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의 힘을 아린이에게 담아 목걸이에 옮긴 데라스는, 사실 모라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한순간, 모라스의 검이 데라스의 가슴 깊숙이 꽂혔다. 데라스의 피가 바닥에 흥건히 흘러내렸다.
아린은 아빠가 남긴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지하실에서 절대 나오지 마라’는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귀를 찢는 듯한 아빠의 절박한 목소리가 자꾸만 마음을 흔들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두려움과 혼란, 그리고 걱정이 뒤섞여 아린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계단을 한 걸음, 또 한 걸음 힘겹게 올라 지하실 문을 살짝 열었다.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아린의 온몸을 얼어붙게 했다. 아빠의 가슴에 꽂힌 칼, 붉은 피가 서서히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세상이 멈춘 듯, 아린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몸은 움직이지 않고, 눈앞에 비친 현실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아빠...” 속삭임처럼 터져 나온 말은 금세 떨려서 사라졌다.
아린의 가슴은 부서질 듯 아팠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만 꾹 참았다.
무서움과 슬픔, 그 모두를 삼키며 마음속 깊이 아빠를 지키려는 작은 불꽃이 타올랐다.
칼을 꽂은 자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 발목에 새겨진 문신은 선명했다.
아린은 그 문신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그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는 공포와 혼란에 휩싸였다.
마음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눌러 담고, 아린은 조용히 지하실 문을 닫았다.
그 문 너머로 아빠의 숨결이 아직 남아있기를 바라며...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집 안을 샅샅이 뒤져! 아이를 찾아 봐!”
도깨비 마왕은 아이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집중했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데라스가 걸어둔 목걸이의 힘이 아이의 존재를 마왕으로부터 감춰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마왕님, 밖입니다!”
“밖으로 모두 나가! 아이를 찾아!” 마왕이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 아이가 우리의 꿈을 실현시켜 줄 단 하나의 희망이다!”
밖에서 일부러 인기척을 낸 사람은 아빠의 오랜 친구, 사부였다.
지금은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무림의 절대 고수이자 도깨비였다.
도깨비 최고 위원회 소속이었던 그는 도깨비 사회에 환멸을 느껴 모든 것을 버리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 친구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데라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내가 너한테 이런 부탁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너 말고는 누구한테도 부탁할 사람이 없다.”
데라스는 펑펑 울었다.
친구는 데라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뭔데, 이렇게 울기까지 해. 말해 봐.”
데라스는 조심스레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와 요즘 느낀 이상한 기척들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렵게 입을 뗐다.
“혹시... 나한테 연락을 받으면... 우리 아린이를 꼭 좀 부탁해!”
친구는 그런 일이 있을 리 없다며 데라스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강한 기척이 느껴진 그날 저녁,
데라스는 친구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인 것 같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마워.’
메시지를 받은 친구는 곧장 데라스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가 도착해 본 건,
집 곳곳에 흘러넘친 친구의 붉은 피뿐이었다.
아직 마왕의 무리들이 집 안에서 아이를 찾고 있었고,
친구는 그들을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밖에서 인기척을 냈다.
그 소리를 들은 도깨비 마왕과 무리들은 아이를 찾기 위해 집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때, 친구는 곧장 지하실로 들어갔다.
그곳 구석에, 울지도 않고 우두커니 서 있는 아린이를 발견했다.
‘아린아, 가자.’
아린이는 사부의 손을 잡고 담담히 지하실을 나왔다.
그리고 숲속으로 몸을 숨겼다.
숲의 바람과 꽃, 새와 물결이 모두 아린이를 감싸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아린이의 흔적은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