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있고 난 후, 아린이는 단 하루도 편히 잠들 수 없었다.
눈을 감기만 하면, 아버지의 피가 선명하게 떠올라 자신의 얼굴을 물들이는 듯했다.
그 끔찍한 기억이 밀려올 때마다, 아린이는 아버지가 남겨준 나무 펜던트를 손에 꼭 쥐었다.
손바닥이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마치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는 사람처럼.
간절함이 닿기를, 시간을 되돌릴 수 있기를, 아버지를 다시 안아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무 펜던트는 아린이의 땀과 눈물로 젖어 들었고, 그럴 때마다 어딘가 모르게 따뜻한 빛을 머금었다.
그 빛을 바라보며 아린이는 믿었다.
아빠가 지금도, 여전히, 자기 곁에 함께하고 있다고.
그렇게, 아물지 않는 시간 속에서...
5년이 흘렀다.
아린이는 어느덧 열세 살이 되었다.
활과 검, 창까지 모두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활을 쥔 손끝에서는 바람처럼 부드럽고도 치명적인 화살이 날아갔고, 검을 휘두르는 몸놀림은 물처럼 유연하면서도 칼끝은 번개처럼 날카로웠다. 창을 다루는 손길은 대지의 힘을 담았다.
아린이의 모습은 마치 자연과 하나가 된 바람에 흩날리는 자유로운 나뭇잎 같았다.
하지만 아린이는 숲 속을 벗어나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직도 도깨비 마왕의 부하들이 아린이를 찾기 위해 도처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숲 속만이 아린이의 모든 숨결을 감춰 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아린이의 목에는 여전히 나무로 된 펜던트 목걸이가 소중히 걸려 있었다.
그 펜던트는, 붉은 피를 머금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보름달의 기운이 이상해졌다는 걸 눈치챈 사부는 아린이를 불렀다.
“아린아, 사부가 부탁 하나 해도 될까?”
아린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뭔데? 내일 청소 당번 미루는 것만 아니면 다 들어줄게.”
사부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나중에...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말이야...”
아린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듯 되물었다.
“일이 생기다니, 무슨 일? ...”
그 말을 내뱉는 아린이의 입술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말끝에 맺힌 떨림은 두려움이었다.
그 순간, 아린이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건 아빠의 일이었다.
잊으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이 다시 떠올라 가슴 한켠을 무겁게 짓눌렀다.
사부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도... 늙지 않겠냐.”
아린이는 안심한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에이, 난 또 무슨 소린가 했네. 사부는 아직 백 년은 끄떡없어.”
사부는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지. 백 년은 끄떡없지.
그럼 백 년 후에 말이다, 사부가 없어지면...
아린이는 사부가 말한 대로 해 줄 수 있을까?”
아린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백 년 후라면, 알았어! 우선 들어볼게.”
사부는 숨을 가다듬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사부가 아린이에게 들려준 것은, 도깨비가 되는 방법이었다.
“네가 벽을 따라 손을 대고 걷다 보면,
그 끝에 성 하나가 있을 거야.
거기서 몸을 숨기고 기다리고 있으면,
도깨비들이 문을 통해 인간 세상을 드나드는 걸 보게 될 거야.
그 문은 도깨비의 냄새에만 반응해서 열리니까,
반드시 도깨비 뒤를 따라 들어가야 해.
그렇지 않으면 문을 찾을 수도, 열 수도 없거든. 알겠지?”
아린이는 나뭇가지로 땅을 파며 듣는 듯 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의 말이 끊기자, 땅을 파던 아린이는 조용히 사부를 바라보았다.
사부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후로도 도깨비 회의 이야기, 오래된 우물 이야기 등
한참 동안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사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네가 너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도깨비가 되는 수밖에 없단다.
도깨비가 된 너의 피는...
그자에게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을 테니까.’
그 무렵, 아린이는 사부의 생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부가 제일 좋아하는 도토리묵을 선물해 주고 싶었던 아린이는
이른 아침, 사부가 자고 있는 틈을 타 숲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마을 시장으로 향했다.
5년 만에 처음으로 숲을 벗어난 아린이는
마을의 활기찬 분위기에 눈을 뗄 수 없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던 아린이는
드디어 도토리 가게에 도착했고,
가게 앞에서 주인아저씨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