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를 만드는 사람은 모자로, 구두를 만드는 사람은 구두로 세상을 본다고 합니다. 같은 이치로, 디자이너는 세상을 디자인의 렌즈로 바라볼 수밖에 없겠죠. 저 또한 디자이너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나중에는 박사 학위도 취득했으며, 사회생활에서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으니 말이죠.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사실, 모자를 만드는 사람들처럼 디자이너들 간에도 각자 보는 기준에 차이가 있겠지만, 제가 보는 세상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디자이너가 세상을 디자인의 틀로 보는 데는 반드시 다룰 '대상'과 그 대상에 깃든 '문제적 현상'이 필요합니다. 하다 못해 더 개선하고 싶은 '욕구'라도 있어야 디자인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결국, 디자이너에게 세상은 개선이 필요한 문제로 가득하거나 개선 욕구를 자극하는 매력적인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길을 걷거나 주변을 둘러보다 보면, "저 건물은 왜 저렇게 생겼지?", "저 교통표지판은 왜 이런 모양이지?", "이 제품은 꼭 이렇게 사용해야 하나?" “와 저건 진짜 멋진데, 그래도 여긴 조금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 등 끊임없이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런 생각들은 디자이너의 심장을 박동 치게 하는 파도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진짜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빛을 발합니다.
디자인은 주어진 문제를 풀어내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질문에 맞는 답을 찾아야 합니다. 이 기준을 '합목적성'이라고도 하는데, 문제와 답이 서로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질적이든 또는 근본적이든 문제와 답이 대응되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둘째, 가장 적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는 최근 관심이 높아진 '적정기술'과도 맥락을 같이하며, 자연과 엔지니어링의 경제성 개념과 비슷합니다. 셋째, 해법은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해결책을 그대로 가져와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종종 이 원칙을 지키지 않아 법정 다툼으로도 번지기도 하니 매우 심각하게 지켜야 하는 원칙입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밤을 지새우며 유니크한 해법을 찾으려 애쓰는 이유입니다.
디자이너는 종종 인간관계나 사람의 마음까지 디자인하려는 욕심을 내곤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 결과는 실망스럽습니다. 결국, 세상은 디자인으로 다루기에는 너무 넓고 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디자인으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왠지 가능할 것 같고, 잘 해결될 것만 같아 그 환상을 떨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디자인의 렌즈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