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디자이너의 길을 묻는 이를 위하여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네"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포트폴리오에는 그렇게 쓰여 있고,
명함에도 그렇게 찍혀 있는데
정작 스스로는 확신이 없다.
그 불안이 어디서 오는지 나는 안다.
UX 디자인은 이름에 '디자인'이 붙어 있지만
전통적인 디자인과는 상당히 다른 곳에 서 있는 분야다.
그래서 조형 중심의 디자인 훈련을 제대로 받은 사람도
UX 디자인의 결과물을 흉내는 낼 수 있어도
동작하게 만들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겉은 따라 할 수 있지만
속의 뼈대와 관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뼈대와 관절이 무엇인지를 알면
당신은 오늘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게 된다.
UX 디자인을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심리학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경로로 마음이 움직이는지를
다루는 일이 UX 디자인의 핵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심리학자가 UX 디자인을 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까?
비슷한 질문을 비즈니스 쪽에서도 할 수 있다.
UX는 결국 살아남아야 한다.
비즈니스로 지속되지 못하는 UX는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비즈니스맨이 UX 디자인을 하면 더 나을까?
우리는 이 두 질문에 모두 "그렇지 않다"라고 느낀다.
왜인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냥 안다.
심리학자도 비즈니스맨도 아닌
디자이너가 UX를 해야 한다는 감각이 있다.
그 감각의 정체를 따라가면 UX 디자이너의 본질에 닿게 된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따져 보자.
사람들은 스스로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한다.
그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돕는 시스템과 서비스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사람들이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시스템과 서비스가 자연스럽게 작동하도록
경험을 설계하는 일이 UX 디자인이다.
그러니까 UXer의 일은
겉으로는 시스템이나 서비스라는 도구를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용자가 원하는 목표 달성을 돕는 일이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도구를 만드는 것이 목적인 사람과
목표 달성을 돕는 것이 목적인 사람은
같은 화면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질문을 한다.
그래서 때로는 "UX 없는 UX"라는 표현이 가능해진다.
UXer가 철저하게 자신을 숨겼는데도
사용자가 원하는 결과를 자연스럽게 얻는다면
그것이 가장 완성된 UX이다.
UX 디자이너는 실제로 많은 일을 한다.
필요한 기능을 정의하고,
정보의 구조를 설계하고,
상호작용을 설계하고,
화면의 표면을 다듬는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 네 가지 일은 UXer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기능을 정의할 수 있고,
정보 구조는 정보 디자이너가,
상호작용은 인터랙션 디자이너가,
화면 표현은 시각 디자이너가 더 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UXer만의 고유한 일은 무엇인가?
아무도 겹치지 않는 그 자리.
심리학자도, 비즈니스맨도, 정보 디자이너도, 시각 디자이너도
온전히 차지할 수 없는 그 자리가 있다.
바로 사용자가 원하는 경험의 질서를 찾는 일이다.
경험의 질서란
사용자가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
어떤 흐름과 구조를 가져야 자연스럽게 느껴지는가를
발견하고 설계하는 일이다.
경험의 질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심리학이나 비즈니스 세계가 더 잘 안다.
경험의 질서는 원하는 바를 수행하고 난 후에
사용자가 갖게 되는 경험의 상태, 그 품질을 의미한다.
이것을 알기 위해 UXer는 이 질문을 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를 원하는가?
그런데 이 질문에 사람들은 스스로 답하지 못한다.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언어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UXer는 말 대신 행동을 본다.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
그 행동이 쌓이면 데이터가 된다.
그 데이터 안에서 마음의 지도를 읽어낸다.
유저 리서치, 데이터 드리븐 디자인, 데이터 마이닝.
이름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람들 안에서 경험의 질서를 발견하는 일.
그것이 UXer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UXer의 비장의 무기는 화려한 툴 스킬이나
두꺼운 포트폴리오가 아니다.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달성하고 싶어 하는지를 파악하고,
완수한 후에 어떤 경험의 질감을 갖기를 원하는지를 이해하는
그 능력에서 나온다.
그 능력은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에서 출발한다.
사람을 깊이 이해하려 하고,
그 이해를 실제 시스템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UX 디자이너다.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UX 디자이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