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회고 2026년 전망 ①

UX 패러다임이 바뀌나?

by 토니샘

2025년 가을, 나는 홍익대학교로 옮겼고 기업적디자인스튜디오(2) 수업을 맡았다. 새 학기 첫날 교실에 들어섰을 때, 학생들의 눈빛은 총명했고 활기찼다. 파일럿 과제로 기존 서비스의 UX를 분석해 보게 했고, 이후 팀 프로젝트로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서비스를 기획하도록 했다.


이번 학기에서 내가 학생들에게 한 가지 ‘담대한 요구’를 했다.

“AI를 도구가 아니라 팀원으로 활용해 보라.”

학생들은 약간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곧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결과는 아직 학기 말에 정리할 예정이지만, 시작부터 변화가 감지되고 있었다.


돌이켜 내가 학생이던 시절부터 따져 보면 세상은 숨 막힐 만큼 빠르게 변해왔다.

컴퓨터가 없었고, 생겼다.

인터넷이 없었고, 생겼다.

스마트폰이 없었고, 생겼다.

그리고 지금, AI가 없었고, 생겼다.


그 변화의 속도는 언제나 급격했지만 2025년은 달랐다. 기술이 발전한 해가 아니라 UX 패러다임 자체가 흔들린 해였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도구가 ‘행동 주체’가 되다

삼성전자에서 Galaxy S 시리즈 UX를 설계하던 시절, 우리의 고민은 명확했다.

어떤 메뉴 구조가 가장 빠른가?

어떤 버튼이 의미를 직관적으로 드러내는가?

몇 번의 터치로 목적에 도달하게 할 것인가?


모든 질문의 중심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었다.

사용자가 명령하고, 시스템은 반응한다.


우리는 그 반응을 효율적이고, 명확하고, 즐겁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이것이 ‘Easy to Use’의 시대, 우리가 알고 있던 UX였다.


그런데 2025년, 전제가 흔들렸다.

GPT-4o, Claude 3.5와 같은 AI 모델들은 사용자의 지시 없이도 맥락을 파악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후속 행동까지 연결했다. Apple Intelligence, Microsoft Copilot Agents, Google Gemini Agent가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AI는 이제 도구가 아니라 ‘행동 주체(Agent)’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2025년을 정의하는 결정적 변화, Agentic UX의 부상이다.


화면에서 맥락으로

우리는 오랫동안 화면 단위로 UX를 다루었다. A 화면에서 B 화면으로 어떻게 이동할까? 정보 구조의 층위를 어떻게 잡을까? 시각적 위계를 어떻게 명확히 전달할까?

그러나 AI는 화면을 보지 않는다. AI는 ‘상황’을 본다.


얼마 전 만난 삼성의 전 임원이 이렇게 말했다.

“AI에게 데이터 분석, 기획서 초안 작성, 사업비 계상 함수까지 맡기면 과장급 직원 정도 수준의 결과가 나와. 나는 검토만 하면 되지. 요즘 일하기 완전 쉬워졌어.”

이것은 단순한 자동화나 속도 향상이 아니다. 일하는 방식 자체의 전환이며, 이미 우리 주변의 흔한 풍경이 되었다.


텍스트, 음성, 이미지, 센서 데이터를 동시에 이해하는 멀티모달 AI가 보편화되며 UX는

화면 → 문맥

조작 → 이해

입력 → 예측

으로 변하고 있다.


공간 컴퓨팅(Vision Pro), 스마트홈, 차량, 웨어러블이 연결되면서 경험의 단위는 더 이상 앱이 아니라 생활의 흐름이 된다.


UX는 이제 "어떻게 조작하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사용자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선제적으로 반응하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신뢰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

그러나 밝은 전망 뒤에는 그림자도 있다. AI가 능동적으로 움직일수록 새로운 불안이 증가한다.

이 AI는 정말 나를 위해 행동하고 있는가?

내 데이터는 어떻게 처리되는가?

잘못된 판단을 하면 누가 책임지는가?


2025년 상반기, 웹 접근성 관련 소송은 전년 대비 37% 증가했다. EU 디지털서비스법(DSA), AI Act의 전면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은 고조된 긴장 속에 대응 전략을 세우고 있다.

AI의 환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투명성·설명 가능성·안전장치를 어떻게 UX로 구현하느냐가 곧 기업의 경쟁력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AI 시대의 진짜 어려움은 AI를 쓰는 것이 아니라, AI를 믿게 만드는 것이다.”


Easy to Live의 등장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 하나의 질문이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UX를 설계하는가?


20년 전, 목표는 명확했다. 도구를 쉽게 쓰게 하는 것, 즉 Easy to Use.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AI는 일정을 조정하고, 결제를 처리하고, 건강을 관리하고, 위험을 예측한다. 사용자는 도구를 ‘쓴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Easy to Live, 삶 자체를 편하게 만드는 UX의 시대다.

경험의 단위는

• 화면 → 생활

• 기기 → 생태계

• 사용 → 동행

으로 확장되었다.

UX는 앱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삶을 설계하는 일이 되었다.


변하는 것,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

모든 것이 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UX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 중심 사고

사람의 심리·기대·불안을 읽어내는 감수성

일관성, 예측 가능성, 명확한 피드백

감성적 만족감을 설계하는 능력

이 모든 것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자는 언제나 ‘통제감’을 원한다”는 것이다.

AI가 편리함을 제공하더라도, 최종 결정권이 인간에게 있다는 감각은 절대 손상되어선 안 된다.

Easy to Live는 Easy to Use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잘 쓰게 만드는 것을 기반으로 예측과 자동화를 얹는 확장된 UX 프레임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연구실로 돌아오는 길,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1995년 웹 디자인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사용자가 어떻게 내비게이션 할까"를 고민했고, 2009년 모바일 UX를 시작했을 때 나는 "사용자가 기능을 어떻게 사용할까"를 고민했다.

그러나 지금은, "AI가 사용자의 하루를 어떻게 이해할까?"를 고민한다.


변한 것은 기술이다. 변하지 않은 것은, UX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2026년 우리는 더 깊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AI는 먼저 예측하고, 먼저 제안하고, 먼저 행동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EU AI Act는 규제가 아니라 ‘집행’이 되고, 접근성은 옵션이 아니라 기본이 되고, 신뢰 경험은 서비스의 핵심 경쟁력이 된다.


그 시대에 UX 디자이너는 무엇을 해야 할까?

화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AI가 언제 먼저 행동할 것인가? 어디까지 자동화하고 어디서 인간이 개입할 것인가? AI가 실수했을 때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을 경험의 언어로 설계하는 사람, 그것이 2026년의 UX 디자이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질문들을 더 깊이 파고들 것이다.

AI 시대, 기업과 실무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리고 30년을 이 분야에서 일한 사람으로서, 격변의 중심에서도 변하지 않는 본질은 무엇인가?


(다음 에피소드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