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질문의 프레임을 바꾼다.
질문이 기업의 정체성을 만들고, 정체성이 선택을 결정하며, 선택이 운명을 가른다.
파타고니아와 아크테릭스는 같은 시기, 같은 산업에서 다른 질문을 던졌다.
AI가 모든 답을 내는 시대, 기업가에게 남은 것은 질문하는 능력이다.
AI가 빠르게 답을 내는 시대에, 기업가는 무엇을 물어야 할까? AI가 '답의 시대'를 열었다면, 디자인은 '질문의 시대'를 연다. 기업가는 이제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그 질문은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방향에 관한 것이다.
당신의 기업(또는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이 다섯 가지를 스스로 물어보라:
1. 왜 우리는 존재하는가?
2. 무엇이 우리를 대체 불가능하게 만드는가?
3. 우리는 누구와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가?
4. 우리의 성장은 누구의 행복과 연결되어 있는가?
5. 기술이 만들어낼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인간적 가치를 지켜야 하는가?
이 질문에 즉답할 수 없다면, 당신은 아직 질문의 시대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질문은 지금부터 시작하면 된다.
2011년 블랙프라이데이,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뉴욕타임스 전면광고에 충격적인 문구를 실었다. "Don't Buy This Jacket(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재킷 하나를 만들기 위해 135리터의 물이 소비되고, 20파운드의 탄소가 배출되며, 완성품의 2/3는 결국 쓰레기가 된다는 사실을 솔직히 고백하면서였다.
같은 시기, 캐나다 프리미엄 아웃도어 브랜드 ‘아크테릭스’도 성장하고 있었다. 1989년 등반가들이 만든 이 브랜드는 "최고의 품질로 극한 환경을 정복한다"는 철학으로 마니아층을 확보했다.
그러나 두 브랜드가 처음 던진 질문은 달랐다.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는 1970년대, 자신이 만든 암벽 등반용 피톤이 요세미티 바위를 파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시 피톤은 미국 최대 등산 장비 회사로 성장하게 했던 주력 제품이었다. 그 순간, 그는 질문을 바꿨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을까?"가 아니라 "왜 우리는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이 사업을 해야 하는가?"
그는 회사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피톤 생산을 과감히 중단했다. 대신 자연을 덜 훼손하는 알루미늄 초크를 개발했다. 이후 파타고니아의 모든 제품은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유발하지 않는다'는 철학 아래 만들어졌다.
반면 아크테릭스의 여정은 달랐다. 2001년 살로몬 그룹에, 2005년 아머스포츠에, 2019년에는 중국 안타스포츠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인수되며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각 인수마다 기업은 성장했다. 2023년 기준 글로벌 매출 13억 달러, 전년 대비 25% 증가. 한국에서는 2023년 매출 1,600억 원으로 2년 새 2배 이상 성장했다.
하지만 2025년 9월, 아크테릭스는 중국 예술가와 협업하여 티베트 히말라야산맥에서 수백 미터에 걸쳐 폭죽을 터뜨리는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환경 파괴 논란에 휩싸였다. "등산 브랜드가 산악 환경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아크테릭스는 "생분해성 재료를 사용했고 야생동물은 미리 이동시켰다"라고 해명했지만, 오히려 더 큰 비난을 받았다.
이 사건은 상징적이었다. 한때 "극한 환경에서의 최고 품질"을 추구하던 브랜드가, 이제는 "어떻게 더 많은 시장에서 더 크게 성장할 것인가"를 묻고 있었던 것이다. 품질은 여전히 높았지만, 질문이 바뀌었다.
역설적이게도, 옷을 사지 말라고 광고한 파타고니아는 그해 매출이 오히려 증가했다. 2008년 금융위기에도 50% 성장했고, 이후 연평균 30~35%씩 꾸준히 성장했다. 2023년에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로 선정되었다.
아크테릭스는 공격적 마케팅으로 매출 25% 성장을 기록했지만, 히말라야 폭죽 사건으로 브랜드 정체성에 금이 갔다.
두 기업을 가른 것은 기술도, 자본도 아니었다. 창업자가 맨 처음 던진 질문이었다. "왜 존재하는가"를 먼저 묻는가,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먼저 묻는가.
질문이 정체성을 만들고, 정체성이 선택을 결정하며, 선택이 결국 기업의 운명을 갈랐다. 그것이 바로 질문이 만들어낸 정체성의 전환이다. 기업이 자신을 하나의 생명체로 자각하는 과정이다.
디자인은 바로 이 자각을 돕는다. 제품의 형태나 인터페이스를 넘어서, 기업이 어떤 존재로서 세상에 말을 거는가를 묻는 철학적 실천이다. 디자인은 바로 이 지점에서 기업가의 사고를 전환시키는 인식적 도구로 작용한다.
전통적 경영 질문과 디자인적 질문은 어떻게 다를까?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왜 존재해야 하는가?"
"누구를 위한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만들 것인가?"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변화를 설계할 것인가?"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설계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의 전환은 단순한 표현의 차이가 아니다. 사고의 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전통적 질문이 '수단'을 묻는다면, 디자인적 질문은 '의미'를 묻는다. 전통적 질문이 '효율'을 추구한다면, 디자인적 질문은 '가치'를 추구한다.
AI 시대의 함의로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는 "AI로 대체 불가능한 가치의 근원은 무엇인가?"로 진화한다. "누구를 위한가?"는 "인간과 AI의 공진화는 어떤 관계를 지향하는가?"로 확장된다.
AI는 계산을 통해 가능성을 열지만, 그 가능성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우리가 기술로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늘어나지만, 그 일을 왜 해야 하는가는 오직 인간만이 답할 수 있다.
AI가 '답의 시대'를 상징한다면, 디자인은 '질문의 시대'를 대표한다. 디자인은 그 '왜'를 묻는 방식이며, 그 물음을 통해 세상을 다시 구성하는 행위다.
따라서 미래의 기업가에게 요구되는 핵심 역량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질문력. 문제를 다시 정의하고 새로운 맥락을 설정하는 능력이다.
둘째, 통찰력. 데이터 이면의 인간적 의미를 포착하는 감성적 지성이다.
셋째, 의미 설계력.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설계하여 '살 가치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창조적 비전이다.
AI 시대의 기업은 더 이상 기술 기업이 아니라 의미 기업이어야 한다. 혁신은 더 나은 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디자인은 바로 그 질문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마지막 창의적 영역이며, 기업가에게 남은 가장 인간적인 도전이다.
1994년 내 디자인회사를 시작했을 때, 나는 '더 아름다운 디자인'을 꿈꾸는 디자이너였다. 완벽한 비율, 조화로운 색채, 세련된 타이포그래피. 그것이 내가 추구하던 전부였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더 의미 있는 질문'을 만드는 설계자가 되고자 한다.
AI가 모든 답을 줄 수 있는 시대에, 나는 여전히 질문으로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묻는다. "오늘 내가 만들 것은 세상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 회의실에서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나는 묻는다. "당신의 비즈니스는 누구의 삶에 어떤 질문을 남기는가?"
그것이 디자이너로서 내가 선택한 길이다. 그리고 이제, 그것이 모든 기업가가 가야 할 길이라고 믿는다.
앞으로의 기업가는 데이터로 의사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미를 설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깊은 질문이다. 질문이 곧 방향이고, 방향이 곧 정체성이다.
당신은 오늘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AI는 답을 만든다. 하지만 미래를 만드는 것은, 여전히 질문하는 인간이다.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당신은 이제 새로운 문제와 마주한다.
"좋은 질문은 던졌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현실로 만들지?"
바로 여기서 디자인의 새로운 역할이 시작된다. 전통적 디자인이 '문제 해결'에 머물렀다면, AI 시대의 디자인은 '가능성 창출'로 나아간다. 존재하는 불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먼저 제시하는 것.
이것이 바로 '가능성 디자인(Possibility Design)'이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가능성 디자인이 무엇이며, 왜 지금 모든 기업가에게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함께 탐구한다. 질문에서 가능성으로. 여정은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