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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형석 Dec 28. 2019

나의 첫 음악회

1978 한울림관악합주단 2회 정기연주회

한울림관악합주단 2회 정기연주회

1978년 12월 12일(화) 19:00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2층 3열 26번 / A석  

내가 처음으로 음악회를 가게 된 것은 순전히 학교 음악 선생님의 애교심으로 포장된 반공갈성 발언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때만 해도 나는 또래의 친구들이 그랬듯이 존 덴버라든지, 사이먼과 가펑클, 올리비아 뉴튼 존 같은 가수들의 팝에 빠져 있었고 클래식 음악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밴드부라고 브라스밴드가 있었는데, 그 분야에서는 꽤 인정을 받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우리 음악 선생님께서 당시 국내 윈드 오케스트라 분야에서는 나름대로 인정받고 있는 지휘자이셨고, 그 분의 지도로 음악의 음자도 모르고 공부도 하기 싫어하던 친구들이 서울 시내 명문 음대에 한 해 예닐곱 명씩 합격되곤 할 정도로 실력 있는 연주자로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해 겨울방학을 앞둔 어느 날, 아침자습시간에 우리를 가르치지 않는 2학년 음악 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셨다. 이 분은 우리 학교 출신 선배셨는데, 우리가 졸업한 후에 군산대학교로 옮기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선생님의 말씀인즉, 한울림관악합주단이라고 김종석 선생님(당시 우리를 가르치던 음악 선생님이셨고 지금은 고인이 되셨다.)과 우리 학교 선배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되는 윈드 오케스트라가 곧 창단 연주를 하는데 우리 학교 학생들이 의외로 이 소식을 몰라 가려고 하는 학생이 적어서 안타깝다. 지금 다른 학교에서는 표를 달라고 아우성인데, 내가 잠시 우리 학교 학생들을 위해 다른 학교에 표를 주는 것을 보류시켰다. 그러니 우리 학교 선생님께서 지휘를 하시고 선배들이 주축이 되어 연주를 하는데, 너희가 안 가면 되겠느냐, 학교 명예도 있고 김종석 선생님 체면도 있으니 가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나는 유신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학생이라 애교심이라는 한 마디에 넘어가서 당시 2,000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의 티켓을 구매하고 주변의 친구들을 부추겨 함께 공연을 보러 갔었던 것이 나의 첫 음악회였다. 

내가 갔던 첫 음악회의 티켓

이날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알프레드 리드 / 음악제의 전주곡
리처드 로저스 / 사운드 오브 뮤직
로버트 자거 / 쥬빌라테
칼 마리아 폰 베버 / 클라리넷 협주곡 f단조 op.73
     - 안은경(Cl)
클리프턴 윌리암스  / 심포닉 댄스
프란츠 레하르 / (주디타) 금과 은 op.79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 1812년 서곡 op.49

김종석(Cond) / 한울림관악합주단


이해 4월에 개관했다는 한 세종문화회관도 당연히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우리집에서 세종문화회관 앞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42번 좌석버스를 타고 갔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공연장에서 우리 선생님이 지휘를 하고 우리 선배들이 연주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해서 연주되는 곡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나 열심히 박수를 쳤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마 협주곡 연주에서는 분명히 악장 간 박수도 쳤으리라. <사운드 오브 뮤직>의 메들리곡도 좋았으나 음악시간에 들었던 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의 대포 소리를 베이스드럼으로 연주한다는 사실도 이날 처음 목격했었다. 오래된 일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그 이외에는 별로 기억나지 않는 연주회였다. 


그런데 이 음악회가 계기가 되었을까? 그 이후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직전 마지막 음악시간에 감상했던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의 4악장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 전까지는 음악감상 시간에 별다른 감흥 없이 듣던 음악이 이날따라 마음에 들어온 덕에 나는 그 길로 다니던 음반가게에 가서 용돈을 탈탈 털어 음반가게 누나가 추천해 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8장 짜리 베토벤 교향곡 LP판 전집을 덜컥 사버렸다. 그리고 방학 내내 거의 하루에 한 번씩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집에 있는 전축으로 들으며 이 곡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는데, 이게 내가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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