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지난 글에서 나는 UX의 패러다임이 ‘Easy to Use’에서 ‘Easy to Live’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하나로 수렴된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가?
지난번에 삼성전자 MX 사업부 UX 검증팀을 위한 강의안을 준비하면서, 나는 이 질문과 매일 씨름했다. 단순히 AI 도구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혀 다른 사고방식, 다른 역량, 그리고 다른 조직 구조였다.
자세히 살펴보자.
많은 기업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AI 기능을 서비스에 추가하면 곧바로 경쟁력이 생길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최근 대학원생들과 함께 진행한 AI 챗봇 사용 만족도 연구 결과는 냉정했다. 많은 서비스가 AI 챗봇을 도입했지만, 지속 사용 의향은 매우 낮았다. 개인화 추천을 강화할수록 오히려 불신은 더 커졌다.
이유는 단순하다. 신뢰 없는 기능은 편리함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전가된 책임이 된다. AI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기능이 아니라 ‘신뢰 경험(Trust Experience)’이다.
사용자는 끊임없이 묻는다.
"이 AI는 정말 나를 위해 행동하는가?"
"내 데이터를 어떻게 쓰는가?"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는가?"
이 질문에 UX로 답하지 못하면, 아무리 똑똑한 AI라도 외면받는다.
AI 신뢰 UX에는 최소한 네 가지가 필요하다.
① 설명 가능성: “AI가 추천했습니다"는 답이 아니다. "당신과 유사한 사용 패턴을 가진 수천 명이 이 선택에 만족했습니다"가 답이다.
② 투명성: 어떤 데이터를, 언제, 왜 사용하는지 복잡한 약관이 아니라 사용 시점의 UX로 보여줘야 한다.
③ 안전성: 잘못되었을 때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 ‘Undo’ 버튼만큼 강력한 신뢰 장치는 없다.
④ 예측 가능성: 오늘은 이렇게, 내일은 다르게 행동하는 AI는 ‘똑똑함’이 아니라 ‘불안’을 만든다.
2026년 이후, 서비스의 성패는 AI 기능이 아니라 AI 신뢰 UX에 달려 있다.
두 번째는 더 근본적이다. UX의 사고 단위를 바꿔야 한다.
과거에는 “이 앱을 어떻게 잘 만들까”를 고민했다. 이제는 “사용자의 하루를 어떻게 더 편하게 만들까”를 물어야 한다.
내가 학생들에게 내준 과제가 있다. “팀 프로젝트 전 과정에서 AI를 팀원의 한 사람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강구하라.” 처음 학생들은 과제를 ‘AI로 과제를 대신하는 방법’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곧 깨닫는다.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과제 기획
회의 일정 조정
안건 정리
의사결정
회의록 정리
결과물 생성
프로젝트 회고
까지 ‘하나의 연결된 과업 경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것이 바로 에이전틱 UX(Agentic UX)다.
명령형 인터페이스에서, ‘선제적 판단과 승인 구조’로 전환되는 UX다.
과거에는 사용자가 명령하고 시스템이 반응했다.
이제는 시스템이 먼저 판단하고, 사용자는 승인하거나 조정한다.
기업은 이제 반드시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 AI가 언제 먼저 행동해야 하는가?
•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 실패했을 때 책임은 어떻게 안내할 것인가?
• 인간과 AI의 역할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이 질문 없이 AI 기능을 넣으면, 사용자 피로감과 불신만 커진다.
기업은 이제 ‘앱을 잘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삶을 편하게 하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
AI가 복잡해질수록, 인클루시브 디자인은 더 중요해진다. 웹 접근성 소송이 증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AI 경험은 더 복잡하고, 더 맥락 의존적이며, 더 예측 불가능해지고 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 ADHD 성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친구가 있다.
그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 저는 AI에게 뭐든지 물어봐요. 그러다가 호기심이 계속 생겨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라요."
듣기에는 긍정적이지만, 이것도 인지 과부하의 한 형태다. ADHD 성향을 가진 사용자에게 AI의 무한한 가능성은 '집중력의 함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위험은 사용자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자의 책임 영역이다.
기업은 반드시 다음을 기본값으로 제공해야 한다.
• 자극 최소 모드
• 정보 밀도 조절
• 텍스트·음성·제스처 등 다양한 입력 방식
접근성은 더 이상 옵션이 아니다. 이제는 ‘베이스라인’이다.
① 조직:
UX, AI, 데이터, 엔지니어링, 법무, 윤리가 하나의 크로스펑셔널 팀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생활을 Easy to Live로 만들 것인가?” 이 질문이 조직의 공동 비전이 되어야 한다.
② 데이터:
선제적 UX를 위한 데이터 인프라가 필요하다.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와 AI 편향 관리 원칙은 정책이 아니라 ‘인터페이스’로 설계되어야 한다.
③ 가이드라인:
AI 에이전트의 권한과 책임, 인간 개입 지점, 오류 처리 방식— 이 모든 것이 디자인 패턴으로 문서화되어야 한다.
"AI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언제 스스로 행동하며, 사용자가 어떻게 통제하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화면을 빠르게 그리는 능력은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니다.
Figma의 AI 기능만 봐도 분명해진다. 디자인, 개발, 콘텐츠 관리까지 AI가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품질도 이제는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실무자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① 에이전틱 UX 설계 능력: 버튼이 아니라 ‘AI의 행동 타이밍’을 설계해야 한다.
② AI 리터러시와 데이터 사고: AI가 잘하는 것, 틀리는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③ 인클루시브·접근성 감수성: 이제는 신경다양성까지 UX의 범위다.
④ 인간 중심 감수성: 불안, 신뢰, 감정의 흐름을 읽는 능력.
⑤ 문제 정의와 질문 설계 능력: AI에게 무엇을 물어볼 것인가가 실력의 본질이다.
삼성에서 일하던 시절, 나는 픽셀 하나, 애니메이션 한 프레임에 집착했다. 지금도 그것은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제는 충분하지 않다.
AI 시대에 더 중요해진 것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왜 이것을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묻는다.
“이것을 왜 만들었니? 그 질문은 네가 만든 질문이잖아. 그 질문 자체는 옳았니?”
대부분 대답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AI가 답해.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네가 답해야 해.”
결국 AI 시대의 UX는 기술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삶을 위한 디자인이다.
기업은 AI를 서비스에 ‘넣는 것’이 아니라,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경험 구조 자체를 설계해야 한다.
이제 디자이너는 ‘화면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함께 의사결정을 설계하는 직업군이 되고 있다.
12월 22일, 나는 세미나에서 기조 강연을 할 예정이다.
이번 슬라이드에는 기술 이야기보다 사람 이야기가 더 많다. AI 기능보다 신뢰와 윤리 이야기가 더 많다.
왜냐하면, 내가 30년 동안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이것 때문이다.
"좋은 UX는 언제나 사람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AI 시대에도, 아니 AI 시대이기에 더더욱, 우리는 이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변한 것은 기술이다. 변하지 않은 것은 UX의 중심에 언제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자, 이제.
2026년을 맞을 준비를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