 놓을 것을 내려놨기 때문이다. 이전보다 돈을 적게 벌어도, 더 인정을 못 받아도, 더 즐겁지 않아도 나의 패배가 아니다. 더 이상 억지로 나를 고통에 방치하지 않고 다른 도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한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
사실 내 인생의 대부분의 실수, 물러섬, 포기함은 실패, 비겁함, 패배가 아니었다. 그걸 평하가는 자신과 타인의 시선이 너무도 가혹했을 뿐이다. 학력, 재산, 능력, 지성... 어느 때가 되면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기준들. 그것을 향해 한쪽 손은 주먹을 쥐고 핸들을 돌리 듯하고 나머지 손의 가운데 손가락을 천천히 펴주자.
나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아들이었지만 반항하던 아이들보다 훨씬 불행했다. 하지 말라던 쓸데없는 짓이 직업이 되어 잘만 먹고살고 있고 그놈의 업계를 그만두고서야 비로소 진짜 삶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나의 철학과 신념을 믿고 꿋꿋하게 걸어갔었어야 했다. 유학도, 미대도, 모두 포기한 지난 시간이 아깝기만 하다.
브런치 작가님들의 삶은 어땠을지, 이 시대에 굳이 이 플랫폼에서 무려 긴 글을 읽는 방문자들의 경험은 어떨지 궁금하다. 어떤 분들이라도 나의 부족한 글에서 '자유함'을 얻었으면 좋겠다. 실수해도 되고, 물러서고, 때로는 포기해도 된다는 것을. 그것은 학습이고 지혜이고 또 다른 도전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저 원 없이 실컷 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