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디자인 자체가 세상의 문제를 다루는 전문적인 활동입니다. '디자인 사업'이라고 합니다. 이 디자인 사업의 범위는 실로 다양해서 인류 역사와 함께 점점 더 세분화되고 다양하게 확장되어 왔습니다. 브랜드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산업 디자인, 패션 디자인, 경험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가 존재하죠.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이들을 모두 다루기보다는 인간의 인식과 감정, 그리고 일상생활이라는 주제로 좁혀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특히, 제 경력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경험 디자인의 관점에서 어떻게 일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려 합니다.
디자인의 문제해결에서 가장 먼저 정할 것은 ‘대상’인데, 인간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대상으로 삼아 풀어 보겠습니다. 인간의 일상은 상태나 맥락을 인식하는 동시에 감정을 느끼고 판단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연속으로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인식과 감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심리학과 비슷해 보이지만, 심리학이 '왜 그런 인식과 감정이 생겨났는가'에 초점을 맞춘다면, 디자인은 '그래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더 집중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문제적 양상’은 주로 무엇일까요? 실로 다양할 것입니다. 나는 그간 선배, 동료, 후배, 부하 직원, 제자 등과 같이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때로는 상담으로, 때로는 하소연으로, 때로는 자랑과 호소로 알게 된 것으로 사람들은 종종 어떤 불안감에 사로잡혀 평소와 같은 판단과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 사람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하다", "장래가 걱정이다" 등, 불안감 때문에 고민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불안감을 문제적 양상으로 정해 보겠습니다.
문제적 양상이 파악되었다면, 왜 그런 양상이 유발되었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디자인에서는 리서치를 실시합니다. 고객을 파악하고 시장을 분석합니다. 행동의 주체인 인간과 행동의 무대가 되는 환경에 대해서 배우면서 문제 현장을 최대한 상세하고 세밀하게 속속들이 뒤집어 보면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결국 사람들이 왜 불안해하는지, 불안의 감정을 촉발하는 단서가 무엇인지 특정해야 합니다.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 보거나 내면을 성찰하면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밝혀냅니다.
이렇게 문제의 본질이 추론되었다면, 본격적으로 해법을 찾기 위해 디자인은 가능한 많은 아이디어를 찾으라고 말합니다. 불안을 유발한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 어떤 방안이 있을 것인가를 여러 가지로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몇 날 몇 주가 걸릴 수도 있는 숙고가 이어지다 보면 대략 몇 가지 후보 안으로 추려지는 순간이 옵니다.
이 단계에서 디자인은 최종 후보들을 미리 검증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의 검증을 거쳐 최종안을 선택하며, 마지막으로 정말 이 방법을 채택할 것인지 자신이 판단해 보아야 합니다. 판단이 끝났다면 빠르게 실행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실행을 통해 그 해법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까지 확인한 후 문제 해결이 이루어집니다.
디자인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후 시장의 반응을 확인하고 다음 개선 방향을 수립해서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불안감이 다소 줄어들었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꾸준한 반복 실행과 개선을 통해 점차 완벽한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디자인의 원칙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디자인의 렌즈로 일상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