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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형석 Dec 28. 2019

한 자리에서 10시간

2019 고향임 명창판소리 <춘향가> 완창 공연


동초제 춘향기 8시간 완창 / 윤초 고향임 명창


2019년 12월 10일(화) 13:30~23:20

국립국악원 우면당 1층 나열 66번 / A석

이날은 원래 코리안 심포니의 송년음악회를 가기로 한 날이었으나 지난 달 우연히 국립국악원 홈페이지를 뒤지다가 발견한 이 공연에 꽂혀서 코리안 심포니 공연을 취소하고 이 공연을 가게 되었다. 나는 무슨 판소리 매니아도 아니고 고향임 명창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으나 단지 <춘향가>를 8시간 완창한다는 것에 이끌려 내가 평생 이때 아니면 언제 8시간 짜리 판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해서 나 자신도 시험해 볼 겸 선택한 공연이다. 곧바로 대전문화재단에 전화를 하여 티켓 예약 오픈일자를 문의하고 오픈되는 날 자정을 기다려 바로 예약을 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 다섯 바탕 가운데 가장 사설이 길고 풍부한 것이 단연 <춘향가>인데, 과문한 탓이겠으나 내가 알기로는 이 작품의 사설을 한 대목도 빼지 않고 불렀던 것은 1980년대로 기억하는 고 만정 김소희 명창의 세종문화회관 소강당 공연이 유일했으나 이날 제공된 프로그램북을 보니 고향임 명창도 이미 2009년에 한 차례 공연했다는 것으로 보아 김소희 명창의 공연이 유일한 무대는 아니었던 듯하다. 주지하다시피 판소리는 본래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완창을 하지 않았으나 1968년 고 박동진 명창이 AFKN의 후원으로 첫 완창 무대를 가진 이래 여러 연주자들이 완창 무대를 이어오고 있다. 오늘날에도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판소리 완창 무대가 지속되고 있으나 이것은 보통 3시간 남짓한 시간 안에 공연한다는 제약이 있어 여러 대목이 생략된 채 불리는 공연이 많다. 어쨌거나 한 명의 창자가 <춘향가> 전체를 한 대목도 빼놓지 않고 부르는 완창 무대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것이니 소중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연주자 입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관객들의 입장에서도 한 공연장에 8시간을 꼬박 앉아서 공연을 본다는 것도 보통일이 아닐 것이다. 실제 이날 공연은 13:30에 시작해서 23:20에 끝났으니 모두 9시간 50분에 달했고 공연 전 해설과 중간의 인터미션을 제외하고 순수 공연시간만 따져도 장장 8시간 10분에 달했다.


오전에 우리집 강아지 미용을 맡겼다가 찾아오고 나니 시간이 빠듯해서 오랜만에 차를 가지고 국립국악원으로 갔다. 국립국악원 주차장의 경우 공연 관람 관객은 무료로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어 주차료의 부담이 없어 좋다. 예술의전당은 내년부터 주차료를 인상한다는데……. 주차를 하고 먼저 우면당으로 올라가니 극장 앞의 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 공연을 축하하는 화환이 가득했다. 이 공연에 대해 거는 문화계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티켓을 찾고서는 일단 바로 지하로 내려가 국악원 구내식당인 담소원에 가서 후다닥 점심을 먹고 다시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국립국악원 우면당 앞에 놓인 화환(일부)

공연장에서는 프로그램북을 무료로 배부하고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북이 무려 180쪽이나 되는 상당히 두꺼운 책이다. 연주자나 곡에 대한 설명은 간략했고 거의 전체가 동초제 춘향가의 사설집이었는데, 사설은 목원대학교 최혜진 교수가 채록하고 일일이 각주를 붙인 것으로 학습자료로도 매우 유용해 보였다. 공연장 로비에는 두어 가지 차와 믹스 커피, 그리고 너댓 가지 과자와 초콜릿이 비치되어 있었는데, 아마 긴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을 위한 대전문화재단의 배려인 듯하다. 나도 인터미션 때 먹을 양으로 몇 개를 집어 주머니에 넣고 객석으로 들어갔다. 우면당은 두 번째 방문인데 공연장이 작고 아담해서 어디서나 무대가 멀지 않고 음향도 좋은 편이었다. 이날 좌석 등급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앉은 자리는 A석이라고 하지만 보통 음악회라면 거의 R석에 해당되는 좋은 곳이었다. 프로그램 안에 별지로 들어있는 공연 시간 안내를 보니 저녁식사 시간이 없었다. 인터미션 때 관계자에게 문의하니 19:00 인터미션은 다른 인터미션보다 긴 20분이라 그 시간에 떡을 제공해 줄 것이니 그것으로 일단 허기를 채우고, 저녁은 근처에 있는 식당을 예약해 놓았으니 거기서 하고 함께 버스로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좀 황당한 표정을 짓자 서울 관객이냐며, 그럼 알아서 하라는 투였다. 그러니까 이날 공연 시간표는 버스를 대절해서 올라온 대전 팬들에게 맞춘 시간표라는 것이다. 이런 대단한 공연을 무료로 제공해 주고, 다과와 떡까지 제공해 주었으나 작은 배려 하나가 부족한 게 옥의 티였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공연 시작 시간을 30분 정도 앞당기고 구내식당 운영시간에 맞춰 인터미션을 40분 정도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내 자리에서 본 무대

무대 위에는 여섯 폭짜리 병풍 세 개가 쭉 이어져 있었고 그 앞으로는 거의 무대 전부를 덮는 크기의 화문석이 깔려 있었다. 병풍을 자세히 보니 <용비어천가>가 한문으로 쓰여진 것이었다. 원래 <용비어천가>는 한글로 쓰여진 것이라 한문본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한글로 창작된 최초의 작품이다 보니 이 작품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그 전에 사용했던 문자인 한문으로 번역한 것도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되었다. 용비어천가를 한문으로 보니 좀 색달랐다.

무대에 설치된 6폭 병풍 세 개에는 <용비어천가> 한역본이 쓰여져 있었다.

공연 전에 먼저 군산대학교 최동현 교수가 나와 동초제 춘향가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해 주었다. 동초는 김연수 명창의 호로 동초제라고 하면 김연수 명창이 확립한 제를 이르는 것으로 달리 김연수제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최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명창치고 자신의 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고 하는데 아닌게 아니라 만정제, 박녹주제, 박동진제, 송만갑제, 정정열제, 강도근제 등등 내로라 하는 명창들은 대다수가 자신의 이름이나 아호를 딴 제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프로그램북을 보니 김수연 명창의 호가 동초(東超), 그 제자인 오정숙 명창의 호가 운초(雲超), 또 그 제자인 고향임 명창의 호가 윤초(允超)이니 아마 그 계통을 생각해서인지 모두 초(超)자 돌림이었다. 그러니까 호를 보면 이 사람이 어떤 계통을 이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우리 대학 은사님께서도 은퇴하신 후 당신의 제자들에게 호를 지어주시면서 모두 당신의 호 유산(有山)에서 산(山)자를 따와서 다 그 돌림으로 호를 지어주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아마 전통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최동현 교수의 해설이 끝나고 바로 고향임 명창이 박근영 고수와 함께 무대로 나왔다. 고향임 명창은 동초제를 만든 김연수 명창의 제자 오정숙 명창의 제자이니 김연수 명창의 손자 격인 제자라고 할 수 있겠다. 오정숙 명창에게 판소리 다섯 바탕을 온전히 전수받아 동초제 판소리에 정통하다고 한다. 사실 말이 8시간 완창이지 인간의 힘으로 8시간 동안 완창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날 고 명창도 소리하는 중간중간 가사를 잊어버리는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런 일에 대비해서 아마도 제자되시는 분 가운데 한 분인 듯한데 1열 중앙에서 보면대 위에 사설집을 펼쳐놓고 고 명창이 가사를 잊거나 틀리면 곧 바로잡아주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1열 중앙에 앉아서 고 명창의 사설 오류를 집아주던 분

고향임 명창은 판소리 소리꾼치고는 맑은 성음을 가지고 있는 게 특징이었다. 그래서 가사 전달이 상당히 명확해서 사설집을 참고하지 않더라도 사설의 내용을 절반 이상 알아들을 만해서 처음에는 사설집을 꺼내지 않고 그냥 들었지만 역시 판소리에는 현대에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들과 고어들이 많아 이해가 어려운 대목이 많아서 나중엔 사설집을 펼치고 들었더니 훨씬 이해가 쉬웠다. 동초제는 동편제 소리와 서편제 소리가 모두 섞여있다고 하는데 내가 듣기에 고향임 명창은 여성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아무래도 힘차게 내지르는 우조 성음보다는 계면조 성음이 더 듣기에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정말 8시간 완창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 많이 들었으나 고향임 명창은 오히려 뒤로 갈수록 더 힘차고 명확한 소리를 들려주어 객석에 놀라움을 주었다.


이날 기대와는 달리 비록 객석이 가득차지는 않았지만 공연이 끝나는 시간까지도 상당히 많은 수의 관객들이 끝까지 남아서 공연을 지켜보았다. 나도 처음엔 과연 내가 8시간 동안 진행되는 공연시간을 다 채우고 객석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중간중간 나 같은 판소리 하수들의 귀에도 익숙한 눈대목들이 들어 있어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내 옆에 앉은 젊은 서양인 남자 관객도 끝까지 공연을 관람해서 놀라웠다. 그런데 이날 관객들은 8시간 짜리 공연을 온 관객들이라 그런지 나 같은 일반 관객들과는 많이 달랐다. 말하자면 판소리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소위 귀명창들이 대부분이었고 개중에는 일부 대목을 따라부르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보아 판소리를 배우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공연 중 추임새도 무척 활발하게 나와서 고향임 명창의 힘을 북돋워 주는 데 많은 역할을 했고, 이 도령이 어사가 되어 전라도를 순행할 때 나오는 농부가에서는 고 명창이 따로 신호를 주지도 않았는데 청중들이 일제히 후렴구를 함께 부르는 등, 많이 교육이 된 청중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인터미션 때 보니 이들이 서로 인사하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아마 상당수가 대전에서 단체로 온 관객들인 듯 했다.

고향임 명창과 마지막 무대를 같이한 김규형 고수

8시간 완창을 하는 동안 고수는 모두 여섯 명이 바뀌어 나욌고, 고향임 명창은 모두 여섯 번 연주복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의상들이 사설의 내용과 묘하게 연관되는 그런 색상이었다. 예를 들면 춘향이와 이 도령이 처음 광한루에서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봄의 기운을 나타내듯 초록색 저고리에 붉은 치마, 말 그대로 녹의홍상을 입었는데, 춘향이가 옥에 갇히는 부분을 부를 때에는 위아래 모두 소복을 입고 나온 식이었다. 의상도 고 명창이 이번 공연에 들인 노력과 정성이 어떠한 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날 가장 기억에 남는 고수는 다섯 번째로 나온 송원조 고수로 고향임 명창이 깍듯하게 '선생님'이라 부르며 허리 숙여 인사할 정도로 연배가 아주 높은, 줄잡아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 정도로 되어 보이는 분이었는데 왼손으로 북을 치는 것이 오래 전 지금은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는 김동준 고수를 떠올리게 했다. 북소리가 아주 멋지던 분이셨는데……. 송원조 고수도 나이답지 않게 힘찬 북장단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순서로 나온 김규형 고수는 얼핏 듣기로 김연수 명창의 아드님이라고 한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관객들에게 엄지 손가락을 올려보이는 고향임 명창

처음 이 공연이 공지되었을 때에는 22:30에 끝난다고 되어 있었는데, 정작 이날 공연장에서 나눠준 시간표에는 23:00에 끝난는 것으로 나와 있었고, 막상 공연이 다 끝나니 23:20이 되었다. 커튼콜 이후에는 최혜진 목원대 교수가 간단한 인삿말을 한 뒤 고향임 명창의 아들이 고 명창을 업고 무대로 나오는 퍼포먼스가 있었고, 아마 그 뒤로 간단한 행사가 더 있었던 것 같았으나 나처럼 개별적으로 온 관객은 너무 귀가 시간이 늦어 더 지체할 수가 없어 여기까지만 보고 공연장을 나왔다.


무려 8시간이나 꼿꼿하게 서서 온힘을 다해 소리를 한 고향임 명창, 참 대단한 소리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단한 무대를 선보이고도 마지막 인사에서도 관객들에 대한 감사와 함께 자신의 공부가 부족했다는 겸손의 말을 덧븉였는데, 이 분의 인성이 어떠하다는 것을 이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듯 했고 이날 그의 소리에 바로 이러한 고 명창의 인성이 그대로 녹아나왔다고 생각한다. 판소리를 잘 알지도 못하고 일부러 찾아다니며 들을 정도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8시간이 넘도록 한 자리에 앉아 별로 졸지도 않고 전공연을 다 본 나 스스로도 대견하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공연이었다.

관객들에 대한 고향임 명창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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